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단지

육불치

by 진동길


# 봄비

"그분의 오심은 새벽처럼 어김없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비처럼,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시리라."(호세 6,3.)

죽은 것 같던 나무와 무덤 같던 대지에 파릇한 생명들이 잠에 겨운 눈을 실눈처럼 뜨고 있습니다.

새벽처럼 어김없이 올해도 봄이 왔습니다. 봄비가 내린다는 일기 예보에 서둘러 감자를 흙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곧 씨눈에서 새싹이 나오겠지요.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 분명합니다.

땅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지만, 씨눈을 달고 흙에 묻힌 감자의 몸은 썩어서 다시 새로운 몸으로 많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 시기는 온 세상 만물이 그리스도의 수난과 돌아가심, 그리고 부활의 의미를 선포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씨눈처럼 하느님의 영혼을 품고 있는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의미를 묵상하게 합니다.

# 바위에 새겨야 하는 것

두 사람이 사막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행 중에 문제가 생겨 서로 다투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뺨을 때렸습니다. 뺨을 맞은 사람은 기분이 나빴지만 아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는 모래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오늘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나의 뺨을 때렸다.'

오아시스가 나올 때까지 둘은 말없이 걸었습니다. 마침내 오아시스에 도착한 두 친구는 그곳에서 목욕을 하기로 했습니다. 뺨을 맞았던 사람이 목욕을 하러 들어가다, 늪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뺨을 때렸던 친구가 그를 구해주었습니다. 그가 늪에서 빠져나왔을 때, 이번에는 돌에 이렇게 썼습니다.

'오늘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나의 생명을 구해주었다.'

그를 때렸고 또한 구해준 친구가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내가 너를 때렸을 때는 모래에다가 적었는데, 왜 너를 구해준 후에는 돌에다가 적었지?”

친구는 대답했습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괴롭혔을 때, 우리는 모래에 그 사실을 적어야 해. 용서의 바람이 불어와 그것을 지워버릴 수 있도록. 하지만 누군가가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하였을 때, 우리는 그 사실을 돌에 기록해야 해. 그래야 바람이 불어와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테니까.”

잊어서는 안 될 소중한 은혜. 행여 모래에 새겨 금방 잊어버리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나쁜 기억들은 모래에 새겨 마음에서 빨리 지워버릴 수 있기를.

돌에 새겨 두고두고 오래오래 기억할 사람들과 살아오면서 받은 많은 은혜들을 기억합니다. 인내와 사랑이 우리 영성 생활에 뿌리를 깊이 내려서 더 많은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 기도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8,14.)

기도는 하느님과 함께하는 대화이지요. 어떤 이는 하느님과 옥신각신 하는 이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울부짖으며 매달리기도 합니다. 또 다른 이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정답게 나누기도 하겠지요.

오늘은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지요.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 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습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비유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전하는 경고입니다. 비유 말씀 끝에 이런 말씀을 남기시지요.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루카 18,9-14.)

# 육불치(六不治)

사마천 사기 <편작열전>에 보면 명의라도 도저히 고칠 수 없는 6가지 불치병이 있다고 합니다.

1. 교만하고 2. 돈이 세상에서 최고라고 생각하며 3. 과식과 사치를 일삼고 4. 일과 가정의 조화가 깨지며 5. 몸과 마음이 극도로 쇄약 하거나 6. 무당의 말만 믿고 의사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일컫었는데요.

편작은 ‘육불치’(六不治)의 난치병을 말하면서 이 중에서 한 가지만 있더라도 병이 중하게 되고 고치기 힘들게 된다고 합니다.

그가 말하는 ‘육불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환자가 교만하고 방자하여 내 병은 내가 안다고 주장하는 환자.

둘째 자신의 몸을 가벼이 여기고 돈과 재물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셋째 입고 먹는 것을 적절히 하지 못하는 사람.

넷째 음양의 평형이 깨져서 오장의 기가 안정되지 않는 사람.

다섯째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서 도저히 약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

여섯째 무당의 말만 믿고 의사를 믿지 못하는 사람. -참조: 비즈니스 동의보감-

# 바리사이의 병

바리사이의 기도는 육불치 중에서 가장 첫 번째에 해당하는 병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의사 앞에서 남편과 이웃의 병을 늘어놓으며 험담하다 못해 자신은 병이 없다고 말하는 환자와 다를 바 없는 바리사이의 기도는 교만의 정점에 있습니다.

율법의 정신은 실천하지 않고 형식주의에 빠져 온갖 율법의 잣대를 타인에게로만 겨누고 있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그들은 겉은 멀쩡한 듯하지만, 안으로는 온갖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병은 고칠 수 있고, 장애를 딛고 일어선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진짜 장애는 자신이 앓고 있는 병과 장애가 무엇인지를 모른 교만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바리사이의 교만이 가장 큰 장애이고 불치병은 아닐까.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서장애, 애착관계에 몸이 묶여 자유롭지 못한 지체장애, 형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시각장애, 충고하는 말은 듣지 않고 회피하는 청각장애, 칭찬과 격려의 말은 전혀 할 줄 모르는 언어장애, 세상에 자기밖에 모르는 인격장애.

어떤 공동체든 ‘아웃 사이더’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상처와 아픔으로 위축되어 있습니다. 그림자 뒤에 숨어서 살아가지요.

우리가 먼저 '손을 뻗어' 그들에게 내밀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시선과 마음이 그들에게 먼저 가닿을 수 있기를.

먼저 다가가서 그들이 사람들 가운데로 나올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스스로 표현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 누군가에게 험한 세상을 버텨낼 수 있는 언덕이자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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