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단지

나르드 향유로

by 진동길


# 죽음을 앞두고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로 가셨습니다.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가 살고 있었지요.

베타니아는 히브리어로 "베트-아니"(בית עניא: Βηθανία: Beth anya) '가난한 이의 집'을 뜻하는 지명인데요.

Beth-anyah (בֵּית עַנְיָה): “가난한 이의 집” 또는 “고통의 집”


조금 더 풀어보면 아니(עָנִי)라는 말은 '고난 받다, 가난하다, 겸손하다'라는 뜻을 가졌고, 베트(בית)라는 말은

말은 우리말로 집을 말합니다.

거기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라자로는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끼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리는 일이 일어납니다.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 나르드 향유(נרד: νάρδος)는 그야말로 귀하고 값이 비싼 향유인데요.

그 이유는 해발 3천 미터 이상의 히말라야 기슭이나 고지대에서 자라는 야생 나르드가 희귀할 뿐만 아니라 채취가 쉽지 않고, 흙을 씻고 쪄야 하는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서 하는데, 딱딱한 뿌리를 한 아름을 쪄야 한 두 방울 얻을 수 있는 분량은 고작 1~2% 정도라고 합니다.

이렇게 어렵게 얻은 귀한 향유는 또, 팔레스타인까지의 운반비와 국경세가 더해져서 그 값은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하지요.

성경 원문이 전하는대로 나르드 1 리트라는 약 320 그램이었고, 나르드 향유를 옥합에 넣는 이유는 나르드 향유 자체가 워낙 고가인 데다 휘발성이 강하므로 단단한 병에 넣어 밀봉하지 않으면 히말라야에서 팔레스타인까지 오는 도중에 증발해 버리거나 용기가 부서지기 쉽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나르드 향유 1 리트라의 가격은 삼백 데나리온이나 그 이상이라고 유다 이스카리옷이 증언해줍니다.(마르 14,5; 요한 12,5)

삼백 데나리온이면 지금 화폐 가치로 계산해서 일반 직장인의 일 년 연봉에 비교할 수 있는데요. 참고로 2020년 대한민국 직장인의 평균 연봉이 3744만 원이라고 합니다.-동아일보, 2020.12.19.-

이렇게 귀한 나르드 향유는 아주 아주 특별한 때에나 썼는데요. 향유를 사용할 때는 밀랍 등으로 밀봉된 것을 뜯어야 했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이 과정을 ‘옥합을 깨뜨리고’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마르 14,3.)

온 집 안에 나르드 향유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나무 냄새, 흙냄새, 건초 냄새와 비슷한 사향(麝香)류의 남성에게 잘 어울리는 깊고 은은하며 그윽한 향기가 온 집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합니다.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지요.

이렇게 갑작스러운 상황을 지켜보고 계시던 예수님께서 이르십니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 베타니아

베타니아. 가난한 이의 집. 핍박과 고난으로 죽은 이들이 사는 곳(집). 오늘도 예수님은 그곳에 가셨습니다.

그분의 생애는 늘 그랬지요. 가난하고 핍박받고 고통으로 시달리는 이들을 찾아다니셨고 그들과 함께 머무르셨습니다. 그분의 몸이 성전에 있을 때에도 그분의 마음과 영혼은 베타니아에 있었습니다.

베타니아. 가난한 이의 집은 그 이름대로 예수님의 집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은 이 보잘것없는 베타니아에서 가장 큰 축복과 은총의 기적들이 일어났고 잔치가 벌어졌다는 것이지요. 예수님 때문에. 그분으로 인하여.

그 이름도 가난한 곳. 모두가 무시하고 경멸하며 멀리하고자 하는 이름의 대명사 베타니아. 그곳에서는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이 그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역설 중에 역설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또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사건은 오늘 일어난 일이지요. 어떻게 그 가난한 동네에서 가장 값비싼 향유를 쏟아부은 사건이 일어났을까요. 그 많은 부자 동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말이지요.

# 사랑이라 말하지 못하고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요한 12,7.)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에 앞서 죽음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의 집을 찾아가셨습니다. 다가 올 일들을 미리 예고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전 생애를 묵상해 보면 베타니아에서의 오늘 이 잔치는 아버지의 뜻. 하느님 나라의 일들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이후의 일들까지도 구체적으로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이름이 그렇듯. 사람으로 태어난 모든 이들에게 죽음은 두렵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말입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우울한 이야기지요.

파스카(건너가다)를 엿새 앞둔 예수님의 마음은 무겁고 슬픕니다. 지나온 이야기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그런데 마치 우연처럼 마리아가 최고급 순 나르드 향유를 당신의 몸에 바르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그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격정의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당신의 발치에서 말없이 향유를 바르며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 누구나 그렇겠지 사랑한다면


누구나
그저 바라만 봐도 좋은 사람
한 순간도 잊을 수 없는 사람
보고 있어도 그리운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나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이름
내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고
다 주고도 더 주지 못해
안타까운 이름이 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마음을 모를 리 없습니다. 언제나 그분의 발치 아래에서 그분의 눈빛과 그분의 표정과 목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보다도 그분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마리아는 그분에게서 비장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고 두렵지만 영광스러운 각오의 눈빛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미 여러 번 암시하셨던 당신의 때가 가까이 왔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사랑하는 이를 돌려보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곳이 어떤 곳이고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제 그분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을.

그녀는 순 나르드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라드렸습니다.(루카 7,38.)

"임금님이 잔칫상에 계시는 동안 나의 나르드는 향기를 피우네. 나의 연인은 내게 몰약 주머니 내 가슴 사이에서 밤을 지내네. 나의 연인은 내게 엔 게디 포도밭의 헤나 꽃송이어라."(아가 1,12-14.)

그녀는 예수님과 함께 죽음 앞에 마주 서 있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이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마태 26,13; 마르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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