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단지

아가페 사랑

by 진동길


# 숨겨진 사랑

아내의 시력이 너무 나빠서 ‘눈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수술이 잘못되었습니다. 아내는 실명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남편은 매일같이 아내의 직장까지 아내를 출근시켜주고, 하루의 일과가 끝난 후에는 집으로 데려와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작심한 듯. 아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서로 직장이 너무 머니까 혼자 출근하는 게 좋겠소.”

이 말에 아내는 남편에게 너무나 섭섭했고, 배신감까지 느꼈습니다. 그리고는 이를 악물고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다음날부터 혼자만의 출근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흰 지팡이를 짚고, 혼자 버스를 타야 하는 출근길은 그야말로 악몽이었습니다. 많이 넘어지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혼자 가야 하는 길은 출근길이 아니라. 가혹한 시련이었습니다. 외롭고도 고통스러운 절망의 길이었습니다.

그렇게 2년이 흐르고, 어느 날. 버스 운전기사가 이 부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줍니다.

“아줌마는 복도 많소. 남편이 매일 버스에 함께 앉아 있어 주고, 부인이 직장 건물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지켜보다가. 등 뒤에서 손을 흔들어주는 보이지 않는 격려를 해주니까요.”

# ἀγάπη 아가페

걸음마를 처음 걷는 아이처럼. 출근길의 아내는 수없이 넘어지고 엎어졌겠지요. 그리고 그런 아내를 소리 없이 옆에서 지켜봐야 했던 남편.

아내는 넘어질 때마다 수없이 절망과 고통의 눈물을 흘렸겠지요. 그런데 그런 아내를 옆에서 소리 없이 지켜주었던 남편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가슴이 먹먹해져 옵니다.

어쩌면 남편은 아내가 흘렸던 눈물보다 더 가슴 아픈 눈물을 흘리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자신의 사랑과 존재를 감춘 채 말이지요.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사랑의)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사랑의) 말씀은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이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요한 1,1-3.)

말씀 안에 감추어진 ἀγάπη 사랑을 묵상합니다.

드러나지 않고 ‘가려지고 감추어진’ 그분의 ‘마음’과 그 ‘사랑의 방식’을 엿보게 됩니다. 내 안에서 언제나 함께하시지만, 나를 돋보이게 하시는 사랑.

당신의 뜻보다 나의 뜻을 더 소중히 여기시며 보이지 않게 응원하시는 드러나지 않는 그분의 사랑을 묵상합니다. 드러내기 좋아하고 자랑하고 싶어 하는 우리의 본성과 다르게 감춰진 하느님의 사랑.

그분의 사랑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이고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그분의 숨겨진 사랑이 눈물처럼 아른거립니다.

참사랑은 우리를 성장하게 하고 성숙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숨겨진 하느님과 성모님의 사랑처럼.

# 말씀 안에 감춰진 ἀγάπη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천사 가브리엘이 하느님의 말씀, 곧 기쁜 소식을 안고 동정녀 마리아를 찾아오셨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그분은 축복의 말씀을 주십니다.

그리고 소녀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루카 1,30-31.)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말씀으로 세상을 구원하신 분께서 소녀의 동의를 얻어 그녀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말씀은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주실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은총의 선물입니다.

이제 소녀의 기도와 말씀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세상 구원을 위한 씨앗이 소녀의 기도 손 위에 떨어졌습니다. 곧 소녀의 태중에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겠지요.

소녀의 기도와 함께 열매를 맺을 아들님은 본래 아버지와 같은 분이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말씀을 사람의 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빛처럼 오셨지만, 세상에서는 소녀의 아들로 살아갈 것입니다. 전능하신 창조주의 유일한 아드님이신 그분이 사람이 되시어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것입니다. 그들의 죄를 짊어지고.

신의 사랑은 언제나 낮은 자리를 찾아 옵겨다니십니다. 주인이 당신의 자리를 마다하고 종의 자리를 차지하셨습니다. 보살피고 걱정하고 기도하기 위해서. 우리의 부모님이 그렇게 사셨던 것처럼.

먼 훗날. 소녀를 찾아오신 그 아기는 나를 위해 자신을 내어놓을 것입니다. 나중에는 형제들이 매일매일 받아먹을 양식이 되실 것입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루카 22,19-20;1코린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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