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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바다거북 Dec 03. 2019

흙으로 돌아갈 삶

어느새 와 있는 가을을 보고 생각했다. 하나님은 참 성실하시다고.
사람은 쉽게 고이고 정체되지만 하나님은 때가 되면 어김없이 계절을 바꾸신다.
'너희 지금 거기 머물러 영원히 살 것처럼 굴지만 때가 되면 나뭇잎같이 흙으로 돌아오게 될 거란다, '하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연속선에 놓인 삶 속에서 자각을 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누구나 하루하루 노인이 되어가고 있다, 는 생각을 새삼한다.

어릴 적에 노인의 지혜가 얼마나 귀한 지에 대해 배웠던 것 같은데,  나 자신도 조금씩 늙어 언젠가 노인이 된다는 사실은 미처 자각하지 못했었다.

하루하루 늙어간다는 것은, 더 많은 시간을 경험하고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지 

아무도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

마냥 어리고 예뻤던 날들엔 그때 눈 앞의 현실들, 마치 영원할 것이라 느껴졌던, 그러나 지나고 보니 힘없는 껍질에 불과했던 것들에 많이 갇혀있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 지금 내가 나 자신과 동일시하는 정체성, 그리고 너무나 내게 당연한 것이라 자각조차 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들  중에 훗날 모래알처럼 흩어져 사라지고 '그땐 그랬었지' 기억 속에나 남게 될 것이 무엇일지,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내가 점점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갈 것이라는 점만은 확신할 수 있다. 

감사한 일이다.

부지런히 늙어가다가, 때가 되면 흙으로 돌아가 주님 품에 안기면 될 일이다.


콩나물시루의 비유를 좋아한다. 

나는 늘 내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은 콩나물을 키우고 있었던 게지. 

헛되이 물을 쏟아버린 시루 안에 하나님이 무언가를 성실히 키워주셨다.


삶이 구멍 난 조각배 같다고 느낀 적도 많았다.
구멍 난 선창으로 밀고 들어오는 짠 물을 쉴 새 없이 퍼내며 살아야만 하는 삶이 너무 지겹다고,

때때로 폭풍우가 지나가기만을 무력하게 견뎌야 하는 이 삶이 참 비루하다고  느꼈었다.

그러나 영문도 모른 채 내던져진  그 대양이 실은 하나님 자체라는 것을, 까짓 침몰해도 아무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에 두려워하던 심해는 어머니의 양수 같게 되었고 나는 그냥 자유로워졌다.

선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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