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교통사고ㅡ라깡의 거울

by 진동길


"앗! 할아버지 조심하세요. 부딪힐 것 같아요."


한 영감이 운전하던 차가 아스팔트 위를 미끄러지는가 싶더니 키ㅡ익 괴음을 내면서 오른쪽 갓길에 급정거를 했다.


"어휴... 하마터면 큰 일 날 뻔했구나... 어디 다친 데는 없니?" 한 영감이 안전벨트를 풀면서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마리오를 다독이며 물었다.


"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괜찮으세요?" 이런 일을 처음 당하는 마리오는 여전히 놀랜 눈으로 할아버지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때 아스팔트 위에서 말다툼 소리가 들려왔다. 고급 승용차와 낡은 트럭, 양복 입은 남자와 작업복을 입은 남자. 두 차량의 운전자들이 다투는 소리였다. 그들의 말다툼은 기어이 몸싸움으로 이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작업복을 입은 트럭 운전사가 양복 입은 남자한테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하고 있었다.


"야. 이 새끼야! 내가 누군지 알아. 엉! 우리 아버지가... 엉. 누군지 알아? 나는 돈 많아. 우리 아버지는 국회에서... 엉. 너 같은 새끼들 서너 명은 그냥 감방에 처넣을 수 있다고. " 양복 입은 남자가 입에 거품을 물고 트럭 운전사를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그를 축구공처럼 차고 배구공처럼 때렸다.


"여보세요. 도와주세요. 경찰 좀 불러주세요..." 아스팔트 위에 쓰러진 채로 발길질과 주먹질을 당하던 트럭 운전사의 외침이 구경꾼들 사이로 공허하게 흩어지고 있었다.


"할아버지 우리가 119에 신고해요. 저 할아버지 저러다 맞아 죽을지도 모르겠어요." 마리오가 다급하게 한 영감의 휴대폰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꾸나."


한 영감이 119에 신고하는 사이 사태는 더욱 악화되어가고 있었다.


"이 새끼가 죽을라고 똥 차로 내 앞을 추월해? 너 같은 새끼는 더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화가 치밀대로 치밀어 오른 남자는 분이 덜 풀렸는지 자신의 차에서 골프채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아픈 배를 움켜쥐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트럭 운전사에게로 다가가고 있었다.


"할아버지 큰 일 났어요! 저 삼촌이 쓰러진 할아버지를 죽이려나 봐요" 극도로 흥분한 꼬마 마리오는 어쩔 줄 모르며 소리를 질렀다. 한 영감도 119에 신고하는 중에 격앙된 목소리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긴급한 상황을 그대로 전했다.


"할아버지! 어떡해... 어떡해. 저 삼촌이 트럭을 막 부수고 있어요. 미쳤나 봐요. 무서워요 할아버지." 잔뜩 흥분한 마리오는 한 영감의 등 뒤로 숨어들었다.


주위는 아수라장 같았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성난 남자는 마치 미친 황소처럼 보였다. 하지만 곧 멀리서 경찰차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고 미친 황소 같던 남자의 미친 짓도 멈칫했다. 그러더니 그 남자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승용차를 타고 그 자리를 떠났다. 아수라장이 된 상황과 부서진 트럭, 심하게 다친 노인을 남겨둔 채 그는 그냥 가버렸다. 티브이 채널을 돌리듯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가버렸다. 어이없는 현실이었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곧이어 사건 현장에 서 있던 많은 사람들도 짧은 연극을 보고 난 것처럼 조용히 하나 둘 그 자리를 떠나갔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할아버지. 와... 황당하네요. 와... 와... 다들 그냥 가네요." 마리오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한 영감을 바라보는 사이 그렇게 사고 현장에는 폐차지경에 이른 트럭과 멍과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는 노인만 홀로 남겨져 있었다.




마치 꿈같은 시간이 흘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둑해진 도로 위를 달리는 한 영감의 차는 비애감으로 덜덜거리고 있었다.


"마리오. 무섭고 슬픈 일을 보게 해서 미안하구나. 할애비가 할 말이 없다."

"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 할아버지 탓이 아닌걸요. 하지만 충격적인 하루였던 것만은 사실이에요... 정말 무섭기도 했고 또 슬프기도 했어요. 그리고 또... 세상에는 참 이상한 사람들도 많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된 하루였어요."

"다행이구나. 할애비는 마리오한테 미안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파하는 이들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는 우리 마리오가 대견스러운 하루였단다. 또 그런 마리오를 보면서 이런 생각도 했지."

"어떤 생각요?"

"감사하게도 마리오의 영혼이 아직은 일그러지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 그래서 할애비의 마음이 놓였단다."

"일그러진 영혼이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음... 생각해보렴.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 또 같은 점은 무엇일까?"

"아주 쉬운 예로 강아지 복돌이랑 저를 비교해 보면 다른 점은 아주 많아요. 복돌이는 배가 고프면 엄마 다롱이의 밥도 막 뺏어먹어요. 하지만 저는 배가 고프면 할아버지 얼굴이 먼저 떠올라요."

"왜? 네가 배 고픈 거랑 할애비가 무슨 상관이 있지?"

"왜 상관이 없어요? 내가 이렇게 배가 고픈데 할아버지는 얼마나 배가 고프실까 걱정. 할아버지는 무얼 좀 드셨을까 걱정. 할아버지를 위해 어떤 음식을 해드릴 수 있을까 등등. 그런 걱정과 고민 같은 거 말이에요."

"허허허. 고맙고 자랑스럽구나. 올바로 성장해주어서... 그런데 마리오. 마리오는 왜 배고플 때 할애비 걱정을 먼저 하게 되는 걸까?"

"그건 말이에요. 할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할아버지가 늘 말씀해주셨던 아가페 사랑 말이에요. 할아버지가 가르쳐주셨고 제게 보여주셨던 그런 사랑 때문이 아닐까요? 에로스나 필로스 사랑보다 좀 더 승화되고 신에 가까운 사랑 말이에요."

"오...! 우리 마리오가 대견스럽구나... 하지만 늘 조심하거라 세상에는 오늘 만났던 그 양복 입은 남자처럼 자기만 생각하고 타인을 배려하거나 사랑하지 못하는 복돌이만도 못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도 우리와 함께 살고 있으니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요. 할아버지. 아까 그 성난 황소 같던 삼촌은 양심이 없는 건가요? 아니면 정말 올고 그릇 것을 몰라서 일까요? 어떻게 자기 아버지뻘 되는 노인을 그렇게 폭행을 할 수 있죠? 어떻게 그런 짐승 같은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죠? 저 같으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전에 마음이 무척 아팠을 텐데..."

"할아버지 생각에 그 남자는 이웃과 세상을 보는 내면의 거울이 자기중심적인 오목거울이거나 볼록거울일 가능성이 높고 양심의 저울도 고장 났을 것 같구나. 내면의 거울이나 저울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면 그의 마음이나 양심은 아프지 않을 수도 있지."


한 영감의 이야기 끝에 마리오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미 깜깜해진 창밖으로 시선을 던진 채로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할아버지. 정상적이지 않은 거울과 고장 난 저울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좀 덜 슬플 수 있나요? 좀 덜 고통스러울까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냐 마리오..." 한 영감이 짐짓 불안한 듯 물었다.

"말이 안 되는 오늘 일을 되돌아보면 그냥 마음이 아프고 슬프고 그래요. 그런데 말이에요. 오늘 만난 어른들처럼 고장 난 저울로 살면 좀 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오늘 일은 미안하게 됐구나. 네 말대로 어쩌면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짐승처럼 자기만 생각하는 막무가내식 인생이 편할 수도 있겠지. 또 사실 그렇게 자기중심적이고 일방적이며 좁고 편향된 시야로 세상을 사는 이들도 많지. 하지만 마리오, 바다에 상어만 사는 것도 아니고 또 숲 속에 사나운 늑대만 사는 것도 아니니... 너무 두려워하지 말거라. 다만 수 없이 많은 길 위에서 방향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또 황금만능주의적인 현실이 너를 속이고 기만할지라도 사랑의 언어(Logos)에 귀를 기울일 수 있으면 좋겠다. 양심의 저울이 고장 나지 않도록, 네 안의 거울이 일그러지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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