노트북이 든 가방은 무거웠다. 방금 찾은 키엘 크림 쇼핑백도 묵직했지만 출국장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싶었다.
예전 같았으면 사람들로 붐볐을 면세점은 텅 비어있었다. 이런 공항의 모습이 왠지 낯설었다.
게이트 끝에서 끝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사람 없는 썰렁한 면세점에서 홀로 쇼핑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걷다 보니 공항 내 여러 시설이 조금씩 바뀌어 있는 게 보였다. 특히 멀리서도 화장실이 어딘지 볼 수 있게 화장실 쪽 벽면에 여자, 남자 아이콘이 아주 크게 표시되어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간단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이 역시 인천 공항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걷다 보니 가방도 무겁고 다리도 아파서 사람이 없는 한적한 게이트 쪽으로 갔다.
의자에 앉자마자 창문 밖으로 서있는 몇 대의 비행기가 보였다.
때마침 하늘에서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점점 진해져 가는 붉은 햇살이 비행기에 반사되었어 갑자기 눈이 부셨다.
아, 몇 년 만에 보는 풍경인가.
얼른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모든 순간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싶었다.
문득 이 거대한 공간을 혼자 차지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빨갛게 물들어가는 하늘과 비행기를 바라보니 형언할 수 없는 어떤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간신히 붙잡고 있던 마음이 서서히 채워졌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마치 명상을 끝낸 후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 좋은 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내 감정에 내가 도취되어 혼자 열심히 놀다 시간을 확인하니 곧 보딩 시간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얼른 일어나 아시아나항공의 샌프란시스코행 게이트 쪽으로 향했다.
이럴 수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한적한 공항이 너무 어색해서 씁쓸했는데 이곳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간신히 빈 의자를 찾아 앉았다.
일본인 동료는 왔을까?
주위를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그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비행기 타기 전에 혹시나 해서 화장실에 갈 거라며 나보고 먼저 들어가라고 했다. 우리는 비행기 안에서 만나기로 하고 먼저 보딩을 기다리는 줄에 합류했다.
저 멀리 "샌프란시스코행 탑승 중"이라는 스크린이 보였다. 핸드폰을 꺼내 얼른 사진을 또 찍었다.
비행기에 도착하자 하얀색 가운을 입고 고글을 쓴 승무원들이 승객들을 맞았다. 사람들 틈을 겨우 비집고 들어와 복도 쪽 좌석에 앉았다. 창가와 가운데 앉는 승객을 위해 몇 번을 일어나 앉았다를 반복한 후 좌석벨트를 매고 한숨을 돌리려는 찰나 갑자기 일본인 동료가 생각났다.
오른쪽 편에 있는 가운데 좌석 건너편을 보니 그가 벌써 와 있었다. 그래도 잘 탔냐고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 계속 그쪽을 쳐다보니 그가 내 시선을 느꼈는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