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은 자유였지만 매일 집에 있다 보니 답답했다.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하다 그동안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을 읽어 보기로 했다. 회사에 다니면서 마음이 헛헛해서 책을 사 두고, 베개 옆에 두고 자기 전에 몇 장 읽다가 만 책들이었다. 그때는 하루하루 마음이 얼음판이었기 때문에 글을 읽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읽지 않아도 책이 옆에 있으면 왠지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움직일 수가 없으니 책상에 앉아 책을 한 권 집어 들고 책장을 넘겼다. 평소 과학책은 거들떠보지 않았는데 칼 세이건의 아내, 앤드루 냥이 썼다는 코스모스라는 책을 새벽 4시에 일어나 읽어보기도 했는데 모두 잠들어 있던 그 시간에 왠지 홀로 우주여행을 떠나는 신비로운 기분이었다. 어렵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페이지를 미련 없이 넘기고 관심이 가고 재미있는 부분은 집중해서 읽었다.
동생이 넷플릭스 아이디를 알려줘서 스페인 시리즈물인 종이의 집을 보기도 했지만 하루 종일 티브이 앞에 앉아있으면 정신이 몽롱하고 몸이 더 찌뿌둥한 것 같았다.
뭘 할 수 있을까, 책을 더 읽어볼까, 무슨 책이 있을까 하며 인터넷 서점을 기웃거리다가 글쓰기 관련 책들이 눈에 띄었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나도 글을 쓸 수 있다! 이런 문구들에 마음이 요동쳤다.
그리고 나도 지금 이 시간에 내 글을 한번 써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어떤 글쓰기 작가의 카페에서 30일 동안 글쓰기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작가의 책을 구입하고 사진으로 인증한 후 책에 있는 1일 1 질문에 대한 글을 매일 1500자씩 쓰면 되는 거였다.
질문에 답을 하면서 나는 이직과 퇴사를 하며 방황하던 순간들로 돌아갔다.
그때의 나를 다시 마주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어떤 기억은 희미했지만 다시 찾고 싶었고 마음속 응어리들을 정리하고 싶었다.
30일 동안 매일 글을 쓰는 건 쉽지 않았지만 뭐라도 도전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한 페이지를 쓰는 것도 익숙하지 않아 생각을 다듬고, 문장을 고치고 하다 보니 5시간이 훌쩍 가버린 때도 있었다. 누가 잘 썼나 못썼나 검사를 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하루에 글 하나를 올리면 되는 거였는데 내 기억에서 나를 괴롭히고 있던, 힘들게 하던, 사라지지 않고 묵혀왔던 시간들을 밖으로 조심히 잘 꺼내어보고 싶었다. 매일 질문들을 보며,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꺼내볼까? 왠지 설레었다.
글을 써 내려가면서,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단어와 문장으로 적어 내려가면서 아, 내가 그때 이렇게 느꼈었구나, 나를 제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오래된 기억과 생각들을 정리해가다 보니 마음 한편 무겁게 지니고 있던 어떤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그래도 잘 버티어 온 내가 보였다. 그런 나를 재발견해나가며, 30일 동안 매일 글을 써 내려갔다. 그리고 그렇게 써내려갔던 글을 시작으로 글쓰기 수업을 듣게 되었고 독립출판의 형태로 얼마 전 책을 내기도 했고 브런치 작가에 도전해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니 참 신기하다. 퇴사 후 망망대해를 걷는 기분이었고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글쓰기는 나를 지켜주고 또 지켜준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계속 내 이야기를 꺼내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