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의 일기

58-20번지 '풀향기'에게

by 진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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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떠나는 길

토닥토닥, 토닥토닥

저 산 넘어 비가 옵니다.


닦인 길로 가라고

머물던 자리 자꾸만

돌아보지 말라고 웃어달라고

저만치 바다를 건너 비가 옵니다.


허락도 없이, 기약도 없이

함부로 눌러앉았던 몇 날, 며칠

네 품에서 잘 쉬었다 간다.


내 남겨진 흔적이 행여

상처로 남아있지 않기를

처음 만났던 그날보다

더 맑고 밝아지기를


괜스레 마른 잎 떨구고 있는 호두나무야

발아래 떨어진 네 열매처럼

지금 내 심정도 복잡하단다.


마땅 끝에 돌아앉은 동백아

수줍게 핀 네 얼굴 보려

나는 또 일 년을 기다려야겠구나.


물 마시러 오는 척

안부를 묻던 개개비, 너도

다시 만나는 날에는 혼자 오지 말거라.


아주 가는 길이 아니기에

지나는 길에 꼭

너희들의 안부를 물으마.


가야만 하는 길

보살펴줘서 보듬어줘서 고맙다고

나는 58-20번지 '풀향기'라는 이름표를

더듬어보고 쓰다듬다 돌아섭니다.


멈칫멈칫 돌아보게 되는 길

어서 가라고 걱정 말라고

다독다독, 다독다독

돌아서가는 길 뒤로 비가 웁니다.

나도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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