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단지

부활: 그 이유

by 진동길

스위스 출신 화가 외젠 뷔르낭(Eugene Bumand 1850 무동~1221 파리)


“나는 네 아버지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탈출 3,6) 이 말씀은 불타는 떨기 속에서 모세에게 하느님 당신을 스스로 명명하신 말씀이지요. 인간의 역사와 시간, 그 '삶의 자리'에서 우리와 함께 고통받으셨고 아파하셨으며, 때로는 함께 기뻐하시며 웃으셨던 하느님의 자기소개입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은 인간의 철학이나 과학, 수학으로 만나실 수 없는 분이기에 그렇습니다.


“나는 네 아버지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라고 하신 자기 증언의 이 말씀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은 저 높은 곳에서 홀로 자족하시는 분이 아니심이 명확해졌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없이 세상을 창조하셨지만, 우리와 함께 세상을 구원하고 싶어 하시고 그 나라를 이루려 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하셨던 하느님은 부족한 우리들, 허물과 실수 투성이인 우리와 함께 당신의 나라를 일으켜 세우고 싶어 하셨음을 성경은 일관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이 증언하는 하느님은 우리의 나약함과 허물이 그 나라를 세우는 재료가 되어왔음도 기억하게 합니다. 교만과 허영, 자만심에 가득 찬 화려한 스펙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성실하고 진실한 마음, 부족한 사랑,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의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이들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임마누엘 주님의 마음과 사랑을 흔히 가시고기의 삶에 비유하는데요.


세상에서 가장 부성애가 강한 생명체 중의 하나인 가시고기는 주로 남해안이나 제주도 주변 바다에서 자주 발견되는 크기가 5~7cm 해양생물입니다.


산란기가 되면 주둥이로 구덩이를 만들고 수초 가닥을 물어와 약 4시간 동안 둥지를 지은 후, 암컷을 둥지로 데려와 산란을 합니다. 산란 후, 암컷은 곧장 둥지를 떠나고. 수컷은 그 순간부터 먹이사냥도 중단한 채 단 한순간도 둥지 곁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지금부터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인데요.


알 냄새를 막기 위해 수풀과 돌들로 방어막을 쳐야 하고, 수천 개나 되는 알들을 일일이 뒤집어주고 바람을 쏘여주어야 합니다.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부채질. 동시에 알을 훔치러 온 적이 침범할 때는 등가시를 세우고 방어도 해야 합니다. 먹지도 못하고 잠을 잘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면 부화가 시작되는데. 지금부터 녀석은 더욱 바빠집니다. 사흘 동안 해 오던 일에서 서너 가지 일이 더 생겼습니다.


입으로 알을 건드려 새끼들이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을 도와야 하고, 또 먼저 깨어난 새끼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인데요. 그 와중에도 늦게 깨어나는 새끼들이 있기 때문에 꼬리지느러미로 하는 부채질은 잠시도 멈출 수가 없지요. 다른 물고기들이 돌멩이나 수초 틈에서 편히 쉬는 밤에도 녀석은 잠들거나 쉴 수가 없습니다. 알이 하나 둘 부화할 때, 야간 경계는 더욱 강화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보니 어느새 녀석의 몸은 푸른색으로 변하고 지느러미는 갈라져 더 이상 물에 뜰 수조차 없게 됩니다. 주둥이는 이미 헐어 흉해졌고 움직임도 갈수록 굼떠집니다. 그도 그럴 것이 녀석은 15일간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뜬 눈으로 밤을 새웠으며, 한순간도 경계를 늦추지 않은 탓에 스트레스는 최대치에 달했습니다. 녀석은 이제 최후의 순간이 다가왔음을 직감합니다.


하지만 죽는 순간까지 아비는 편하게 죽을 수가 없습니다. 남겨진 새끼들을 위해 할 일 남았기 때문인데요. 죽음이 코 앞으로 다가온 순간. 아비는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 새끼들이 모여있는 둥지 쪽으로 다가갑니다. 그리고 배고픈 새끼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주며 마지막 숨을 거둡니다. 최후의 만찬을 준비한 것이지요. 아버지 가시고기가 숨을 거두며 남긴. 최후의 만찬. 가장 화려하면서도 장엄하고 숭고한 만찬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15.)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


한 처음. 여러 동물들이 창조되었을 때. 하느님은 동물들을 모아놓고 그들의 몸에 맞는 것들을 선물로 내어주셨습니다. 새에게는 빨리 날 수 있는 날개를, 사슴에게는 뿔을, 하마에게는 큰 입을. 코끼리에게는 긴 코를. 또 추운 지방에 사는 동물에게는 추위에 견디도록 두꺼운 털도 각각 선물로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유독 아담(사람)에게만은 털도, 뿔도, 날개도 큰 입이나 긴 코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아담은 하느님께로부터 어떤 선물도 받지 못하자. 직접 하느님을 찾아가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껄껄껄 웃으시며.


“내가 특별히 너를 위해 마련해 준 것을 아직 찾지 못하였구나!"


"나는 너에게 다른 동물들보다 몇 배나 좋은 걸 주었단다. 그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속에 들어 있단다."


눈에 보이지 않고, 마음속에 들어 있는 것이라. 그리고 다른 동물들보다 몇 배나 좋은 것? 아담은 그것의 정체가 궁금해졌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그것이 무엇이기에 눈에 보이지도 않게 마음속에 꼭꼭 감춰두셨습니까?"


"그 이유는 아주 귀한 것이기 때문이지. 본래 내 것이었다. 때문에 그것은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힘이 있고. 너무도 아름다워서 보는 이마다 탐을 낼 수 있단다. 또..."


"또 무엇이옵니까?"


"또... 때로는 아주 쉽게 잃어버릴 수 있지. 그리고 그것을 잃어버리고 난 후에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오기 때문에. 네 마음속. 깊고 깊은 곳에 감추어두었단다."


"아주 쉽게 잃어버릴 수 있고. 그것의 빈자리에는 고통이 찾아온다. 그 이름이 무엇입니까?"


아담은 다소 궁금증이 풀린 듯. 그것의 이름을 여쭈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아담의 가슴을 조심스레 다독이시며.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힘을 가진 그것. 네 마음속에 감추어진 그것의 이름은 ‘사랑’이란다.”




# 하느님의 사랑


세상의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들고, 우리 마음속에 감추어진 그것.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숨 쉬고 있는 ‘사랑’. 그것은 본래 하느님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한 처음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니 좋았다”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만드셨기에. 하느님 사랑의 눈으로 보셨기에.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보이셨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셨습니다. 위로부터 태어난 이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압니다. 그분으로부터 사랑받는 이들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또 하느님처럼 세상을 사랑하지요.


# 힘의 ‘세상’(코스몬, κόσμον)


“하느님께서는 세상(κόσμον)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17)


“오늘은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요한 3,13). 그분께서 하느님의 사랑을 증언하십니다.


오늘 예수님의 증언은 ‘복음서 속의 복음’ 또는 ‘작은 복음서’라고 불리기도 하는데요, 예수님의 증언으로 우리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선택된 민족뿐만 아니라, 온 ‘세상(κόσμον)’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지만 창세기에서 말씀하신 ‘세상’(הָאָֽרֶץ׃, the earth)과 오늘 말씀하신 ‘세상(κόσμον)’은 신학적으로 다른 차원의 세상입니다.


창세기의 ‘세상’(אָֽרֶץ)이 구체적인 천하, 토지, 육지를 일컫는 데 쓰였다면, 오늘 말씀하신 ‘세상’(κόσμον)은 죄악에 싸여 있는 곳으로 인간이 그들의 ‘힘’을 쓰는 싸움판입니다. 하느님의 정화작업이 필요한 곳이지요. 어쩌다 세상이 이처럼 변했는지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예수님은 악하고 정화작업이 필요한 ‘세상’(κόσμον)을 하느님께서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 사랑의 ‘세상’(에레츠, אָֽרֶץ; 아르아, אַרְעָ֛א)


보는 관점에 따라 ‘세상’은 달라 보입니다. 죄로 물든 세상일 수도 있겠고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세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외아들을 내주시어 창조 때의 ‘세상’(הָאָֽרֶץ׃). ‘보시니 좋았다’라고 말씀하신 세상으로 우리를 다시 초대하십니다.


"들을 귀 있는 이들은 들어라! 세상은 다시 그 아들의 피로 정화되었다!"


이제 그 세상은 ‘인간의 힘’이 다스리는 세상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이 함께하는 세상입니다. 아버지의 ‘숨’이 머무시는 곳이자 아들의 ‘생명’이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다시 그 아드님이 당신을 믿지 않는 세상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초대하십니다.


“가거라.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모두 백성에게 전하여라.”(사도 5,20)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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