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단지

꽹과리 리더십

by 진동길


지금 우울하고 지쳐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 펀드매니저와 함께

경기대 체육학과 출신 펀드매니저와 윷놀이를 한 적이 있다.

뜻하지 않게 수사님들과 평신도의 대결이 되고 말았는데, 그 가운데 모 투자증권 과장으로 있는 펀드매니저가 상대팀에 속해있었다.

그의 이력을 살펴보며 전공과는 무관한 체육학과 출신이었음에도 S증권사에서 L증권사로 스카우트된 유망한 펀드매니저였다.

스펙 지수가 300대에 가까워 일류대와 해외 MBA 출신들도 취업하기 힘든 직업군에 체육학과 출신이 도전장을 내민다는 것은 어쩌면 무모한 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난 오직 용기 하나로 부딪쳤다. 대다수 증권사에선 서류전형에서부터 떨어졌다. 다행히 S증권에선 면접시험까지 갔다. 면접 지침서를 사서 깡그리 외워 면접에서 그대로 답변했다. 또 면접관들에게 '비전공자라고 웃겠지만 저는 포커를 정말 잘합니다. 증권업계에선 베팅 감각이 남다른 저를 필요로 할 것입니다.'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S증권은 이런 나를 가상히 여겨 합격시켰던 것 같다."

물론 입사 후, 연수기간 중엔 화장실 가는 것 말고는 자리를 뜨지 않고 증권 관련 서적을 읽고 또 읽었고, 지점 배치 후에도 전공의 벽을 넘으려 아예 지점에서 겨울엔 소파에서, 여름엔 책상 위에서 자며 주식 공부를 했다고 한다.

또 실력이 뛰어난 선배의 일거수일투족, 심지어 말투까지 흉내내기도 했고, 부족한 지식을 보충하기 위해 야간 경영대학원에 다니면서 재무관리를 공부할 정도로 엄청난 노력파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한 해에 적게는 수십억 원의 이익과 많게는 100억 원까지 수익을 내봤다는 그의 경력에는 단순히 금융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리고 그는 금융지식 이외의 다른 무엇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참여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순간적으로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방의 심리를 안다는 것은 증시에서 대단히 유용한 능력이다. 또 체육학은 내성적인 나를 외향적으로 만들어 증권영업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편을 갈라 윷놀이를 하던 날 나는 그의 또 다른 모습을 보았다.

# 꽹과리

그날 그의 모습은 사물놀이패에서 '꽹과리'를 치는 사람 같았다.

하늘의 천둥을 의미하는 꽹과리는 풍물놀이나 사물놀이에서 지휘자의 역할을 맡아 가락과 진풀이를 엮어 나간다.

꽹과리의 역할은 한 무리와 그 자리의 흥과 기운을 돋우어 판세를 지휘하고 바꾸어 놓는다.

그의 모습이 그랬다. 다섯 판 모두 초반에는 수사님 팀이 앞서 나갔다. 그런데 그가 흥을 돋우기 시작하면 다 이긴 판도 결국 지고 말았다.


그가 흥을 돋우면 기울던 판도 세가 바뀌었다. 모세가 두 팔을 들어 홍해를 가르고 아말렉족과 싸울 때 전장을 지휘하듯이 그가 흥을 돋울 때마다 상황이 역전되었다. 소름 돋는 그 상황은 때로 경롭기까지했다.


우리 팀에게 그는 두려운 존재였지만, 상대팀에게 그는 마치 승리의 전령사 같았다. 그리고 나에게 그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는 모세 같았다.


"그때 아말렉족이 몰려와 르피딤에서 이스라엘과 싸움을 벌였다.


그러자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너는 우리를 위하여 장정들을 뽑아 아말렉과 싸우러 나가거라. 내일 내가 하느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언덕 꼭대기에 서 있겠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말한 대로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후르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우세하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우세하였다."(탈출 7,8-11)


# 꽹과리 리더십


긍정적 리더십. 도전을 꿈꾸는 이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미래는 분명 꿈꾸는 사람의 것이지만 그 꿈은 현실에 발을 딛고 있어야 한다. 이상과 현실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분명 리더는 그의 말대로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납득 타당해야 한다. 구체적이면 더 좋다. 그 비전은 그의 말대로 현실에 발을 딛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흥을 돋우는 일을 그치지 않았다. 짙은 어둠 속에서도 새벽의 눈부신 빛을 선포하는 예언자처럼.


고통과 좌절, 절망과 슬픔이 현실을 지배하고 있을 때 더욱 빛나는 그의 꽹과리 리더십이 그립다.


암으로 세상을 먼저 떠난 (정호근, LG투자증권 과장). 그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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