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단지

최고의 연인

by 진동길



사랑의 조건은 無조건이라고 합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이미 자기가 받은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함께 나눌수록 더 큰 사랑을 낳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겠지요.

# 그녀와 남편의 사랑

어디를 보나 나무랄 데가 없는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한 가지 숨겨진 큰 콤플렉스가 있다면, 그것은 눈썹이 없다는 것. 정말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늘 짙은 화장으로 눈썹을 그리고 다녔지요. 하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그러던 그녀에게도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습니다. 정말로 사랑했습니다. 남자도 그녀에게 다정하고 따스하게 대해 주었고 둘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눈썹 때문에 언제나 불안했습니다.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도 그녀는 자기만의 비밀을 지키면서 행여나 들키면 어쩌나, 그래서 남편이 자기를 싫어하게 되면 어쩌나, 조마조마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따뜻하기만 한, 남편의 눈길이 경멸의 눈초리로 바뀌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삼 년이란 세월이 무사히 지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이들 부부에게 예상치 않던 불행이 닥쳐왔습니다. 상승일로를 달리던 남편의 사업이 일순간 망하게 되었습니다. 둘은 길거리로 내몰리고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이 연탄배달이었습니다. 남편은 앞에서 끌고 그녀는 뒤에서 밀며 열심히 연탄을 배달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던 오후였습니다.

언덕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했지만, 리어카의 연탄재가 날아와 그녀의 얼굴은 온통 검정 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눈물이 나고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얼굴을 닦을 수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간직해온, 자기만의 비밀을 들켜버릴 것 같아서, 거울 없이는 함부로 얼굴을 닦을 수 없었습니다.

근데 그때, 남편이 걸음을 멈추고 그녀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수건을 꺼내어 그녀의 얼굴을 닦아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손길이 조심스럽게 떨리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떨고 있는 자기 마음의 진동처럼.

수십수백 컷의 사진이 영사기 너머로 소리 없이 돌아가듯, 그녀는 그 둘 사이에 숨 막히는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손길은 따뜻하기만 했습니다.

그녀의 얼굴을 닦아주는 조심스럽고 부드러운 남편의 손길은 그녀의 눈썹만은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녀도 그런 남편의 마음을 알 것 같았습니다. 숨겨주고 싶은 아내의 비밀을 남편은 지켜주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렇게 그녀의 눈물까지 다 닦아준 남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정하게 웃으며, 다시 수레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 최고의 연인

최고의 연인은 시력이 나쁜 연인이다. 흐릿해서 더 아름답고 잘 안 보여서 흥미를 잃지 않을 정도의 시력, 사랑하는 사람의 시력은 그래야 한다.

한 남자가 결혼을 하고도 아내가 어여뻐서 어쩔 줄을 모른다. 모두들 아내가 어디가 그렇게 예쁘냐고 묻는다.

남자는 대답한다.
“눈이 나빠서 세상이 좀 흐릿하게 보이는데,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이던 때보다 훨씬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 아내도 그렇다.”

그렇다. 최고의 연인은 시력이 나쁜 연인이다. 뾰루지 같은 건 알아보지도 못하고, 귤껍질 같은 피부도 도자기 피부로 봐주는 눈 나쁜 연인.

작은 실수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큰 실수도 잘못 봤으려니 넘기고, 허술한 마음 같은 건 알아도 모르는 척 넘어가는 눈 나쁜 연인. 잘 안 보이는 것들은 모두 다 좋은 것이려니 여기는 시력 나쁜 연인, 그런 사람이 최고의 연인이다. -김미라, 삶이 내게 무엇을 묻더라도 중에서-

# 모두 다 사랑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신명 6, 4-6)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마르 12, 33)

우리에게도 최고의 연인이 있습니다. 눈도 안 좋으시고 기억력도 나쁘신 연인. 그러나 그 마음만은 따뜻한, 사랑에 빠진 바보 같은 연인. 눈물도 많고 마음은 여리며, 바다같이 넓은 마음을 가진. 그런 연인이 있습니다. 주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삶에 돋아난 뾰루지 같은 건 본체만체, 알아도 모른 척, 그 많은 투정과 불평도 참아 받아내시는 분이십니다. 내 안에 수없이 많은 탐욕과 욕망의 죄들과 위선과 거짓의 허물들을 당신 혼자 뒤집어쓰신 분이십니다.

오히려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조차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라며 기도하시는 정말 바보같이 눈 나쁜 연인. 주님이십니다.(루카 23, 34)

그 사랑이 곧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릅니다(마르 13, 32). 그러니 늘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겠지요.

모두가 사랑이면 좋겠습니다. 이웃의 “작은 실수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큰 실수도 잘못 봤으려니 넘기고, 허술한 마음 같은 건 알아도 모르는 척 넘어가는 눈 나쁜 연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밖에 모르고 이웃을 사랑할 줄밖에 모르는 눈 나쁜 연인. 서로가 서로에게 “잘 안 보이는 것들은 모두 다 좋은 것이려니 여기는 시력 나쁜” 그런 최고의 연인이 되어, 최고의 사랑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사랑의 등불을 준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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