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동길 Jul 19. 2021

소금단지

태양의 노래


# 태양의 노래


오 감미로워라 가난한 내 맘에

한없이 샘솟는 정결한 사랑


오 감미로워라 나 외롭지 않고

온 세상 만물 향기와 빛으로


피조물의 기쁨 찬미하는 여기

지극히 작은 이 몸 있음을


오 아름다워라 저 하늘의 별들

형님인 태양과 누님인 달은


오 아름다워라 어머니신 땅과

과일과 꽃들 바람과 불


갖가지 생명 적시는 물결

이 모든 신비가 주 찬미 찬미로

사랑의 내 주님을 노래 부른다


성 프란치스코는 1224년에서 1225년 사이의 겨울에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그 피조물과 함께 찬미하는 (‘태양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피조물의 노래’를 불렀는데요.


성 프란치스코는 창조주 하느님께서 만드신 이 경이로운 세상을 마치 피조물들과 함께 거닐면서 합창하는 듯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태양을 형님이라고 부르고 달을 누님이라 부르며, 온갖 피조물을 ‘형제’, ‘자매’,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놀라운 점은 이 노래가 오상을 받은 직후, 온갖 질병과 고통이 그의 육체를 괴롭힐 때, 불려졌다는 것인데요.


시련과 고통의 한 복판에서 찬미의 노래를 짓고, 불렀다는 것만으로도 성인의 영성이 얼마나 창조주와 가까이 있었는지 가히 짐작할만합니다.


영성의 진정한 가치는 결코 육신이 평화로울 때나 성스럽고 영광스러운 순간에 피워지고 열매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오히려 그 몸과 마음이 비탄에 빠져 있거나 시련과 고통스러운 순간에 더욱 아름답게 현현될 수 있음을 새롭게 깨닫게 됩니다.


# ‘새 나라’로 초대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 48-50)


이 말씀은 복음의 핵심 중에 하나인데요. 이 말씀으로 예수님께서는 ‘새 계약으로 맺어진’, ‘새-나라’로 모든 피조물을 초대하시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더욱이 이 초대는 새 계약으로 이루어진 아버지의 나라가 당신의 육화로 인해 이미 이루어졌음을 선포하시는 것이고, 동시에 '지금-여기'에서부터 ‘새로운 파스카’가 이미 이루어졌음을 선포하시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새로운 파스카’. ‘새 계약의 나라’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계시되고 있는 아버지의 ‘제한 없는 사랑’의 나라입니다.


‘육적인 나’가 만들어낸 ‘우상(idol, 허상)’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이며, 화해와 친교, 나눔과 헌신, 섬김과 축복이 피조물들과 함께하는 나라입니다.


새 계약의 나라에서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마르 12,25)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모든 피조물이 창조주 안에서 한 형제자매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육과 육을 가르고 편과 편을 가르며, 씨족과 부족을 가르고 인종과 나라를 가르는 ‘세속의 나라’로부터 모두가 형제이고 벗들인 나라로 모든 피조물들을 초대를 하고 계십니다.


그 나라는 참된 자유의 나라이고 평등의 나라이며, 주님의 평화가 이룩된 나라이자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 그 나라는 어디에?


우리도 성 프란치스코의 노래를 통해서 그가 꿈꾸던 나라 즉,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나라, 새 계약의 나라를 구체적으로 노래하게 되는데요.


성 프란치스코가 노래 한, 그 나라는 사실 ‘이미’ 우리와 함께 있고, ‘이미’ 내 안에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가 겪었던 일화를 소개할까 합니다.


하루는 성녀가 매우 큰 고통을 겪고 있던 어느 날, 예수님께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시던 주님께서 내 심장이 찢어질 만큼 괴로운 이때에 도대체 어디에 계십니까?”


그때 다음과 같은 대답이 들렸다고 합니다.


“나는 지금 너의 (찢어질 만큼 괴로운) 심장 속에 있다.”


# 설마 지옥?


도미니코 수도회의 ‘요한 타울러’(John Tauler; 1300?-1361)가 수도자가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그가 라인 강변에서 혼자 선행에 대해 깊이 묵상하면서 산책을 하고 있을 때, 노인 한 분을 만나게 되었는데요, 대화 중에 그 노인이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나는 언제나 기쁩니다. 내게는 모든 날이 선(善)이고. 나쁜 날은 하루도 없습니다.”


그러자 타울러가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만일 하느님께서 당신을 지옥으로 떨어뜨리신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러자 노인은 유쾌하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지옥이 어디 있는지 나는 모르오. 그러나 내가 아는 것은 주님이 나를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오. 한쪽 팔로는 겸손이 주의 인성(人性)을 안았고, 다른 팔로는 사랑이 그의 신성(神性)을 붙잡았고, 그래서 내가 가는 곳에 주님도 갑니다. 주님이 없는 황금의 천국에 가는 것보다 주님과 함께 (당신이 말하는) 불구덩이 지옥에 있는 것이 더 낫소.”


# 하느님의 어머니와 함께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


새 계약의 나라에 가장 먼저 초대받으신 분은 ‘모든 인간의 어머니’(요한 19,27)이신 성모님이십니다.


다 아시겠지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가장 잘 아시고 또 목숨을 걸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신 분이 구세주의 어머니이시지요.


성모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들의 대표적 표양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성모님에 대한 찬양이 함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피조물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하느님의 사랑은 성모님이시고 하느님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입니다(에페소 공의회, 431년). 그리하여 그분은 모든 피조물 중에서 힘 있는 전구자이시자 모든 은총의 중재자이시고 모든 위험에서 지켜주시는 보호자가 되셨습니다.


하느님의 어머니처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령을 따라 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그 성령에 힘입어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마태 12,50; 로마 8, 14-15. 참조)


그러므로 사람들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분이나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이나 모두 한 분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고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또 그 믿음으로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기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히브 2,11; 1요한 5,1; 갈라 3,26. 참조).


과거에 우리는 어둠의 세계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주님을 믿고 빛의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새 나라’로 파스카 한 우리. 새 나라로 초대받은 우리는 이제 ‘하느님의 어머니’와 함께 ‘하느님의 어머니’처럼 하느님을 닮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에페 5장 참조).


# 모든 것


모든 것을 맛보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맛에도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지식에도 매이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하며,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

-십자가의 성 요한, ‘모든 것’ 중에서-

작가의 이전글 소금단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