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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바다거북 Sep 14. 2021

글 쓰는 업의 괴로움

변호사업의 본질에 대하여

변호사 업무의 본질은 의외로,

화려한 언변에 기초한 법정 토론도 아니고

지능적인 소송 전략 수립도 아니고

유려한 상담 스킬도 아니고

그냥 글쓰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매번 스스로를 간신히 달래고 얼래며 초고를 완성한다.

세기의 명문을 쓰려고 노력하지 않을 거야

이건 매우 기초적이고 실용적인 글쓰기야

아무 말이나 일단 진도 좀 빼봐바


사실은, 어릴 때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주제 파악이 빨라서 금세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접었다.

글쓰기가 자신이 없었던 적은 없는데,

쏟아낼 이야기가 내 속에 없었다.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만 해도

3년 내내 열심히 공부해서 합격증을 받았을 때 조차도

어릴 때 일찌감치 접었던 일 - 글을 쓰는 일이 업이 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마감에 피를 토하며 서면을 찍어내는 직업을 갖게 될 줄은 몰랐다는 뜻이다.


평생에 처음으로 글을 쓰는 일이 자신이 없어졌다.

초고를 완성하기까지가 가장 괴롭지마는, 퇴고가 즐거웠던 적도 없다. 차마 인정하기 싫은 못난 자식을 어르고 달래며 키우는 심정으로 퇴고를 하다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마감의 마감이 도래하면,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멈춘다.


그래도 인생은 결국 돌고 돌아 하고 싶던 걸 하게 된다.

내 뱃속엔 이야기 주머니가 없으니깐 글 쓰는 일은 못하게 될 줄 알았는데,

타인들이 끊임없이 쏟아놓는 이야기들을 잘 듣고 받아쓰는 일이 나의 업이 되었다.

언제나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듣는 것이 즐거웠으므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보다는 잘 정돈하는 일이 편안했으므로, 소설가보다는 이 편이 내게 더 잘 맞는 옷 같아 만족스럽다.


다만 글쓰기의 괴로움을 얻었다.

글을 쓰는 일이 괴롭지 않게 될 날이 언젠가 오게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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