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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Apr 24. 2021

소금단지

목자와 도둑


# “목자와 도둑의 비유”

오늘 예수님께서는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목자와 도둑의 비유’로 우리의 어리석음을 일깨워주십니다.

어떤 창고에 꿀이 흘려 있었습니다. 이 꿀 냄새를 맡고 파리들이 몰려와 핥아먹었습니다. 그런데 꿀맛이 어찌나 좋던지 파리들은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날개며 발 꿀이 묻게 되어 영영 헤어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 달콤한 유혹

도둑의 유혹은 언제나 달콤함과 화려함으로 치장되어 있지요. 그들의 유혹은 늘 보기 좋고, 듣기 좋고 꼭 필요할 것 같은 모양새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꿀 발림 된 유혹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지요.

그것들을 무턱대고 좇아가다 보면, 어느새 몸과 마음은 병들어 있고, 그 영혼은 하느님 곁에서 멀어져 있음을 목도하게 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생명을 내어줍니다. 사랑이 먼저입니다. 두 번째도 사랑이 먼저입니다. 세 번째도 사랑이 먼저입니다. 마지막도 사랑을 먼저 생각하십시오.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10)

# 어느 쥐의 유언

“내 말을 귀담아듣거라.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들은 저마다 다른 무서움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그중에서 무서움의 형식을 감추고 있는 무서움이 가장 무서운 무서움이다.

내 말 잘 알아듣거라. 고양이와 쥐덫이 가장 무서운 것이 아니다. 고양이는 언제나 고양이로 있고, 쥐덫은 언제나 쥐덫으로 있으니.

내 나이가 되면 고양이쯤이야 차라리 같이 늙어가는 이웃일 수도 있고, 쥐덫쯤이야 내 슬기의 시험대 정도로 그친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고양이도 아니고 쥐덫도 아니고, 무서움을 다채롭게 위장한 쥐약이다.

쥐약의 외형은 탐욕의 혀끝과 코끝을 유혹하기 위해 자연스럽고 믿음직스럽고 우호적이며 때로는 헌신적이다. 그러나 쥐약의 외형이 어떻거나 간에 쥐약은 쥐약이다.” -송현-

# 도둑의 정체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뿐입니다.”(요한 10,10)

도둑이 만일 검은 망토를 걸치고 입에는 칼을 물고 서 있다면, 사람들은 그를 알아차리고 피할 것입니다.

도둑은 우리의 나약함을 건드리며 다가오는데, 그는 전혀 도둑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지요. 그들 우리의 약점을 건드리며, 달콤한 사탕으로 유혹합니다.

그들의 입술은 매끄러우며, 그들의 말은 꿀이 발라진 듯합니다. 쥐약처럼 먹음직스럽고 멋지게 보이며 듬직해 보입니다. 그러나 도둑은 도둑입니다.

# 복음의 기쁨

자신을 내어놓은 사랑은 언제나 빛과 소금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스스로 태우시며 어둠을 밝히시고 소금처럼 우리에게 녹아드십니다. 대가없이 희생과 사랑으로 녹아들어 오시지요. 그렇게 오셔서 생명이 되십니다. 내 안에서 나와 함께 기뻐하시고 때론 함께 슬퍼하십니다.

나와 같은 멍에를 쓰시고 나와 함께 고통과 절망을 지고 가십니다. 아니 오히려 내 모든 결핍을 다 짊어지고 가십니다. 그분은 의사이시며, 상담가이시고 변호사이시며 협조자이십니다. 그러므로 기뻐하십시오.

봄의 신부처럼. 봄을 맞이 하는 꽃처럼 활짝 피어날 수 있기를. 복음의 본질은 희망이고 기쁨이기에.

주님은 십자가에서 부활하셨습니다. 더 이상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없습니다. 그분이 다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당신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내 안의 혼란스러운 것들로 인해 슬퍼하거나 절망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그분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를. 세속적인 유혹자는 우리의 두려움으로 우리를 자극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사랑이 먼저입니다.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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