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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Mar 21. 2023

독일에서 기차를 타고 깜짝 놀란 이유

독일 여행기



뮌헨행 티켓에 적힌 열차번호와 좌석번호를 몇 번씩이나 확인하며 드디어 기차에 올랐다.


그런데 아뿔싸, 좌석 앞에 도착하자마자 순간이 머리가 띵 했다.


이건 내가 원했던 독일에서의 기차여행의 시작이 아니었는데...




독일 DB 온라인 티켓








뮌헨행 기차에 오르기 전, 꼭 하고 싶은 게 있었다.


바로 달리는 기차에서 통 큰 창문을 통해 차창밖 풍경을 감상하는 것.


유럽기차여행 프로그램을 볼 때 끝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이 생각났고 나도 꼭 실제로 그 모습을 감상하며 기차를 타고 싶었다.







기차출발시간에 맞춰 이른 새벽,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 있는 빵집에 갔다.


다행히 그 시간에도 많은 가게들이 이미 영업 중이었고 심지어 사람들로 북적였다.


가게가 다 문을 닫았으면 어떡하지,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사람이 제일 없는 어느 작은 샌드위치 가게에 가서 깨가 오밀조밀하게 붙어있는 프렛즐을 하나 골랐다.


프렛즐 봉지를 들고 기차역 플랫폼으로 향하는데 마음 한구석이 왠지 모르게 든든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드디어, 기차에 올랐다.








내 좌석을 보고 깜짝 놀랐다. 번호를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내 자리가 분명했다.



의자는 창문의 거의 끝부분에 붙어있었고

등을 뒤로 아주 젖히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야 밖을 간신히 볼 수 있었다.




내가 원했던 넓은 통유리가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사실 유럽기차에 이런 자리가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미리 좌석을 지정하지 않았더라면 다른 자리로 바꿔 앉아도 될 텐데 이미 지정을 해놔서 할 수 없이

이곳에 앉아야 했다.





등을 뒤로 젖혀야 밖을 볼 수 있었던 자리











일단 자리에 앉아서 작은 창문을 통해 밖을 보았다.



아직은 어둠이 걷힌 새벽이라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너무 일찍 일어나서 피곤한 탓에 잠깐 눈을 붙이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들리는 큰 웃음소리.


이건 또 뭐지? 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내 앞쪽 오른쪽 좌석에 덩치가 큰 젊은 독일 청년들이 보였다.


그들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맥주병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죄송합니다, 도촬을 해서. 너무 신기해서 찍어봤어요.




독일 기차에서는 술도 마실 수 있구나. 아니 우리나라 기차에서도 술을 마실 수 있는 거였나? 갑자기 헷갈렸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차에서 음주불가이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잠을 청했다. 하지만 젊은 청년들은 화장실을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맥주를 마셨다.


알 수 없는 독일어가 계속 옆에서 들렸다.


술에 취한 독일 젊은이들은 지금 이 순간을 꽤나 즐기는듯했다.


역시, 독일은 맥주의 나라구나...


뭐라 그리 좋은지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며.


나중에서야 독일에서는 기차에서 음주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튼 나에게는 참 신기한 광경이었다.









기차가 출발한 지 30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허기가 졌다.



프레즐을 꺼내 한입 먹었다. 겉이 좀 딱딱해서 잘 못 샀나, 싶었던 찰나, 갑자기 속으로 나도 모르게 감탄을 했다.  


프레즐 속은 촉촉했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다.


내가 알던 시나몬향이 뿌려진 달달한 스틱 프레즐과는 차원이 달랐다.


독일 프레즐은 한 끼 식사로도 훌륭할 정도였다.


다만 먹는데 프레즐 겉에 붙어있던 커다란 깨가 우수수 쏟아져서 바지가 깨범벅이 되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뮌헨에 도착하기 바로 직전,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던 청년 4명이 슬슬 내릴 준비를 했다.


가방을 챙기는가 싶더니 갑자기 어디서 병맥주를 담았던 빈 플라스틱통이 보였다. 아니 그럼 맥주를 저기 가득 담아서 기차에 탔다는 거야? 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니까 이 독일청년들은 기차를 탈 때부터 아예 맥주를 마실 생각이었던 거였다.



내가 생각했던 독일에서의 기차여행은 다들 조용히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두드리는 모습이었는데 이날,

내 생각이 정말 틀렸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들이 내린 후, 테이블은 병맥주로 가득했다.



그리고 얼마 후, 한쪽손에는 인형을 든, 이쁘게 생긴 독일아이 2명이 그쪽 테이블로 향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자리에 앉았다.



아이고, 저걸 어쩌나, 하필이면 어린애들이 저 자리에 앉다니.



걱정되는 마음으로 숨을 죽이며 그쪽 자리를 지켜보았다.


곧이어, 겉보기에도 매우 다정하게 생긴 남자 한분이 들어왔다. 그분이 테이블을 쓰윽 둘러보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병맥주를 치우기 시작했다.


빈 맥주병을 양손에 들고 몇 번을 왔다갔다하더니 드디어 테이블 위가 깨끗해졌다. 그리고 물휴지로 테이블 위를 쓱싹쓱싹 닦기 시작했다.



휴, 다행이었다.



여자 아이가 들고 온 가방에서 아주 두꺼운 책을 테이블 위에 꺼내놓고 읽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는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아빠는 무심히 핸드폰을 보다가 가끔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내가 생각했던 유럽기차에서의 광경을 이런 모습이었는데...


화목해 보이는 이 가족을 곁눈질로 쳐다보며 흐뭇한 미소를 속으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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