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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Jul 23. 2021

소금단지

방문객


# 방문객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정현종-


# 너에게로 가는 마음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와 너’, 그리고 ‘그(It)’는 어떤 의미이고 어떤 존재일까? 사실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낯익은 방문객이고 낯익은 나그네가 아니던가?


그리고 우리는, 단 한 사람도,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감히. 허튼 인연은 없다. 밀과 가라지로 만났을지라도.


눈으로 보이지 않고, 또 그럴 수도 없겠지만. 너는 나에게. 너는 나에게. 언제나 어떤 의미로 다가온다. 순간이지만 ‘너와 나’는 전부로 만난다.


무수한 시간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너와 나’, ‘나와 너’는 감히 허투루 만날 수 없다. 비록 가라지와 밀로 만났다 하더라도.


오늘은 ‘나-너’도 ‘그(It)’에게로 가서 수없이 부서졌던 마음을 꺼내 보이고 싶다. 남김없이 모두. 미처 깨지지 못한 마음까지 조심스레 꺼내 보이고 싶다.


마음의 금. 하나하나. 하늘에 별 하나하나. 그리고 어머니. 아 어머니. 부서진 파편 속에 박혀 있는 한편 한 편의 이야기들이 아주 오래도록 노래 부른다.


# 주인의 마음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마태 13,29-30)


주인의 마음.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행여나 다칠까. 혹여 상처라도 입을까. 원수가 덧 뿌린 가라지와 함께 수확 때까지 내버려 두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종의 눈에는 가라지만 보입니다. 뽑아 내버리고 싶고 함부로 정리하고 싶은 가라지만 보입니다.


그러나 주인의 눈에는 가라지보다 한 알, 한 줄기. 밀이 먼저 보입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행여 다치거나 상처 입을 수 있는 밀이 먼저입니다.


# 한 사람, 두 얼굴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마태 13,27.)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28.)


밀과 가라지는 숨길 수 없는 내 안의 민낯입니다. 내 안에서 날마다 새롭게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는 두 마음입니다: 한 마음은 기쁨, 평화, 사랑, 희망, 평온함, 겸손, 친절, 자비, 공감, 너그러움, 진실, 연민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 얼굴은 ‘주인의 얼굴’입니다.


또 다른 한 마음은 화, 질투, 슬픔, 후회, 욕심, 오만, 자기 연민, 죄책감, 억울함, 열등감, 거짓말, 헛된 자존심, 우월감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 얼굴은 ‘원수의 얼굴’입니다.


주인은 그 탓을 ‘나’에게 돌리지 않았습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인데도, 주인은 ‘나’에게 탓을 돌리지 않으십니다. 주인의 자비입니다. 주인의 사랑입니다.


좋은 씨를 뿌린 주인의 마음은 내 탓임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탓으로 돌리는 ‘나’와 달랐습니다. 내 마음은 내 편에 선 이만 선인善人이었고, 나와 다른 편에 선 이는 악인惡人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나’의 마음과 달랐습니다.


바리사이들처럼 ‘나’만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함부로 형제를 가라지라 여기기도 했습니다. 율법과 정의 편에 선 나는 타인의 눈에 티는 잘도 보면서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했습니다.


내 안의 무성한 가라지는 보지 못하고 형제 안의 가라지는 당장 뽑아버려야 한다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주인의 맘은 나와 달랐습니다. ‘나’의 탓도 ‘너’의 탓도 아니라 하십니다.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십니다. 주인의 마음은 푸르고, 열려 있었습니다. 하늘나라입니다.


# 환대하는 마음


주인의 마음은 환대하는 마음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귀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사실 한 사람이 그의 가슴속으로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종들은 때때로 한 사람(그)을 너무 쉽게 판단하거나 성급하게 가려내버립니다. 때로는 가라지 대신 밀을 뽑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주인이 알면 크게 상심할 일인데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나’도 알고 ‘그’도 압니다.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까지도.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그 마음을 압니다.


주인은 함부로 뽑아버리지 않습니다. 부서진 그 마음.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그 마음을 주인은 압니다. 그래서 기다립니다.


아주 오래도록. 어쩜 종들에게는 영원일 수 있는 시간들을 기다립니다.


수확철이 올 때까지. 어쩜 영원일 수 있는 그 시간까지. 기다려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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