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무료쿠폰이 있으면 바로 카페로 달려가 좋아하는 음료를 시켜 먹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집에서 할 일을 하는 게 훨씬 편해져서 쿠폰은 바람 쐬러 밖에 나가고 싶은 날 써야지 하고 아껴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코로나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는 작정하고 아침 일찍 서둘러 카페로 갔다. 좋아하는 자리에 오래 앉아있고 싶어서 카페가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첫 손님으로 도착했다.
코로나 때문인지 카페에는 평소보다 사람이 많이 없었다. 카페에서 틀어주는 캐럴을 오랜만에 들으며 들고 온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집에 있을 때와는 또 다른 어떤 집중감이 느껴졌고 왠지 기분이 좋았다. 책을 한참 읽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카페에는 손님이 꽤 와 있었다. 공부하는 학생들도 보였고 노트북을 들고 와서 홀로 일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다들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떤 일을 하는 걸까? 왠지 궁금했다.
12시가 다 되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집으로 돌아가서 밥을 먹을까 했지만 오늘 하루는 왠지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러다 평소 지나치기만 했던 새로 생긴 돈가스 가게가 생각이 났다.
그래, 오늘은 그 집 돈가스를 꼭 먹어봐야겠어.
오랜만에 혼자 외식을 하러 나온 것 같아 기분이 설레었다. 식당밖에 붙여져 있는 사진대로 돈가스의 비주얼은 좋았다. 하지만 양이 너무 많아서 다 먹고 나니 속이 더부룩했다. 배가 꺼질 때까지 걸어야겠다는 마음으로 밖으로 나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이라서 그런지 길에서 직장인들이 꽤 보였다. 그러다 어떤 어린 직원이 상사로 보이는 분과 밥을 먹으러 가는듯한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서 왠지 모를 불편함이 느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더부룩했던 내 배는 그 순간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다.
직장인들을 지나칠때 요즘 매일 입는 검은색 패딩에 책가방을 메고 화장을 하나도 안 한 채 마스크를 낀 내모습이 살짝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며칠 전부터 "과연 내가 이렇게 지내는 게 맞는 일일까?"라는 생각에 마음에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앞으로 몇 년 후에는 한 달에 얼마 이상 벌기를 달성해야지, 월급을 받을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거야!라는 생각으로 다이어리에 야심 차게 나만의 계획을 적어나갔다. 하지만 해야 할 일에 비해 실제로 한일이 별로 없어 보였을 때, 내가 하루 종일 뭘 했나 싶었다. 이 속도로 계속 나아가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에 마음만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복잡한 생각을 떨쳐내고 싶어서였는지 발걸음이 서점으로 향했다. 책에는 해결책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날 내 눈에는 이상하게도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서점을 몇 바퀴 돌고 돌아도, 이 책 저책을 살펴도 위로를 받거나 힐링을 받을 수 있는 책이 한 권도 없어 보였다. 마음은 더 무거웠고 하는 수없이 서점을 그냥 나오기로 했다.
서점이 있는 건물에 있는 마트에 잠깐 들르기 위해 지하로 내려갔다. 그런데 저 멀리 아이스크림가게가 보였다. 나는 홀린 듯 가게 앞으로 갔고 망설임 없이 주문을 했다. 평소에는 살찔까 봐 먹고 싶어도 꾹 참고 몇 번을 그냥 지나치던 곳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아이스크림을 꼭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아이스크림은 쫀득쫀득하고 달콤했다. 나는 가방을 그대로 맨체로 자리에 앉아 순식간에 아이스크림을 끝냈다.
다음에는 어떤 다른 맛을 먹어볼까?
매대에 있는 알록달록한 아이스크림 사진들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새로 나온 맛들이 너무너무 궁금했다. 그래, 다음에는 저 맛을 꼭 맛봐야겠어. 아직 맛보지 않은 아이스크림들의 맛을 상상하니 갑자기 마음이 설레었다.
뇌에 달달함이 전달되서였을까? 하루 종일 무거웠던 마음은 아이스크림 덕분에 어느새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밖으로 나와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내 감정의 온도는 아까와는 확연히 달라져있었다.
걷고 또 걷다 보니 지금 나를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이 뭔지 알 것 같았다.
그것은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미리 걱정하는 나의 불안감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회사를 다녀도 매일이 불안한 건 마찬가지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때의 막막함로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비록 내 삶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지금은 확실치 않지만 내가 계획하고 있는 일들에 최선을 다하며 매일을 살아가고 싶다. 그러다 보면 몇 년 후에는 내가 꿈꾸는 모습에 조금이라도 다가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