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티켓을 살 수 있는 기계가 안보였다. 분명 동생이 지하철역에서 표를 살 수가 있다고 했는데. 여기 사는 동생이 설마 잘 못 알려줄리는 없고...
저 멀리 역무원이 보이길래 다가가 말을 걸어보았다.
도쿄에 처음 왔을 때 제일 헷갈렸던 게 지하철이었다. 사실 JR이니 도쿄메트로니, 말만 들었지만 뭔가 뭔지 감이 잘 안 왔었다. 가족들과 같이 왔을 때는 동생뒤만 졸졸 따라다녔었다.
혼자 몇 번 오다 보니 더 이상 동생을 의존할 수 없게 되었다. 핸드폰에 있는 구글지도 앱을 검색하며 다니다보니 조금씩 지하철을 어떻게 타면 되는지 알수 있게 되었다.
서울에서는 가끔 내가 타야하는곳이 오른쪽 플랫폼인지 왼쪽 플랫폼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도쿄에서는 플랫폼마다 1번, 2번 등 번호가 있어서 훨씬 찾기가 쉬웠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신주쿠역은 신주쿠역, 시부야역은 시부야역이었지 어떤 노선이 도쿄메트로인지, JR 인지 아니면 오다큐선인지 구분할 정도는 아니었다.
"누나, 지하철 많이 타고 돌아다닐 거면 차라리 72시간 도쿄 메트로 카드를 사는 게 어때?"
도쿄에서는 지하철을 한번 탈 때마다 2000원이 훌쩍 넘는다. 하지만 72시간 도쿄 메트로 카드는 72시간동안 무한대로 탈 수 있는데 가격은 13,000원 정도였다. 돈을 충전하고 찍을 때마다 나가는 카드 대신 도쿄 메트로 카드를 사면 훨씬 돈을 아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생이 앱으로 구매를 한 후 QR 코드를 캡처해서 보내줬다.
"누가, 지하철역에 가서 기계에 이 QR코드를 대면 티켓이 나올 거야"
"응, 알았어~"
동생과 헤어진 후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갔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이 티켓이 나오는 기계는 안보였다.
이상했다.
할 수 없이 저 멀리 보이는 역무원에게 다가가 QR 코드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스미마셍... 도쿄 메트로 카드??"
그러자 역무원이 손으로 한쪽을 가리키며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어로 뭐라고 뭐라고 했다. 아, 저쪽에 가면 있겠는 거구나. 아리가또고자이마쓰를 외치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기계는 보이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설마 저 역무원이 없는 기계를 있다고 했을 리는 없을 텐데...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귀신에 홀린 것 같기도 했다.
할 수 없이 그 역무원을 다시 찾아갔다.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스미마셍... 노 머신...."이라고 하자 역무원이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그런데 이 분, 갑자기 어느 사무실을 들어가는 게 아닌가? 뭐지?
들어가는 문에는 "도쿄 메트로"라고 돼있었다.
알고 보니 이 역에서는 도쿄 메트로 카드를 파는 기계가 없었고 사무실에서만 살 수 있던 거였다.
그것도 모르고 역을 돌고 또 돌았던 거였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쓰를 외치고 또 외치며 인사한 뒤 사무실로 들어갔다.
도쿄 메트로 카드를 받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상황에 재밌게 느껴지기도 했다. 일본어를 잘 몰라 헤매기는 했지만 이리저리 부딪혀가며 어쨌든 티켓을 받기는 했으니까.
우리의 인생도 이런 게 아닐까.
좌충우돌하며 실패도 하고 전혀 다른 곳에 문을 두드리기도 하지만 그러면서 한 발자국씩 나아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