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코와 나는 요쓰야역에서 전철을 내려 선로 곁 둑방을 따라 이치가야 쪽으로 걸어갔다"
사람들로 가득 찬 좁은 지하철에 서서 책을 펼쳐 읽다가 나도 모르게 방긋,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 책에 도쿄가 나오는지 전혀 몰랐다.
새벽부터 빗소리가 우렁차게 울려왔다. 잠결에 들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아 오늘은 실내로 돌아다녀야겠는걸, 이라고 생각했다.
7월 초, 혼자 도쿄에 갔을 때였다.
동생의 숙소는 요쓰야역과 이치가야역 중간쯤에 있었다. 매일 아침, 숙소를 나설 때 요쓰야역으로 갈지 이치가야역으로 갈지 고민을 했다. 거리로 보면 이치가야역이 숙소와 더 가까워서 주로 이치가야역 방향으로 출발했다.
하루에 이만 보 이상씩 걸으며 돌아다니다가 초저녁에 녹초가 되어 돌아올 때는 꼭 요쓰야역에서 내렸다.
이치가야 방향에는 둑방 옆으로 난 오솔길이 있었다. 무성한 나무가 우거진 이 길은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고 한적했다. 하루종일 돌아다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이 오솔길에 들어서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곳을 걸으며 그날 하루 도쿄 이곳저곳 돌아다녔던 장소와 먹었던 음식들을 떠올리며 숙소에 도착하기 전까지 홀로 하루를 마무리지었다.
"나오코와 나는 요쓰야역에서 전철을 내려 선로 곁 둑방을 따라 이치가야 쪽으로 걸어갔다"
그래서였을까. 우연히 이 문장과 만났을 때 내심 반가웠다.
새벽부터 쏟아지던 비 때문에 밖에서 돌아다니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도쿄를 돌아봐야 했다. 구글지도에 근처에 갈만한 박물관, 미술관을 검색하다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다.
나츠메소세키 산방기념관, Natsume Soseki Memorial Museum
설마...?
내가 알던 그 나쓰메 소세키가 맞았다.
나쓰메 소세키라는 일본작가를 알게 된 건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과 "고민하는 힘"이라는 책을 쓰신 재일교포 강상중 작가님을 통해서였다. 몇 년 전, 회사생활을 하며 여러 가지 이유로 마음이 힘들었을 때, 우연히 이분의 책을 읽게 되었고 책에서 추천하는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이라는 소설까지 읽게 되었다.
평소 일본작가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일본소설 또한 제대로 읽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몇 번 읽어보려다 포기를 한 적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은 웬일인지 끝까지 집중하게 읽게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나쓰메 소세키 박물관이 근처에 있다는 걸 알고 바로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오전 10시, 박물관이 개장하는 시간에 맞춰 도착을 했다. 박물관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시설이 매우 쾌적하고 깔끔했다. 입장료 300엔을 내자 안내데스크 직원이 친절하게 관람이동 동선을 알려주었다. 한국어 오디오가이드가 있는데 꼭 빌려보라는 리뷰를 기억하고 무료로 대여해 주는 오디오를 받았다.
평일이었고 이른 아침이었다. 한적한 분위기에 나는 그만 문학소녀가 되어버렸다. 오디오 기기를 귀에 대고 천천히 나쓰메 소세키의 일대기와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한국어 설명가이드가 없었더라면 대충 둘러보고 나왔을 텐데 덕분에 나쓰메 소세키라는 작가와 한층 친해진 기분이 들었다.
열심히 집중해서 박물관을 돌아보고 1층에 있는 카페에 들렀다. 아메리카노와 모나카 세트를 주문했는데 모나카가 예상외로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아, 그러고 보니 일본 전통과자가 모나카였지.
창밖을 바라보며 비가 그칠 때까지 한참 앉아 있다가 노트에 일기를 끄적이기도 했다.
도쿄를 떠올리게 하는 시부야나 신주쿠, 한적한 기치조지도 좋았지만 책으로 처음 만난 작가의 발자취를 따라보았던 순간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돌아오는 여행에는 와세다 대학교에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에 가 볼 계획이다.
그곳에 가기 전,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한 권이라도 읽고 가는 게 예의인 것 같이 느껴졌다.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고 읽기 시작한 "노르웨의 숲"에서 갑자기 요쓰야역과 이치가야역이 나와서 얼마나 반갑던지.
이 책에서 도쿄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