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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Nov 01. 2020

밀양

<<밀양>> ( Secret Sunshine), 2007.

감독: 이창동

제작: 파인 하우스 필름

원작: 이청준, 벌레 이야기, 1985.      

    

# 침묵 속의 타자          

한 여자가 밤거리에서 피를 흘리며 울부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말합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그녀는 죽도록 살고 싶어서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살고 싶은 본성과 복수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그녀 안에서 충돌했습니다.     


약사: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워요. 내가 약국에서 약을 팔지만, 그 마음의 고통은 고칠 수가 없어요."     

살인자: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한테 회개하고 용서를 받으니 이래 편합니다. 내 마음이..."     

신애: "어떻게 그러실 수 있어요? 왜? 왜에---?"   

  

사랑과 은혜를 선인과 악인을 가리지 않고  조건 없이 베푸시는 (아무에게나 남발하시는?) 침묵 속의 절대 타자와 죽음으로 악이라는 이름표를 지우려 울부짖는 인간의 무모한 욕망의 충돌. 한 자아의 내면에서 일어난 충돌, 그 충돌을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본질적이고 고질적인, 그러나 영원히 숙제로 남겨질 종교적인 문제 속에 묻어둘 것인가?     


남편과 외아들의 목숨까지 잃은 신애는 여자입니다. 힘없고 나약한 존재들을 대변하고 있지요. 도저히 맞설 수 없는 거대한 힘 앞에서 끝없이 무너지고 스러져가는 이름 없는 생명들의 대변자입니다.  

   

힘없는 과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그녀는 하나뿐인 피붙이를 죽인 살인자에게로 겨눌 수 없는 앙갚음과 복수의 칼을 자신에게 향합니다.      


억장이 무너지는 그녀의 기막힌 삶. 그리고 극단적인 선택. 자신에게로 되돌린 칼의 의미를 단순히 충동적 행동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그녀와 엮여있는 문제들이 그리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그녀는 지금. 보이지 않고 대답 없는 타자와 힘겨루기 중입니다. 그녀의 존재 전체를 걸고. 생명을 담보로 그녀가 믿고 있는 아니 의지하고자 했던 타자와 딜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가장 깊숙한 곳, 깊이조차 알 수 없는 침묵 속에서 보이지 않게 숨바꼭질하고 있는 것 같은 '알 수 없는 존재', 아니 사실 '알지 못하는 존재'에게로 복수의 칼을 찔러 넣었습니다. 살고 싶어서 죽도록 살고 싶어서 '알 수 없는 자'를 향해 칼을 찔렀습니다.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기에 그랬습니다.     


"봐? 보여? 보이냐고...?"     


하지만 그녀가 믿었던 '절대 타자'는 침묵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녀를 도와줄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녀가 믿었고 의지했던 존재는 정말 침묵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요?      


다행히 그녀는 살기 위해 '알 수 없는 존재', '침묵하고 있는 자'에게서 인간에게로 발길을 돌립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 인간의 실존과 트라우마     

애석하게도 우리의 현실은 형체도, 그 소리도 알 수 없는 것들로 채워져 있고 이들이 우리 삶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지배하고 있습니다. 두려움. 공포. 절망. 좌절. 상처. 이 모두를 한꺼번에 대변하는 트라우마와 그리고... 침묵하는 존재, 그 틈새에 인간의 실체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심각한 외상을 겪은 후에 나타나는 불안 장애로 외상은 마음에 큰 충격을 주는 경험을 말합니다. 외상의 종류에는 전쟁, 자연재해, 교통사고, 화재, 타인이나 자신을 향한 폭력과 범죄 등인데요. 자신이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한 사건이 큰 충격을 준 것을 외상으로 정의하지요.     


환자는 이러한 경험에 대하여 공포심을 갖게 되고 동시에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증상이 우울증과 비슷하지만, 이 질병이 더 큰 문제인 것은 환자가 원치 않아도 반복적으로 사건이 회상된다는 것인데요. 때문에 환자는 다시 기억나는 것을 회피하려고 갖은 애를 쓰게 되기요. 그러다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신애: "한 번만... (아들의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게) 바꿔주시면 안 돼요?"   

  

트라우마는 우리에게 철저하고 무섭게, 그리고 잔인하게도 모노드라마(monodrama)와 같은 연출을 요구합니다. 연극이 끝날 때까지.     


#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존재와 이웃     

신애에게 침묵하는 신은 용서할 수 없는 배신의 존재. 거짓말을 일삼는 타자로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침묵하고 있는 듯한 신과 그녀 사이를 왕래하며 절망적인 틈(빈자리)을 채워주는 존재가 있지요. 카센터 사장 종찬입니다.     


신애에게 종찬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도움을 주고자 온갖 애를 씁니다. 마치 그녀가 믿었던 아니 믿고 싶었던 전능하신 존재. 하나님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존재를 종찬이 대신하는 듯합니다.  

   

물론 그(종찬)는 꼭 필요할 때,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리를 비우기도 했고 혼자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언제나 뒷북을 치며 호들갑이지요.  마치 신애가 알고 있는 하나님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신애의 옆에 있습니다. 신애의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도 않습니다. 밀양처럼. '비밀 햇볕'처럼. '절대 침묵'처럼.     

                                     

이 영화는 어쩌면 '햇볕의 비밀'을 의도적으로 밝히고자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개입적 사랑' 말이지요. 때문에 신을 믿는 신애는 웃으면서도 목이 터져라 울고 있습니다. 트라우마가 치유되지 않아서이기도 하겠지만,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신의 존재와 그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서 신애(사랑을 믿는 사람 혹은 신을 사랑하는 사람)는 울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 신애는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는 나약한 존재 인간을 대표하는 인물이자 동시에 눈 앞에 보이는 것, 그것이 전부이고 진실인양 왜곡해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적나라한 인간의 한계와 실상을 폭로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우리는 관객의 자리에서 신애를 함부로 말할 수 없습니다. '나'와 타자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는 것처럼 말이지요.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이들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그 고통에 대해서 함부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이 신의 존재를 믿고 있든 그렇지 않든 햇살은 여전히 극장 밖에서 세상을 비추고 있고 신애는  절망 중에 아픈 사람이니까요.     


신애: "어떻게 그러실 수 있어요? 왜? 왜에---?"     


# 거기 아무도 없나요?     

상처 받은 이들을 더욱 불행하게 하는 현실은 극도의 단절감에서 시작된다고 하지요.  홀로 서 있는 듯, 의지처를 잃은 이들에게 희망은 '절대 침묵'으로 느껴지지요.     


"그 여자 생긴 건 멀쩡한데 약간 정상이 아닌 것 같아. 좀 이상해. ㅎㅎ"(미용실에서 이웃들)     


냉랭한 표정의 이웃들은 신애의 고통을 공감해 주거나 이해해주지 못하고 이상한 눈으로 흘겨봅니다. 신애의 트라우마를 충분히 공감하지 못한 이웃들의 무자비한 폭력은 어설픈 동정 속에 담긴 험담과 뒤 담화, 그리고 비웃음입니다. 철저하게 단절되고 기댈 곳이 없는 고통 앞에서 외상으로 고통받는 이들은 결국 혼자 아파하고 혼자 절망하지요.      


절망은 희망을 혼자 찾아야 한다는 고립감에서부터 싹을 틔우게 마련인데요. 결국 자기와 함께 아파해줄 수 있는 이웃이 없다는 걸 깨달은 신애는 침묵하고 있는 신에게 도전장을 내밉니다.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때로는 멀쩡한 척 회피해야 그 고통이 덜하기에. 인간에게서 도망쳐 신 앞에 섭니다.     


더 이상 슬퍼할 수 없고 절대로 눈물을 보일 수 없는 그들은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내려 안간힘을 쓰기도 하고 때때로 웃음도 보입니다.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살아 가지요. 보일 수 없는 눈물을 속으로 흘려보내며. 침묵하는 자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습니다. 벼랑 끝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라는 말들로 자위하며.     


종찬: "정신 좀 차려... 제발!"     


# 트라우마의 정체와 망각이라는 퀘렌시아     


신애: "괜찮아요... 괜찮다고 했잖아요ㅡㅡ!"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사자의 이빨에 숨통을 물린 사슴은 스스로 숨을 놓는다고 하지요. 편안한 망각. 괜찮은 삶. 살다 보면 살아지는 삶.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 그러나 진심으로 살고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악몽과 같은 기억에서 다시 일어나고 싶은 절망스러운 삶을 버텨내는 이들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피난처와 안식처, 퀘렌시아(Querencia)를 빼앗긴 이들. 그들은 누구이고 그들은 무엇으로 살아갈까요?     


1. 한 자아의 삶을 장악하고 있는 숨겨진 덫

트라우마 환자를 치료하는 도중에 발생할 수도 있는 부작용 중에 하나가 자해와 자살시도입니다. 트라우마가 한 자아와 그 삶을 어느 정도 장악하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데요. 때문에 극단적인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고통의 현실을 직면하라는 요구는 무책임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합니다.     

2. 인간의 성장을 찍어 누르는 거대한 힘

예상할 수 없는 상실과 절망은 마치 신의 장난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어떤 이들에게 그것은 결코 인정할 수 없는 아픈 기억으로 남겨지기도 하지요. 그들은 과거의 어느 한순간에 묶여 살아가게 됩니다. 아무렇지 않듯. 그러나 그들의 시간과 공간은 모든 것을 빼앗긴 듯한 그 찰나에 멈춰서 있습니다. 그 순간의 고통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말이지요. 그들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고 오히려 죽어가고 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닙니다.     


3. 통합적 사망선고

최고의 트라우마는 비정상적인 가족의 죽음입니다. 그들에게는 가족의 죽음은 가족이라고 말하면 떠오르는 비현실적인 언어들, 즉  사랑과 희망, 믿음의 죽음보다 더 큰 충격이지요. 트라우마는 정신적 상처(psychological trauma)뿐만 아니라 육체적 상처(physical trauma)까지 안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4. 반복적인 재경험(re-experience)

강렬한 두려움과 무력감, 분노를 한꺼번에 그리고 무한 반복적으로 겪고 있는 그들의 기억은 유사한 조건만 갖추어져도 그때 그 시간으로 되돌아갑니다. 때문에 아무 일도 아닌 것인데, 특정한 상황에서 과도한 각성 상태로 초조해하거나 불안해하며, 공포를 느끼지요. 그들이 무척 신경질적이고 공격적이며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5. 자기 보호

피난처가 없는 그들에게 회피(avoidance)와 둔감화(numbness)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모두를 혼란스럽게 할 정도로 기억을 닫아버리기도 합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단순한 우울증세인 듯, 단순한 중독 증세인 듯(알코올, 약물, 폭식 등). 그러나 올바로 치료받지 못한 그들의 병세는 점점 더 악화됩니다.     


6. 감정이 없는 듯 폭탄 같은 이상한 사람들     

"인격은 아주 천천히 형성되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페이스 볼드윈)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그들. 그러나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그들의 기억과 마음속에 폭탄을 꺼내 줄 방법은 없는 것일까?     


아무도 모르는 심지어 자신도 모르게 숨겨진 트라우마를 품속 깊이 묻어두고 살아가는 이상한 사람들. 쉽게 다가갈 수는 없습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니까요. 하지만 그들조차 모르는 폭탄을 그들의 가슴속에서 빼내어 확인시켜주어야 합니다.     


아주 오랜 시간,  매우 힘겨운 기다림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정서적 고통을 '진심으로 공감'해주고 부적응적인 행동까지 진심으로 포용'해 줄 수 있다면 어쩌면 또 하나의 생명을 살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 믿음의 대상을 잃은 신애에게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어준 종찬처럼 말이지요.     


참조:  김준기,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 시그마북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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