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단지

이 안에 너 있다

by 진동길


# 봄소풍

소풍을 간다
그대 마음속으로
지금쯤 그곳에는
봄 꽃들이 활짝 피었겠지

# 백목련

지난밤 새, 나무에 핀 연꽃이 꽃잎을 많이 떨구었습니다. 돌아서 가는 겨울을 그리워하며, 북쪽 하늘만 바라보던 북향화. 그 이루지 못할 사랑이 하얀 꽃무덤이 되어 수도원 앞마당에 내려앉아 있습니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웨딩 장갑을 닮은 꽃잎. 북향화가 꽃잎은 떨구었으니 이제 곧 파란 잎이 돋아날 겁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낙화 중에서-

# 할머니의 사랑

1970년대 초. 여름방학. 손자가 놀러 온다는 소식에 시골 할머니는 하루 전날 간식을 사서 장롱 깊숙이 넣어두었다.

드디어 손자가 도착하자 할머니는 줄 것이 있다면서 조용히 방으로 데려가 장롱을 열었다. 그런데 큰 맘먹고 사둔 간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남은 건 나무 막대기와 이불 사이에 끈적한 흔적만 남아있었다.

할머니가 손자에게 먹이고 싶었던 그것. 다른 식구들 몰래 장롱 깊숙이 넣어둔 간식은 아이스께끼였다.

때로는 애지중지 아끼고 남몰래 감추어두고 있는 것의 실체가 할머니의 아이스께끼와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언젠가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리는 것들뿐입니다. 천하에 둘도 없이 귀한 것도 한 때, 그때가 지나고 나면 쓸모없이 되거나 사라져 버리지요.

하지만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손자의 마음속에는 아이스께끼 맛의 달콤한 할머니의 사랑이 남아있겠죠. 아이스께끼는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지만, 그 사랑은 손자에게 '나비효과'를 남겼으리라 믿습니다.

# "이 안에 너 있다."

“은혜의 때에 내가 너에게 응답하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이사 49,8.)

한때 '이 안에 너 있다.'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듣기만 해도 닭살이 돋는 말인데요.

오늘 이사야 예언자는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 49,15.)

애지중지(愛之重之), 노심초사(勞心焦思)란 말이 딱 어울리는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사랑이 사랑을 합니다. 사랑이 사랑을 낳습니다. 선한 씨앗이 선한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 안에 하느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의 말씀을 하시고 하느님의 사랑을 낳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속에는 오직 하느님뿐입니다. 아버지와 하나이십니다. 아버지와 하나이신 예수님은 아버지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자녀는 그 부모를 잊었어도 부모는 쉽게 제 자식을 잊을 수 없지요.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하느님의 마음은 오로지 당신의 자녀들에게 머뭅니다. 마침내 맏아들을 제물로 내어놓기까지 자녀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분의 생각은 온통 자녀들에게로 향해 있고 그 마음은 한 시도 자녀들 곁을 떠나지 못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요한 5,24.)

자녀들이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그 마음을 우리는 자녀들을 구원하신 곳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 위입니다.

그곳에 하느님의 사랑이 달려있습니다. 그곳에서 그분의 마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것이기 그분의 존재 이유였기에 그렇습니다.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 6,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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