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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교환
by
진동길
Mar 17. 2021
# 거룩한 교환
톨스토이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썼습니다.
어느 사나운 임금이 하느님을 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사제들에게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임금님에게 하느님을 볼 수 있게 해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들에서 막 돌아온 양치기가 그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는 먼저, 임금님은 눈이 좋지 않아서 하느님을 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임금은 하느님을 볼 수 없다면, 하느님이 무엇을 하는 지만이라도 알고 싶다고 했습니다.
양치기는 그 질문에 대답하려면, ‘우리가 서로 옷을 바꾸어 입어야만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임금은 주저하면서도 답이 너무나 궁금하여 양치기에게 자신의 왕실 예복을 주고 자신은 양치기의 남루한 옷을 입었습니다.
그러자 양치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은 이런 일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거룩한 바꿈’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
하느님과 같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은 하느님의 호화로움을 벗어버렸습니다.
그분은 스스로 종의 모습을 취하시어 인간이 되시고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당신 자신을 자녀들에게 내어놓으셨습니다. 하느님은 '거룩한 바꿈'을 하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것을 받아, 하느님과 같아지도록 우리의 것을 받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옷을 입히시고, 우리를 당신께서 오신 ‘위’로 데리고 가십니다. 그리스도를 입은 우리는 그렇게 그분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ㅡ참조: 교황 베네딕토 16세 강론 중에서 ㅡ
# 증언들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
너희는 성서 속에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을 알고 파고들거니와 그 성서는 바로 나를 증언하고 있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요한 5,
36-37.39-40
.)
6·25 전쟁 때 어느 추운 겨울날, 연료가 소진된 미군의 트럭이 한 다리 위에서 멈추어 섰습니다. 도움을 기다리던 도중 한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게 됩니다.
군인들이 다리 밑으로 내려가 보니 아기를 자신의 옷으로 감싸고 추위를 이기지 못하여 죽어있는 한 어머니를 발견합니다. 다행히 아기는 어머니의 옷과 체온으로 살아있었습니다.
군인들은 어머니의 사랑에 감동하여 어머니를 다리 주위의 큰 나무 밑에 묻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전쟁 후 한 군인이 아기를 미국으로 데려가 키웠습니다.
아기가 청년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게 되었을 무렵 양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한국을 다시 찾았습니다. 아들에게 친어머니의 무덤을 보여주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날도 아기를 발견한 날처럼 매서운 추위가 몸을 움츠러들게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아들은 자신의 겉옷을 어머니 무덤에 덮어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 그때 얼마나 추우셨어요?”
죽기까지 생명을 내어주신 어머니의 사랑.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양아버지의 증언과 그리고 당시 사람들의 확증으로 아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무덤 앞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들이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고 알기까지 오랜 시간과 증언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진심으로 통회의 눈물을 흘리기까지는 더 오랜 기다림이 필요했겠지요.
믿음의 여정, 신앙의 여정에도 오랜 시간과 과정들이 필요하지요. 그 중요성을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를 정화하고 조명하시는 하느님, 또 그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려주시는 그분의 사랑에 다시 한번 감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신앙의 여정에서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지요. 과정과 순서는 아랑곳하지 않는 결과 중심 주의자들이 자신의 생각을 합리화하기 위해 흔히 쓰는 말인데요.
모든 일에는 그 일만의 독특한 과정과 순서가 있지요. 농사를 짓거나 집을 짓거나 밥을 지을 때도 그렇습니다. 과정과 순서가 뒤바뀌면 일이 엉망이 되고 혼란스럽습니다. 일이 제대로 마무리되기 어렵습니다.
감자를 심었는데 감자에 싹이 나지 않거나, 집을 지었는데 부실 건물이 되었거나, 밥을 지었는데 밥이 삼층밥이 되었다면 그 일의 과정이나 순서를 고쳐 생각해 봐야겠지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일치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하나의 과정이 필요한데요.
교부들은 이 여정을 세 가지 단계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정화와 조명과 일치의 단계입니다. 은혜로운 시기인 사순시기는 이 여정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는데요.
# 정화, 조명, 일치
하느님의 이야기와 그분의 뜻과 의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여 마음에 새기기 위한 구체적인 작업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정화입니다.
정화와 조명, 그리고 일치로 가는 과정과 순서는 일상에서 귀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우리의 태도에 비유할 수 있는데요.
인간의 나약함과 유한함, 그리고 죄에 물든 자신의 안팎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정화의 단계는 마치 먼지나 더러운 이물질로 물든 옷을 세탁하는 일과 같습니다. 영원하신 손님이신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이지요.
정화의 시간이 지나면서 신앙인은 그리스도의 흰 옷을 입습니다. 깨끗하고 정갈한 옷으로 갈아입고 손님을 맞을 준비가 끝나면 곧 손님이 찾아오시겠지요.
손님이신 그분은 우리와 마주 앉아 '대화'하기를 원합니다. 그분과 나의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정감 어린 사연들이 오고 갑니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사이에 이미 우리는 조명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조명의 길에서 우리는 그분의 생각과 그분의 마음을 알아가며 더 나아가서는 그분의 사랑을 느끼게 되는데요. 손님과 마주 앉아 조명을 받고 있는 그 사람은 성령의 도움으로 한 송이 꽃망울을 맺게 되고 또 기뻐하게 되지요.
완전한 사랑으로부터 조명받고 있음을 일상에서 체험하는 사람은 언제나 기뻐하고 감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신앙의 여정이 길어지고 시간이 지나 사랑이 깊어 갑니다. 이제 마주 앉은 이는 손님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그렇듯이 서로가 서로에게 종이 되고 싶어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주인으로 섬기는 것이 자신의 행복이 되고 기쁨이 됩니다.
이제 그들은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고 그렇게 일치의 순간이 찾아오지요.
# 성경의 증언
피난 중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죽음과 그 사랑을 아기가 알 수 있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아기는 자라면서 어머니의 사랑을 오해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양아버지의 증언이었습니다. 그 증언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성경이 그렇습니다. 하느님 사랑을 확인하기까지 나약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경의 증언입니다. 여러 사람들의 확증도 필요하지요.
그리고 마침내 아이가 자라서 그 사랑의 증언을 확인하게 됩니다. 어머니의 무덤에서 그해 겨울날을 직접 경험하게 됩니다.
아이가 무덤을 찾아온 날도 그날처럼 매서운 추위가 몸을 움츠러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자신의 겉옷을 어머니 무덤에 덮어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어머니, 그때 얼마나 추우셨어요?”
어머니의 사랑을 입으로 고백한 것이지요. 분명 그 젊은 이는 어머니가 유산으로 남긴 그 사랑을 살아가는 동안 나누며 살아가겠지요.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그 사랑과 일치를 이룬 영혼은 모든 일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고 살아갑니다. 그 영혼은 온 세상에서 하느님께서 이루신 사랑과 만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마침내 오랜 시간이 지나서 완전한 사랑과 하나가 되는 날이 오겠지요.
완전한 행복.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에게 그런 날들이 매일매일 지속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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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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