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유독 네 번째 아내를 사랑했지요. 언제나 그녀와 함께 했고 좋은 음식을 주고 화려한 옷을 입혀주었습니다.
그는 세 번째 부인도 사랑했습니다. 공들여 얻은 세 번째 아내는 그의 자랑이었습니다. 그는 그녀가 너무 자랑스러운 나머지 사람들을 만날 때면 늘 동행했습니다. 하지만 공든 만큼 그는 그녀가 자기를 떠나갈까 봐 항상 안절부절했습니다.
그는 두 번째 아내도 역시 사랑했습니다. 그녀는 늘 남편을 지지했습니다. 마음이 잘 맞는 두 번째 아내는 그와 대화도 잘 통했고 외로울 때나 어려움에 직면하면 그의 곁에 있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남자는 이상하게도 첫 번째 아내에게는 무관심했습니다. 그녀를 종 부리듯이 부렸습니다. 때로는 함부로 대하기도 했습니다. 첫 번째 아내가 그를 가장 사랑했음에도 말입니다.
하루는 이 남자가 머나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야 했습니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기약 없는 여행길이었습니다. 그는 길고 긴 여정을 함께하기 위해 아내들을 데리고 가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아내들을 불러 물었습니다. 멀고 먼 여행. 기약 없는 여행을 해야 할 것 같은 데. 동행해 줄 수 있는지. 함께해 줄 수 있는지를.
그러자 가장 사랑하는 네 번째 아내가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습니다. “당신 혼자 가세요. 당신과는 살만큼 살았어요.”
크게 실망한 남자는 세 번째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난 당신을 그동안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았소. 나와 함께 떠납시다.” 그러나 세 번째 아내 역시 단번에 거절하더니 오히려 “당신이 떠나면 난 재혼할 거예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자랑이었던 세 번째 아내한테도 냉담한 거절을 당한 남자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는 두 번째 아내에게도 물었습니다. “당신은 나와 마음이 잘 맞았소. 언제나 음식을 나누며 추억을 함께한 당신이 나와 함께 여행을 떠나면 좋겠소.”
그러자 그녀는 “마을 입구까지 배웅은 해 드릴게요. 그러나 여행은 함께할 수 없어요.”라며 말꼬리를 흐렸습니다.
남자가 절망에 빠져 있던 그때. 나지막하게 “제가 당신과 함께하겠어요.”라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남자가 돌아보니 첫 번째 아내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녀는 오랜 기다림과 내조로 수척해진 모습이었습니다. 남자는 달려가 아내를 끌어안으며 말했습니다. “내가 당신을 더 잘 대해 주었어야 했는데….”
# 네 명의 아내의 의미
우리는 모두. 일생 동안 네 명의 아내와 결혼해 산다고 합니다.
먼 나라로 가야 하는 여행은 죽음을 뜻합니다. 누구나 그리고 언젠가는 꼭 가야 할 여행이지요.
넷 번째 아내는 우리의 ‘육체’을 말합니다. 때문에 아무리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몸을 아름답게 가꾸어도 죽을 때는 두고 가야 합니다.
세 번째 아내는 ‘명예와 재물’입니다. 아무리 소중하게 대해주어도 먼 길 나서면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가버리고 말지요.
두 번째 아내는 ‘가족과 친구들’이랍니다. 우리가 그들과 아무리 많은 것을 나누며 함께했더라도 기껏해야 무덤 앞까지만 동행해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첫 번째 아내는 ‘영혼’을 의미합니다. 본래 우리 ‘자신’이자, 우리가 몸을 치장하고 부와 명예를 추구하느라 소홀히 그리고 함부로 다룬 '실재 나'입니다.
그런데 영혼은 우리가 일상에서 평상시 내가 상대했던 그대로 우리를 응대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실망과 걱정과 원한으로 내 영혼과 마주했다면 영혼은 어쩌면 나보다 더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영혼은 본래 '하느님의 것'
사실 우리는 지금ㅡ여기서 살아가는 동안 몸을 치장하고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고 가족과 친구와 더불어 사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과 정신을 올바로 세우고 영혼을 건강하게 가꾸는 일일 것입니다.
허례허식에 사로잡힐수록 영혼은 수척해집니다. 또 과도한 명예욕과 탐욕은 오히려 영혼을 아사시킵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의존적인 삶은 홀로 견뎌야 할 인고의 시간이 닥치면 힘없이 우리를 무너트립니다.
자신의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몸을 치장하고 부와 명예를 얻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외모와 부와 관계 중심의 삶을 살면서 자신을 과시하는 것은 결국에는 절망과 고독감에 사로잡히게 할 뿐입니다.
사람은 본래 하느님 것이라. 내 영혼 깊은 곳에서 나는 영원을 동경하고 창조주를 그리워합니다. 이것은 육체의 쾌락이나, 부나 명예가 가져다줄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관계나 재물의 소유가 결코 가져다줄 수 없는 것입니다.
‘영원을 동경하고 진리와 순수이신 분을 그리워함’은 육체의 연약함을 인식하고, 내가 소유했던 것들이 결국은 내 것이 아님을 알게 될 때. 그리고 인간은 결국 홀로 서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때 깨달을 수 있겠지요.
불멸의 육체는 없습니다. 영원한 소유도 없습니다. 영원한 관계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본래 하느님의 것. 영원한 영혼을 건강하게 지켜야겠습니다.
"하느님의 것"인 내 영혼을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그리고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네 번째 아내인 육체가, 세 번째 아내인 소유가, 두 번째 아내인 친구와 가족이 우리의 삶의 전부가 아니며 늘 조강지처인 ‘영혼’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영혼을 돌보지 않으면 그 영혼이 언젠가는 아프다고 말할 것입니다. 영혼을 보살피지 않고 사랑하지 않으면 결국 나는 생기를 잃고 말라 버릴 것입니다.
살다 보면 육체가 무너져 내릴 때가 있습니다. 내 것이 내 것이 아님을 알게 될 때가 있습니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과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결국 본래 ‘하느님의 것’인 영혼만이 나와 동행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겠습니다.
# 우리의 아버지
지금 소유한 유산이 모두 다 사라지는 날. 우리는 알 몸으로 왔듯이 맨 몸으로 아버지께 돌아가야 합니다.
제한 없이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우상숭배 사건에서도 당신 백성에게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시는 분이십니다. 목이 뻣뻣한 백성에게로 향했던 진노를 고집하시지 않습니다. 모세의 말에 못 이기는 척, 모세의 애원에 굴복하시는 분이십니다.
미카 예언자는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못 본 체해 주시는” 하느님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꺼이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시다.”(미카 7,18)
하느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를 가엾이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허물을 모르는 체해 주시며, 당신께로 돌아서는 이들을 기쁨으로 맞이하시는 분이십니다. 죄로부터 돌아선 죄인 하나로 인해 그분의 나라에서는 잔치가 벌어집니다. (참조: 미카 7,19)
오늘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작은 아들처럼 아버지의 넉넉함을 기억한다는 것은 큰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루카 15,22-24)
그리하여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돌아온 아들이 용서를 청하든 그렇지 않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선 것만으로도 기뻐하시고 용서하시는 사랑이 충만한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우리보다 먼저, 그리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계십니다. 내가 세상에 나기도 전부터 나를 사랑하고 계시는 하느님.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는 우리의 허물과 나약함을 잘 알고 계시기에. 나의 죄와 내 잘못을 조건 없이 용서하십니다. 죄로부터 돌아선 나를 품어주고 변호해주시며, 오히려 감사하고 기뻐하시며 잔치를 벌이시는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