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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공항에서 전력 질주하던 그날이 그립습니다

다음에 출장을 가게 된다면 폴더를 꼭 챙기겠어요

by 마리

이상하다. 아무리 찾아봐도 우리가 타야 할 멕시코시티행 비행기 편 정보가 안보였다.


함께 출장 온 직원과 멕시코의 지방 도시에서 미팅을 마치고 공항으로 왔는데 항공편 정보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핸드폰으로 항공사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결항이 되었다고 했다. 지진이 나서 멕시코 전역에서 멕시코시티로 향하는 모든 항공편이 취소되었던 것이다.


난감했다.


멕시코시티에 빨리 도착해서 다시 다른 도시로 가야 하는데 지진이 나다니.


공항에서 발을 동동 구르다 앱을 켜고 이곳에서 다른 도시로 바로 향하는 티켓을 구매했다. 다행히도 연결 편이 있었다. 우리는 바로 이동을 해서 무사히 회의를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 지진이 안정이 되어서 오후 늦게 멕시코시티로 다시 돌아왔다.





도착하자마자 그날 새벽 1시 비행기로 에콰도르를 가야 했다. 호텔에 도착해서 정신없이 가방을 챙기고 바로 공항으로 출발했다.



수속을 정신없이 마치고 에콰도르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출국 30분 전 게이트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직원이 여권과 티켓 외에 또 다른 서류를 달라고 했다. 갑자기 등골이 오싹했다. 호텔에 도착해서 급히 짐을 싸느라 출입국신고서를 큰 캐리어 가방에 넣고 보내버린 거였다. 혹시나 해서 메고 있던 핸드백 안을 뒤져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직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런 나를 지켜보던 어떤 분이 손가락으로 공항복도 끝을 가리키며 출입국사무소에 가면 발급을 해준다고 했다.


출국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내 마음은 타들어가고 있었다.


망설일 틈도 없이 있는 힘을 다해 복도 끝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이렇게 뛰어 본 게 얼마만이었는지.

공항은 넓었고 복도는 길었다. 심장이 벌렁벌렁 뛰기 시작했고 입은 바싹바싹 말라왔다. 출입국사무소 표지판을 향해 정신없이 달려 드디어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느낌이 왠지 싸했다. 알고 보니 그곳에서는 멕시코 현찰만 받는다고 했다. 돈을 챙기지 않았다니. 눈앞이 깜깜했다.


다급한 마음에 길게 줄을 선 사람들에게 얼굴에 철판을 깔고 도움을 요청했다. 지금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출입국신고서를 사야 할 현금이 없다고, 정말 미안하지만 돈을 빌려줄 수 없냐며 울부짖었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마치 나를 살려달라는 절박함으로 소리쳤다. 비행기를 놓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 나를 외면했고 아무도 나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내가 멕시코 공항에서 구걸을 하게 될 줄이야.


발을 동동 구르다 시계를 보니 출국시간이 벌써 넘어있었다. 내 얼굴과 등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그제야 나는 비행기 타는 것을 포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복도를 가로질러 무거운 걸음으로 다시 게이트 앞으로 돌아오니 비행기는 떠나고 없었다. 멀리서 허망하게 홀로 앉아 있는 동료가 보였다.






우리는 서둘러 항공편을 다시 검색해보았다. 마침 다음 날 새벽에 에콰도르행 비행기가 있었다. 공항 벤치에 앉아 그 티켓을 예매하고 그곳에서 밤샘을 했다. 그리고 출입국신고서는 다시 발급을 받았다. 다음 날, 우리는 새벽 비행기에 무사히 탑승을 했고 에콰도르에 잘 도착할 수 있었다.


한고비를 넘긴 것 같아 마음을 쓸어내리며 비행기에서 내렸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체크인 한 가방이 보이질 않았다. 공항직원에게 물어보니 놓친 비행기를 타고 에콰도르에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가방을 아무도 안 찾아가자 멕시코로 다시 돌려보냈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당장 그 날 오후에 미팅을 가야 하는데 갈아입을 옷이 하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근처 쇼핑몰에 가서 가격대가 제일 만만한 검은색 블라우스, 검은색 바지, 그리고 검은색 샌들을 샀다. 가방도 없이 입은 옷을 그대로 입고 호텔에서 좀 쉬다가 샤워를 하고 새로 산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미팅 장소로 향했다.






내 가방은 언제 오지? 일정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누가 가방을 가져갔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다. 항공사에 전화해보니 가방은 다음 날 새벽에 도착한다고 했다. 다음 날 저녁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걸로 예정이 되어있었는데 짐을 못 찾고 에콰도르를 떠난다는 건 상상이 안되었다. 걱정으로 밤을 보낸 뒤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갔다. 아직 문을 열기도 전이었는 데 동료와 사무실 앞에 앉아 무작정 대기를 했다. 몇 시간 후, 방금 도착한 듯한 스튜어디스가 사무실에 왔고 우리는 가방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얼마 후, 직원이 따라오라고 한 곳으로 가보니 저기 한구석에 먼지로 뒤덮인 우리의 가방이 와 있었다.





그 날 이후 나는 모든 종류의 영수증과 서류는 파일철에 무조 건 보관하는 버릇이 생겼다. 버리지 않고 일단 무조건 한 곳에 보관하다 보면 언젠가 다시 꼭 찾게 되는 일이 생겼다.


코로나 때문에 공항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는 요즘, 멕시코 공항에서 긴 복도를 전력 질주하고 공항에서 밤샘을 하던 그때의 시간들이 왠지 그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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