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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Jun 14. 2023

도쿄에 다녀오겠습니다 - 1

떠나기 하루 전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연차를 내고 좋아하는 작가님의 강연을 들으러 갔다.


오전에 하는 강의라서 출근 시간보다 더 일찍 집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웬걸, 지하철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도착한 지하철을 먼저 보내고 다음 열차를 기다렸다. 사람들로 가득 차가는 플랫폼에서 공포가 느껴졌다.


이윽고 열차가 도착했고, 최대한 노약자 좌석 쪽으로 가서 섰다. 넘어질까 봐 최대한 벽에 손바닥을 대고 중심을 유지했다. 진땀이 났고 얼른 지하철에서 내리고 싶었다.


내려야 하는 역에 도착 후, 사람들에 떠밀려 간신히 밖으로 나왔다.


지하철역 밖으로 나오자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너무 평화로웠다. 아침공기는 쾌청했고 햇빛은 따뜻했다.







신청을 했던 강의는 무료였다.  설명란에 작가님의 강의 전 레크리에이션이 진행된다고 했다. 이게 뭘까,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보험 설명이었다. 금방 끝나겠지, 생각했는데 무려 한 시간이 넘도록 보험강의는 계속되었다.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고 아침 일찍 출근시간에 맞춰 나온 게 너무 억울했다. 지하철이라도 텅텅 비었었다면 괜찮았을 텐데 사람들에 치여서 온 걸 생각하니 더 억울했다.






하지만 작가님의 강의는 여전히 좋았다. 자존감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책으로, 글로 많이 접해서 익숙한 내용이기도 했다. 화사하게 화장하신 작가님은 눈이 부셨다.


강의를 들으며, 자존감에 대한 내용을 들으며,

문득 지금 나는 꽤 잘 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상처도 받을까 두려웠고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었다. 어떤 누군가에게 더 잘 보이려 애를 쓰고 있는 내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또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이 회사를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까. 앞으로 나는 뭐 해 먹고살지? 앞으로는 정규직 대신 프리랜서가 많아진다고 하는데 대체 어떤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지?  


유튜브를 보면서 오지도 않은 미래를 미리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실행을 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집에 오면 피곤하다는 핑계로 유튜브를 보다 잠이 들었고 아침에 깨면 자괴감이 느껴졌다.






이런 상태로 계속 지내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 이럴 때는 여행이 답이지. 나를 바로 세우고 싶었다.


처음에는 공주, 군산 등 버스나 기차를 타고 갈 곳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갑자기 생각난 한 단어,


"도쿄"






도쿄? 나 도쿄에 갈까?


사실 이렇게 도쿄에 갈까,라고 생각을 하게 된 건 바로 동생 "덕분"이다.  


동생이 회사에서 1년 동안 도쿄에 파견을 가게 되었다. 혼자 사는 숙소에 지난 5월, 가족과 다녀왔었다. 도쿄에서의 숙박이 무료라니,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오랜만의 가족여행이 그렇게, 성사될 수 있었다.


나름 좋은 시간을 보냈지만 도쿄시내를 발길 닿는 대로, 내가 가보곳 싶은 곳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싶다는 충동이 몇 번이나 들었다.  언젠가 꼭 혼자여행을 하러 다시 와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지금, 지금 가도 되잖아,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목요일 오후였다. 동생에게 급히 연락을 해서 내일가도 되냐고 하니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바로 비행기표를 알아보았다. 금요일 오전에 출발하는 비행기는 많아서 안심이었다. 동생의 도움으로 비행기표를 끊자마자 금요일 하루 연차를 신청했다. 금요일 출발해서 일요일에 돌아오는 2박 3일 일정이었다.





퇴근 후,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사람은 여전히 많았지만 마음이 너무 가벼웠다.


집에 도착하자 없던 힘이 절로 났다.


며칠 동안 어지럽게 방치된 있던 방을 쓸고 닦고 바닥에 뒹굴고 있던 옷들을 주워 걸었다. 미뤄둔 설거지를 끝내고 빨래도 돌렸다.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샤워를 하면서 화장실 바닥을 솔로 비볐다. 바닥이 금세 깨끗해졌다. 이 모든 게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깨끗하게 정리된 집을 보니 마음이 가벼웠다.






2박 3일 동안 갈아입을 티셔츠 몇 장과 세면도구를 가방에 챙기니 도쿄로 갈 준비가 드디어 완료되었다.

최대한 짐을 줄이고 또 줄였더니 가방은 무겁지 않았다.


새벽 5시 반에 인천공항행 버스를 타기 위해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안 왔다.


이미 내 마음은 도쿄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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