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봄이 오는 농장

by 진동길
제목 없음.png



입춘이 지나고 매화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자 다모아 농장을 돌보는 한 영감의 손길이 바빠졌다. 온 세상이 다시 찾아오는 새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으니 농장의 온갖 식구들을 혼자 돌봐야 하는 한 영감의 마음은 한 시도 쉴 틈이 없다. 새벽부터 사과밭과 복숭아 밭, 그리고 알로에가 자라고 있는 비닐하우스를 잰걸음으로 오가던 한 영감의 발걸음이 잠시 숨을 돌린 시간은 아침때가 한참 지나고 난 후였다.


"허허. 내 정신 좀 보게 그러고 보니 녀석에게 때를 챙겨주지 못했네." 해가 갈수록 나이는 속일 수 없다고 생각하며 혼잣말을 하던 한 영감은 뻣뻣해진 허리를 애써 펴며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마리오! 마리오! "


"네. 저 여기 사과밭에서 마리랑 놀고 있어요."


"오늘은 할애비랑 읍내에 가자꾸나. 읍내에 가서 국밥을 먹고 목욕탕에 가서 목욕도 하고..."


"할아버지. 그럼 마리도 함께 가도 돼요?"


사과밭 입구에서 수고양이를 품에 안고 다소 설레는 얼굴로 한 영감에게 달려온 마리오는 올해 일곱 살이다.


"아니. 오늘은 할애비랑 목욕을 해야 하니까 마리는 집에 두고 가자. 차에 타고 있거라 할애비가 얼른 옷만 갈아입고 나오마."


잠시 후, 한 영감과 마리오를 태운 낡은 경차가 부르릉 소리를 내며 한적한 시골길에 흙먼지를 일으키며 조심스럽게 달렸다. 읍내까지는 마을버스로 삼십여분 거리다. 그런데 한 영감이 몰고 가는 낡은 경차는 언제나 마을버스보다 한참 늦게 도착했다.


한 영감의 운전습관이 워낙 조심스러워서 그렇기도 했지만 인사성 밝은 그의 성품 때문이기도 했다. 한 영감의 인사성은 읍내까지도 소문이 날정도였는데, 그가 가는 길에 그의 눈에 들어오는 이가 있으면 누구든 가리지 않고 기어이 다가가 인사를 주고받을 정도였다. 심지어 어떤 날에는 아침에 읍내로 나선 길이 해 질 녘이 다되어 도착한 적도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한 영감의 차는 이웃마을 김씨네 사과밭에서 멈춰 섰다. 한 영감이 가지치기를 하고 있는 김 씨와 인사를 나누려는 것이었다. 한 영감보다 열 살 어린 김 씨가 한 영감의 차가 멈춰서는 것을 보자 먼저 달려왔다.


마리오도 한 영감을 따라 내려 김 씨에게 인사를 했다. 그런데 한 영감에게 인사를 건네는 김 씨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집안에 걱정스러운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다. 사과밭 사이를 걸으며 한 영감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김 씨의 어깨가 사과나무 가지보다 더 힘겹게 처져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차에서 한 영감을 기다리던 마리오가 '이럴 줄 알았으면 지난번처럼 할아버지 몰래 마리를 차 트렁크에 싣고 올걸' 하며 후회하고 있을 즈음 김 씨의 어깨를 토닥이던 한 영감이 김 씨의 배웅을 받으며 차로 돌아오고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게 파출소에서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힘내게." 차에 탄 한 영감이 시동을 걸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네. 영감님. 볼 일 보시고 조심히 가세요." 한 영감과 이야기를 나눈 후 한결 나아진 낯빛의 김 씨가 한 영감에게 인사를 했다.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들던 한 영감의 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동안 한 영감은 말없이 굳은 표정으로 운전에 몰입한 듯 보였다.


"할아버지. 김 씨 아저씨 집에 무슨 일이 생겼나요?"


좀처럼 어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던 마리오도 파출소라는 말에 김 씨 아저씨네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한 영감은 마리오에게 다른 말을 했다.


"춥지 않니? 창문을 닫을까?"


"아니요. 괜찮아요. 일부러 열어뒀어요."


"일부러? 왜?" 한 영감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바람과 햇살이 태워달라고 해서... 읍내까지만 태워줄게라고 말하고 일부러 열어놨어요."


"허허허. 그랬구나. 방해하지 않으마."


한 영감은 봄볕처럼 따듯한 마음을 가진 마리오를 다정하게 바라보며 더욱더 조심스럽게 운전을 했다. 다모아 농장에도 봄은 이렇게 온갖 궁금증과 설렘으로 다시 찾아 왔다.


작가의 이전글낯 선 길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