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 Feb 17. 2023

독일 콜센터 직원과의 통화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

그래, 일단은 며칠만 더 기다려보자.




"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


카드앱에서 드디어 기차표 예매를 완료했다.


그런데 갑자기 "계정에서 로그아웃이 되었습니다"라는 영문 팝업창이 떴다.



무슨 일이지?



독일 기차예매앱에서 방금 예약한 일정을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가 않았다.


며칠 전 예약한 프랑크푸르트 출발, 뒤셀도르프 도착 여정만 보였다.








다음 주 지금 이 시간쯤이면 아마도 기내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둥둥 떠다니는 뭉게구름을 가까이서 볼 수 있지 않을까.





독일은 몇 년 전, 다른 회사에서 출장으로 처음 가본 곳이다.


그때 그곳을 떠나며 내가 다시 이곳에 올일이 있을까,라고 생각을 했었다. 당연히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독일은 나와 그렇게 많이 연관된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데 당신 전시회가 열렸던 똑같은 장소로 가게 되었다.  전혀 예상밖의 일이었다.


그리고 이럴 때 나는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더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지난 몇 주 동안 비행기 티켓과 호텔예약 사이트를 들락날락거리면서 엑셀에 일정표를 짜가면서 열심히 출장준비를 했다.


독일 전시회가 끝나면 바로 주말이라서 이틀은 혼자 자유여행도 가지게 되었다. 독일에 그냥 있을지 아님 기차를 타고 프랑스를 갈까, 하는 고민도 했다.


아메리카노를 마실지 아니면 라테를 마실지, 하는 고민과는 뭔가 차원이 다른.







그렇게 신나게 출장준비를 하다가 전시회가 끝나고 뒤셀도르프에서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오는 기차표를 예매하다가 그만 이런 에러가 나고 말았다.



 프랑크푸르트 도착 예매내역이 아무리 찾아도 안보였다.








가슴이 철렁했다.


기차표는 한화로 무려 7만 원이나 되는데. 물론 출장으로 가는 거라 나중에 돌려받을 거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다급히 예매사이트에 들어가 연락처를 알아보았다.


이메일 주소가 있길래 카드결제 내역을 캡처해서 보냈는데 이틀이 지나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인터넷에 "독일 기차내역 오류"를 검색해 보니 이런 경우가 나한테만 있는 건 아니었는지 누군가가 이메일대신 꼭 전화로 물어보라고 했다.



24시간 운영된다는 말을 믿고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콜센터에 전화를 해보았다. 하지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애가 탔다.


할 수 없이 하루종일 기다리다가 독일 아침으로 8시 반, 한국시간으로 오후 4시 반쯤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바로 연결이 되었고 왠지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의 독일 아저씨 느낌이 상상되는 직원이 알 수 없는 독일어로 전화를 받았다.


"Good Morning. Do you speak English?"


일단 영어를 하냐고 물어보니 다행히 직원이 영어로 대답을 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내 이메일 주소와 이름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내 예약이 안되고 결제만 된 것 같다며 이메일로 은행결제내역을 캡처해서 보내달라고 했다.


그래서 보낼 이메일 주소를 알려달라고 하자 알아들을 수 없는 독일어가 빠른 속도로 들렸다.


뭔가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최대한 침착하고 정중하게 스펠링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알려주는 스펠링조차 독일어로 들렸다.  속도도 받아 적기에 너무 빨랐다.


직원이 알려주는 주소가 F로 시작하는데 생각해 보니 며칠 전 내가 보낸 이메일 주소 같아서 그 주소가 맞냐고 하니 그게 맞다고 했다.


그러면서 메일을 확인한 후 취소를 해준다며 좀 기다리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보낸 메일이 제대로 갔는지 그 자리에서 확인을 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통화 너머로 몇 초의 침묵이 흘렀다. 그가 내 메일을 체크해 주는 건지 알았는데 그게 아닌듯했다.


직원이 아무 말이 없길래


"Oh so... that's it?"


이게 다인가요?라고 물어보자 그가 "Yes"라고 대답했다.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친절하게 바로바로 응대해 주는 한국의 콜센터에 익숙해서였는지 아니면 그 자리에서 바로 취소가 안되서였는지 기다리라는 말에 뭔가 마음이 찜찜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마음은 급하지만 기다려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러니한 요즘의 일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