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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일하는 사람이 일을잘하는

모르면 물어보며 천천히 가도 괜찮아

by 마리

"안녕하세요. 000 부서의 000입니다. 제가 프린트를 해야 하는데 컴퓨터가 작동을 안 해서요. 죄송하지만 체크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회사에서 일을 할 때 컴퓨터에 에러가 나면 나는 무조건 전산실에 연락을 하거나 컴퓨터를 나보다 훨씬 잘 아는 동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컴퓨터는 곧 정상으로 돌아왔었다. 뭔가 오류가 나면 검색을 해서 직접 알아봐도 되는데 그 과정이 나에게는 어렵게만 느껴졌었다. 그리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옆에 있었기에 굳이 애쓰지 않았다.


컴퓨터를 잘 몰라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24인치 모니터와 본체가 집에 배달되던 날, 얼른 컴퓨터를 설치할 생각에 마음이 설레었다. 설명서의 그림을 보며 코드만 연결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모니터에 연결한 어떤 코드를 어디에 연결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본체를 구석구석 뒤져봐도 연결할 곳이 없었다. 이 선은 도대체 뭐지? 얼굴이 화끈거리고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모니터와 본체를 따로 샀는데 설마 내가 잘못 샀나?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내가 산 컴퓨터는 서비스가 잘 되는 브랜드도 아니었다. 좀 더 알아보고 살걸 그랬나? 급한 마음에 핸드폰에 컴퓨터 수리 관련해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픈 챗으로 바로 문의를 할 수 있는 컴퓨터 수리 전문 카페를 발견하게 되었다. 서둘러 가입을 하고 채팅방에 입장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현재의 내 상황을 설명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하지만 몇 분이 지나도 답이 없었다.


방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코드와 박스를 보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럼 그렇지, 누가 도와주겠어.

닉네임을 "컴맹"이라고 지은 나 자신이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낯선 공간에서 프로필 이미지를 이모티콘으로 무장하고 무작정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아무래도 실례인 것 같았다. 회사에 있었더라면 벌써 누군가가 해결해 주었을 텐데.


이런저런 생각으로 혼자 끙끙대고 있는데 갑자기 채팅방 알람이 울렸다.


"그 코드는 DP선인데 본체 보드에서 지원이 안 되는 것 같네요. 모니터 사진을 좀 보여주시겠어요?"


프로필 이름에서 컴퓨터 전문가 느낌이 물씬한 어떤 분이 말을 걸어 주셨다. 나는 놀란 마음에 사진을 바로 찍어 올렸다.


"모니터에는 HDMI 단자가 있네요. 마트에 가서 HDMI 선을 사서 본체와 모니터를 연결하면 될 거예요"


DP는 뭐고 HDMI는 뭐란 말인가? 아무튼 그분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할 것 같았다. 전문가님께서 내 컴퓨터 사양을 전달해 달라고 하셨다. 그걸 보시더니 내가 산 컴퓨터의 기본 제공은 DP 포트이고 HDMI는 추가로 사야 된다고 하셨다. 컴맹인 내가 아무래도 본체와 모니터를 따로 사서 이런 불상사가 일어난 것 같았다. 온몸에 힘이 빠졌다. 알려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며 맥 빠진 표정의 이모티콘을 올렸다. 그러자 그분이 이 컴퓨터는 3년 무상 보증이니 컴퓨터가 죽을 때까지 쓰면 된다며 웃음으로 나를 위로를 해주셨다.


마트를 돌고 돌아 HDMI 단자를 사서 연결하자 컴퓨터가 작동했다. 너무 신기했다. 인증사진을 찍어 올리자 채팅 방 너머로 전문가님이 진심으로 함께 기뻐하시는 게 느껴졌다. 모르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 그분께 너무 감사했다.



컴퓨터는 작동했지만 프린터를 연결하지 않은 게 마음에 계속 걸렸다. 그리고 인쇄를 해야 하는 날이 드디어 왔다. 오픈 채팅방에 물어볼까 하다 그때 너무 많은 도움을 받은 터라 이번에는 혼자 해결을 하고 싶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검색창에 "프린터"라고 입력을 하니 어떤 창이 떴다. 하지만 뭘 해야 할지 머릿속이 깜깜했다. 혹시나 싶어 유튜브에 "컴퓨터에 프린트 연결하는 법"이라고 쳐보았다. 그러자 관련 영상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영상 속의 또 다른 컴퓨터 전문가님께서 하라는 대로 버튼을 누르고 프린터기를 조작해 보았다. 그리고 종이 한 장이 쑥 들어가더니 인쇄가 되어 나왔다. 너무 감격스러웠다. 내가 프린터를 연결하다니!





이 일을 겪으면서 내가 못할 거라고, 못해낼 거라고 생각하는 일도 스스로 길을 찾으려고 계속 시도하고 노력하면 결국 가능하게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컴맹인 나는 이제 HDMI 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 알게 되었고 프린터가 멈추면 다시 되게 연결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 이런 날이 오다니!


(HDMI: High Definition Multimedia Interface의 줄임말이며 고품질 영상과 음향을 감상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혼자 걸어가고 이 길도 모르면 물어보고 될 때까지 걸음을 멈추지 말아야겠다. 누군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면 컴퓨터 전문가님에게 받았던 고마웠던 순간을 잊지 말고 나도 누군가에게 먼저 손을 먼저 내밀 줄 알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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