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을 때의 일입니다.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습니다. (모든 만물이 혼란 그 자체였고) 공허했고 어둠이 심연을 덮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지요. (그리고 마침내)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습니다. (빛과 어둠을 가르시어 질서를 세우십니다.) -참조: 창세 1, 1-4.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질서 지우시기)하시기 이전의 세상은 혼란스러웠고 공허했으며 깊은 어둠이 (우주, 세상)를 덮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위에 감돌던 하느님의 영이 창조를 시작하자 혼돈 가운데 있던 세상이 질서를 잡아가기 시작합니다. 공허와 어둠만 가득하던 세상이 빛과 생명으로 가득해집니다. 하느님의 창조는 이렇듯 혼돈에 질서를 공허에 생명을 어둠에 빛을 부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때마다 하느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면 부활사건은 생명의 하느님, 창조의 하느님께서 공허와 어둠이 심연을 덮고 있는 이 세상에 당신의 영으로 다시 새로운 질서를 세우시고 빛을 비추어주시는 생명의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부활 사건 이후, 당신의 자녀들과 새로운 질서를 세우시고 새로운 약속을 맺으신 하느님께서는 분명 다시 말씀하시겠지요.
"새롭게 보니 예쁘다. 오래 보고 있으니 사랑스럽다. 다시 보니 아름답다(토브)."라구요.
창조주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한없는 긍정이십니다. 무지에서 빛으로 이끌어주시는 하느님의 섭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한마디 말로 환원되지요. 부활은 그래서 존재론적으로 참(眞)이고 善이며, 신적 아름다움(美)의 영광이자 정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인간에게는 뉴멘적 체험(두렵고 신비로우며 동시에 매혹적인 체험)이자 창조주이시며 섭리자이신 하느님의 권능이며 무제한적인 축복입니다. 이로써 신앙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새로운 창조를 험하고 구세주의 부활로 창조 신앙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것이지요.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그 빛이 좋았다."(창세 1, 1-4b)
살아있다는 것은 생명의 신비입니다. 죽음이 어둠(비존재)이라면 생명은 빛(존재)이지요. 죽음이 끝(어둠과 혼돈, 무의미와 허무, 절망과 좌절)이라면 부활은 새로운 시작(질서이자 창조)입니다. 봄은 부활을 노래하는 피조물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지요. 겨우내 죽은 것 같았던 나뭇가지에 새싹이 돋고 삭막하던 가지마다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선하고 좋은 꽃이 만발하는 봄은 그야말로 부활을 찬송하는 피조물들의 화답송입니다.
창조주의 아드님이신 구원자이신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제자들과 일치(연계)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 일치는 비인간적(비연계)인 경계를 갖습니다.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7.33.)
복음. 하느님의 나라(비연계)에 대한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 중에서 한결같은 주제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당시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이미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믿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복음. "지금 여기서부터 천국을 살아야 한다"는 복음적 선언(주님의 기도)이 꿈같은 이야기로 부풀려지거나 유토피아 같은 기도로 여겨지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 자체가 우리에게는 비인간적인 삶(비연계)으로, 우리의 일상과 전혀 다른 차원으로 들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분의 부활 사건 자체가 감각 세계와 비연계를 이루면서 현상계와 연계성을 갖는 그 경계를 넘나드는 사건이었습니다. 자연적이며 동시에 초월적인 경계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보여주셨던 것이지요.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요한 20,17)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요한 20,26-2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요한 21,12)
신앙인들에게 하느님의 나라는 실존의 세계이다. 인간의 일상과 비연계를 이루면서도 동시에 일치를 이루는 하나의 세계이다.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이들에게는 하느님 실존의 세계가 곧 초월의 세계이다.
“1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3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요한 14장)
그리스도와 하나 된 이들에게 그리스도와 일치는 곧 그 나라의 삶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고 도래하지 않았지만(비연계) 그 나라는 이미 시작(연계)되었다. 그가 있는 곳이 하느님의 나라이다.
5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7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8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한처음: 지금여기
창조는 한처음에 일어났다.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창조는 '이미' 시작되었고 '아직'도 그 과정 중에 있다. 창조는 여전히 지금 오늘도 진행형이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창조 사건은 다시 새롭게 확인되었을 뿐이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간은 하느님의 나라를 재확인 하게 되었다. 천국은 지금 여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분은 아름답고 좋은 이 세상에 이미 오셨지만,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그분은 갈릴래아(지금여기)에 실존의 하시는 존재이시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0, 1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0,18-20)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세상에 인간의 몸(연계)을 입고 오셨다. 그러나 그분은 새로운 창조를 위해 오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비연계). 아버지와 하나이신 분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하느님의 나라(천국)는 그분과 함께 영원히 존재(일치)하는 한 나라(동시)이다.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로마 8,11) 주 예수님을 일으키신 분께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일으키시어 여러분과 더불어 당신 앞에 세워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2코린 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