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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Oct 19. 2023

도쿄에서 만난 무라카미 하루키

나 홀로 도쿄

"말차 라테, 히토츠, 오네가이시마쓰"


(말차라테 한잔 주세요~)


하루키 도서관을 다 둘러보고 나오는데 지하 1층에서 카페를 발견했다.


메뉴에 좋아하는 말차라테가 있는 걸 보고 일본어로 수줍게 주문을 했다. 다행히 직원은 내 말을 알아들었고 일본어로 뭐라고 뭐라고 하는데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계산을 하려고 카드를 내자 아리가또 고자이마쓰,라고 하는 걸 보니 주문이 잘 되었구나, 싶어 안심을 했다.






도서관이 문을 여는 오전 10시에 와서인지 카페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내가 주문을 하고 있는데 아까 봤던 커플이 따라 들어오더니 커피를 주문하고 다른 곳으로 사라져 버렸다. 내부가 너무 조용해서 어색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요함이 왠지 모르게 좋았다.


주문을 하고 어디에 앉을까, 둘러보다 계산대 바로 옆에 있는 큰 테이블에 눈에 띄었다.  주문하는 곳을 등뒤로 하고 앉으면 큰 통유리창 너머로 초록색으로 뒤덮인 화단가 나무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래, 여기에 앉아야겠다.


테이블이 가깝지 않게 띄엄띄엄 놓여 있어서 갑갑하지 않았다.



마음이 뻥 뚫리는 뷰였다.







사실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먼 북소리"라는 책을 아주 오래전 읽은 적이 있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졸음을 참아가며 꾸역꾸역 읽다가 중간에 멈춰버렸다. 유명한 작가라고 해서 읽었는데 그때는 책이 눈에 잘 안 들어왔었다. 이후, 더 이상 하루키의 책을 찾지 않았다.



도쿄를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였다. 비가 와서 실내에 가볼 만한 곳을 찾다가 우연히 나쓰메 소세키 박물관에 가게 되었다. 일본작가는 거의 모르는데 우연히 소세키의 "마음"이라는 소설을 읽고 이 작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랬는데 지도에 소세키 박물관이 있다는 걸 알고 가보게 되었다.


다행히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어서 작가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 들으며 어느 관광지에서보다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냈었다.  


그래서였을까,


하루키 도서관에서 그때 받았던 비슷한 감동을 느끼고 싶었다.  



 






여행 전, 부랴 부랴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의 책을 한 권이라도 읽고 가야 예의일 것 같았다.



서점에서 고른 책은  "노르웨이의 숲"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도 모르게 내용이 술술 읽혔다. 주인공 청년 와타나베의 감정에 이입이 되어 나도 모르게 이 소설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하루빨리 도서관에 가서 하루키를 만나고 싶었다.







와세다 대학교역에 도착했을 때, 이른 아침이어서 캠퍼스는 한적했다.


하루키가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곳이었다.  


대학교 캠퍼스를 갈 일이 잘 없는데 도쿄에서 가보게 되다니.


입구에 들어서자 도서관 한쪽 벽으로 책들이 쭉 꽂혀 있었다. 중앙에는 넓은 나무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공간에 여백이 많아서인지 이곳이 마치 예술공간처럼 느껴졌다.







책들을 둘러보다 재즈 음악이 흐르는 오디오룸을 발견했다.


푹신하고 넓은 소파에 앉으니 잔잔한 재즈 음악이 들려왔다.


긴장이 확 풀렸다.


나도 모르게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었다. 오디오룸에는 재다양한 LP판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하루키가 소장했던 LP 판을 이곳에 기증했다고 한다.


가끔 집중을 해야 할 때 이어폰을 끼고 유튜브로 재즈음악을 듣는데 익숙한 음악이 들려오자 내심 반가웠다.



그렇게 한참을 홀로 그곳에 앉아있었다.






주문한 말차라테가 나왔다.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초록빛 풍경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넓은 테이블에 홀로 앉아 있으니 책 한 권 가져오지 않은 게 아쉬웠다. 할 수 없이 바깥 풍경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누가 보면 혼자 청승맞게 왜 저러고 있나 싶을 정도로 창밖만 계속 바라봤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한숨이 휴, 하고 나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이 순간이, 그리고 넓고 쾌적한 이 공간이 주는 이 여유로움이 참 좋았다.



나도 모르게 도서관에 입구에 쓰여있던 하루키의 글귀를 속으로 곱씹었다.




I hope that this library will become a place of learning
where you can
breathe e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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