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도쿄로 떠나는 날이 다가왔다.
새벽 4시 45분에 출발하는 공항버스를 타려면 늦어도 집에서 4시 15분에는 나와야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버스정류장은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들고 가는 짐이 많이 없어서 충분히 정류장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전날, 잠을 잘 못 자고 뒤척이다가 새벽 3시쯤 깼다. 일어나자마자 머리를 감고 가방을 싸는걸 마저 마무리했다.
동생이 도쿄에 현지파견을 가 있어서 최근 일본을 몇 번 다녀왔었다. 5월, 6월, 7월에 갔었고 이번이 4번째였다. 부모님과 같이 갔던 5월을 빼고 나머지 2번은 책가방만 메고 가볍게 다녀왔었다. 어차피 앞으로 몇 번 더 갈 거라서 비행기표를 사야 하니 쇼핑은 최대한 자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이번 일정은 4박 5일이었다. 이틀 늘어났다고 짐 싸기가 애매했다. 옷을 몇 개 더 챙기고 얼마 전에 산 도쿄여행책을 넣으니 가방이 꽤 묵직했다.
가방에 짐을 넣었다 빼기를 몇 번 반복하다 결국 기내용 캐리어가방을 꺼냈다.
짐을 나눠담으니 마음이 훨씬 가벼웠다.
가방을 챙겨 현관문을 열었는데 깜깜한 하늘에서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순간 고민이 되었다.
택시를 타야 하나...
하지만 택시를 부를 때마다 매번 다른 위치로 가버린 택시를 찾아 헤맨 기억이 떠올랐다.
결국 한 손에는 우산, 다른 한 손에는 기내용 캐리어, 그리고 등에는 책가방을 매고 정류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비가 많이 쏟자 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10분 정도 걸었을까, 갑자기 빗방울이 거세게 몰아쳤다.
도쿄에서 쓰고 다닐 자그마한 양산을 우산으로 쓰고 있었는데 비바람이 입고 있던 바람막이 잠바를 덮쳤다.
바지밑단도 점점 축축해졌다.
비가 이렇게 쏟아질 줄이야...
마침 지나가던 택시가 날 보며 클락슨을 빵빵 울렸지만 택시를 타기에는 이미 정류장에 많이 가까워져 있었다.
하는 수없이 빠른 걸음으로 정류장을 향해 정신없이 걷기 시작했다.
버스에 올라탔을 때, 온몸은 비에 퐁당 젖어 있었다.
좌석에 앉기 전, 입고 있던 바람막이 잠바를 벗고 에어컨 바람을 최대한 세게 틀고 말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감기에 꼭 걸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다행히 인천공항에 도착할 때즈음 옷은 다 말랐고 버스에서 내릴 때 바람막이 잠바를 다시 걸쳤다.
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택시를 타지 않은 게 후회가 되었지만 덕분에 도쿄로 떠나던 날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