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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Nov 01. 2020

붕대클럽

《붕대 클럽》(包帯クラブ), 2008년.

감독: 츠츠미 유키히코

각본: 모리시타 요시코

원작: 텐도아라타     


# “붕대 하나로 세상이 변한다면 신나는 일이잖아!”     

여러분은 상처와 어떻게 마주하시나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무엇을 하시나요? 그 상처가 타인의 것이든 내 것이든. 붕대로 서로의 한쪽 발을 묶고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어떨까요?     


영화와 책. '붕대 클럽'의 매력은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치유될 수 있도록 사람에게 붕대를 감아주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남아있는 장소에 상처를 감아준다는 설정의 의아함과 엉뚱함이 붕대 클럽의 뼈대입니다.     

'와라'라는 별명을 가진 '에미코'는 요리를 하다 베인 손목에 붕대를 감은 채, 왠지 모를 허탈함에 해 질 녘 하늘을 바라보며 이렇게 속삭입니다.     


“내 안에서 여러 가지 소중한 것들이 사라져 간다.”   

  

와라는 엄마와 남동생과 함께 살면서 주말에는 친구 '단시오'와 과자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요. 엄마는 5년 전에 회사의 젊은 여직원과 바람이 난 아빠와 이혼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왠지 그늘져 보입니다. 그녀를 감싸고 있는 색은 회색빛입니다. 밝은 빛도 아니고, 그렇다고 눈에 띄는 자신만의 색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평범해 보이지만, 마음 한구석에 공허함을 간직한 채 어쩔 수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 소녀.      


어느 날, 아침 식사를 준비하려고 인스턴트식품의 포장을 자르던 와라는 손목을 베이게 됩니다. 그런데 모두가 그녀의 손목을 보며 ‘자살시도’라고 지레짐작하는 통에 짜증스러워하며 옥상 난간에 서게 되지요. 그리고 정말 자살 시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그때 자신에게 요란스러운 옷을 입은 남자아이가 다가와 그녀의 치마 속을 보며 "뭐야! 체육복 입었잖아."라고 놀립니다. 그 바람에 놀란 와라는 자살시도에 대한 생각을 멈추게 되지요.     


그런데 그 남자아이(디노)도 손목의 상처를 자살의 흔적(라스트 컷)이라고 놀립니다. 서로 티격태격 말다툼을 하다가 왠지 미안해진 디노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라며 와라의 손목에서 풀어낸 붕대를 옥상 난간에 칭칭 감아 매는 데요. 좀 엉뚱하고 유치한 행동이었지만 와라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 어딘가의 상처가 살짝 아무는 듯한 이상한 느낌을 받게 되지요.      

    

"그를 쳐다본 순간, 다시 감으려고 풀었던 붕대가 맑게 갠 하늘에서 불어온 바람에 휩쓸려 손에서 빠져나갔다. 옥상은 높은 철망에 둘러싸여 있었고 철망 끝은 사람이 넘어가지 못하게 안쪽으로 굽어 있다. 붕대는 바람에 실려 흰 뱀처럼 흐늘거리며 가볍게 철망을 넘어갔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춤추듯이 날아오른 붕대가, 이상하게 아름다워 보였다."      


다음날, 와라의 여자 친구 시오가 남자 친구에게 실연을 당한 아픔을 와라에게 호소하게 되는데요. 와라는 시오를 달래주다가 문득 디노가 병원 옥상에서 자기한테 해주던 일을 생각하게 되고 시오가 실연당한 장소인 공원 그네에 붕대를 감아줍니다.      


그 모습을 본 시오는 "이거 대단해! 뭔가 마음속이 후련해진 느낌이야. 고마워 와라!"라고 말합니다. 치유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시오는 붕대를 감은 그네 사진을 자신의 메일 친구들에게 전송하는데요. 그중에 재수생 기모라는 남자 친구가 관심이 보이며, 붕대 클럽을 결성할 것을 제안합니다. 기모가 '붕대 클럽'이라는 제목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면서 와라 일행은 상처 받은 사람들의 사연을 의뢰받아 사연이 깃든 장소나 물건에 붕대를 감아주는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장소에 붕대를 감아주는 활동은 자살골을 넣어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를 위해 학교 골대와 축구공에 붕대를 감은 사진을 보내 힘을 실어주기도 하고, 미용실에서 머리가 아니라 얼굴을 바꾸라는 말을 들어 속상한 여고생을 위해 미용실 앞에 붕대를 감은 사진을 보내주기도 합니다.      


유치해 보일 수도 있는 이들의 작은 행동은 상처 입은 친구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붕대 클럽’ 멤버 자신들의 상처 또한 깨끗하고 부드러운 붕대에 의해 치유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타인의 상처를 공감한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지요. 처음 한동안 "붕대 클럽"은 순항을 하는 듯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온 거리에 붕대를 칭칭 감아대고 다니는 이들의 행위는 경찰과 학교의 눈에 띄게 되고 인터넷에는 “너희들이 하는 일은 위선에 불과하다.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 “붕대 감는다고 뭐가 달라지겠어”라는 악성 댓글이 올라오지요. 더욱이 사람들의 상처와 함께 공감하고 마주한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그것을 현실에서 실감하게 되면서 이들은 심한 심적 괴로움을 겪게 되지요. 그리고 누군가에게 붕대를 감아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 이름이 생긴 거야.     


“이름이 생긴 거야, 시오. 우울했던 일, 납득이 안 갔던 일, 못 참을 일이라며 마음에 쌓아두었던 일들. 그 감정에 붕대를 감았더니 이름이 붙은 거야. ‘상처’라고 말이야. 상처 받으면 아프고 누구나 침울해지는 게 당연해. 하지만 그래 봤자 상처일 뿐이니까, 치료하면 언젠간 분명히 낫는 거잖아.”     


길을 걷고 있는데, 단지 똑바로 걷고 있다는 게 조금 싫증이 나버려서 무심결에 모서리로 방향을 바꾸는 사람들이 있다. 겉모습만 보고 그들의 깊은 상처를 진정 공감할 수 있을까? 누구나 상처와 함께 살아간다.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일지라도 언제부턴가 가슴속에서 바늘로 찌르듯 문득문득 반딧불처럼 반짝이는 슬픔이 있다.      


이름 없는 반짝임. 어느 날 '반짝이며 아픈 그것'에 이름표를 붙여주었다. 그러자 그것은 대낮에도 꺼지지 않고, 내 삶의 중심에서 골목길까지 훤히 비췄다. 내 어깨가 한쪽으로 기울었다는 것도. 내 걸음이 절뚝거린다는 것도. 내 안에 여러 중요한 것들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는 것도... 상처들에 이름표를 붙여주자 그것들이 소중한 빛이 되어 왔다.     


# 다른 사람을 아는 것은 결국 나를 아는 것?     

성장통 없는 성장이 없듯, 상처 없는 인생은 없다. 그렇게 인간은 오랜 시간 앓고 난 후, 자기가 아닌 타인을 바라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닐까? 자신의 의지로 상처를 극복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보통은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지요. 진심으로 같이 아파해주는 이의 도움말이지요. 영화에서 디노는 가장 수상하고 이상한 인물입니다. 아프리카의 맨발로 걷는 아이들의 고통을 느끼기 위해 등교할 때 그는 맨발로 걸었습니다.      


매일 쓰레기의 악취와 함께 생활하는 고통을 몸소 체험하기 위해서 교복 여기저기에 쓰레기를 넣고 다니기도 하고, 계단을 구르는 것도 모자라 스스로 폭죽을 맞기도 합니다. 자학에 가까운 고통 체험을 아무렇지 않게 자행하는 디도. 세상의 모든 사람의 고통과 상처를 이해하고 공감해보려고 온몸을 던지는 그가 정말 비정상적일까요? 아니면 너무 고통스러워 숨조차 쉴 수 없지만 그것을 감추려 하고 할 수 있으면 고통의 잔을 피하려 하는 우리가 비정상일까요?     


# 무기력하고 공허한 성장     

주인공 와라는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으로 공허하고 무기력합니다. 공부에 집중할 수도 없습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엄마가 아닌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지면서 자신과 동생까지 헌신짝처럼 버렸기 때문인데요.     


아이에게 부모는 태어나서 그 울타리를 벗어나기까지 처음으로 마주하고 경험하게 되는 세상의 전부이자 첫 번째로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부모의 이혼은 아이들에게 너무나 큰 상처를 안겨줍니다. 세상이 갑자기 무너져내리는 재앙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의 의지와 의사를 무시한 부모의 일방적인 폭력은 무력함과 절망 좌절을 안겨주는 엄청난 트라우마입니다. 이혼 후 아이들의 삶이 외롭거나 고달프다면 그 트라우마는 아주 깊이 매우 오래 지속됩니다. 아이들이 정상적인 어른으로 성장할 수 없을 만큼 말이지요.     


와다: "내 안에서 여러 가지 소중한 것들이 사라져 간다. 언제부터였는지 그 사실을 깨달았다. 차라리 악마 같은 놈이 나타나서 이것과 이것을 가져가겠노라고 선언하고 빼앗아간 거라면 그나마 기억에 남았을 테고, 조금은 저항도 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깨달은 무렵에는 이미, 전혀 적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소중한 것을 빼앗아가고 난 후였다."          


정서적으로 회색빛이었던 그녀에게 붕대 클럽은 그녀를 어른으로 성장하게 합니다. 누군가를 위한 사랑의 실천이 자기 존재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게 했습니다.     


# 붕대 하나로 세상이 변한다면     

붕대 클럽은 세상 사람들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덜어주고자 다른 사람에게는 사소해 보이는 일부터 시작해서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다른 사람의 상처가 무엇인지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상처와도 직면하게 되지요.     


그저 보이지 않는 상처의 원인을 붕대로 감는다는 것이 피상적인 일처럼 보이고 자기 위안의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모른 척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은 결국 지혜로운 선택이었습니다. 무기력한 삶에서 이타적인 삶으로의 전환은 그들에게 많은 열매를 거두게 했는데요.      


영화 붕대클럽은 1. 배려가 없이 저지른 아주 사소한 일도 타인에게는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사실과 2. 어설픈 동정이나 위선적인 행동은 오히려 상처를 더 깊게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3. 같은 상황과 같은 처지에서도 저마다 다른 상처를 받을 수 있고, 저마다 접근 방법과 치료방법도 달라야 한다는 것들을 성찰하게 합니다. 그리고 서로 무관심한 세상에 이렇게 외칩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면 세상은 결코 바뀌지 않아."     


와라와 디노는 적어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상처 받은 이들을 도우려고 합니다.     


“붕대 하나로 세상이 변한다면 신나는 일이잖아!”     


# 상처 받은 영혼들의 세상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삶이 있을까요? 친부모가 없는 사람은 있어도 트라우마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상처는 크기의 문제이지 붕대가 필요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자살골을 넣고 학교 생활을 못하는 소년을 위해 골대에 붕대를 감고, 철봉을 넘지 못하는 뚱보 소년을 위해서는 철봉에 붕대를 감아주며, 실연당한 여고생을 위해서 남자 친구와 헤어졌던 그네에 붕대를 감아주기도 합니다.     

트라우마에서 가장 큰 문제는 몸 밖에 새겨진 외상은 위험한 세상을 향한 눈을 뜨게 하지만, 몸 안에 새겨진 내상은 타인으로 가는 마음의 문을 잠가버린다는 것인데요.     


와라와 디노는 빅(big) 트라우마를 입어 정신병원에 입원 중인 강간당한 여학생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합니다. 강간당한 장소 가득히 붕대를 감은 것은 물론이고 그곳에 있던 물건들들을 불태워버리지요. 그녀의 상처를 기억하고 있던 물건들을 불태워 상징적인 장례를 치러줍니다. 그리고 마침내 디노 자신의 상처도 치유받게 되는데요. 와라의 도움으로 자기 대신 칼에 찔려 하반신 마비가 된 친구의 집 문을 두드리게 됩니다. 친구는 붕대를 감아주려는 디노에게서 붕대를 빼앗으며 자신은 스스로의 힘으로 붕대를 감을 수 있다는 아주 중요한 말을 남깁니다.     


# self soothing, auto regulation     

어른이 되었다는 의미는 이제 혼자서도 상처를 싸맬 줄 안단 것이 아닐까요? 그 상처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도 상처를 만나는 순간 그것을 싸매 주고 더 이상 고통받지 않도록 치료해줄 수 있는 존재 말이지요. 돌봐주고 품어줄 줄 아는 어른의 특징이자 어버이의 특성이 그렇듯 말이지요.      


상처는 고통의 흔적일 수 있지만, 희망의 싹이 돋아날 수 있는 유일한 자리이기도 하지요. 한걸음 더 나아가 고통의 장소가 자신을 성장하게 하는 수련장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그는 그만큼 성장한 것임이 분명합니다.     


# 비합리적인 믿음을 버리고 어른으로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지만 어느 순간 다치고, 고민하고, 울기도 하고, 아파하기도 하지. 가끔 내가 아픈 만큼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는 인생. 위로가 필요 없는 사람은 없겠지요. 분명. 넓은 의미에서 트라우마는 자신이나 세상에 대해서 부정적이고 비합리적인 잘못된 믿음이 생겨나도록 하는 모든 경험들을 포함한다고 합니다.      

빛과 어둠이 함께 공존하듯 트라우마의 원인은 우리 삶의 자리 곳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붕대를 감싸줄 아이로 성장하지 못한다면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을 위해서도 안타까운 일이겠지요. 세상의 모든 이들이 비합리적인 믿음으로부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간을 위해 붕대를 감아줄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참조: 김준기,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 시그마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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