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동길 May 22. 2023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빛으로 오시고 빛이 된 사랑


시•공의 한계를 극복하는 무차원의 사랑


교회는 한 위격(位格)이면서도 천주성과 인성을 가졌던(칼체돈 공의회) 예수가 부활한 육신과 영혼을 지닌 채 "하늘에 오르셨다"라고 믿는다.


승천은 두 가지 측면을 갖는다. 가시적(可視的) 측면과 불가시적인 측면이다. 그리스도가 지상생활을 마치고 올리브산에서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이 세상을 떠나신 역사적 사실과, 불가시적 측면 즉 하늘에 계신 성부 오른편에 드높여진 그리스도의 영광이 그것이다. -가톨릭 대사전 참조


시•공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사랑이 하늘나라를 완성했습니다. 차별과 차이를 극복한 사랑이 차원을 넘어 무한한 사랑으로 확대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리스도의 승천 사건입니다.


사랑의 스펙트럼


승천하시고 우리 안에 스며들어 오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마치 빛의 스펙트럼처럼 온 세상에서 모든 이들에게 각각의 그리스도의 색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


이러한 힘과 용기를 주시는 분은 성화주 성령이십니다. 인격과 육신을 지닌 그리스도가 승천함으로써 모든 인간의 나약함까지 아시는 성삼위가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내주(內住)하심으로 가능한 일이지요. 그러므로 승천과 성령강림은 동시에 일어난 사건이자 하나이신 분이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시기 위한 구원의 계시 사건의 완성입니다. "우리를 당신 천주성에 참여케 하시기 위하여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나이다"(승천감사송)


“부활로써 죽음을 이겨 승리하였고, 성부 오른편에 드높여짐으로써 인류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삼위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히브 9:26, 10:10).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승천은 신성(神性)과 일치된 인간의 승천이요 그 인간이 구원되어 목적지에 도달함을 의미한다.(에페 2:4-6 참조)”-가톨릭 대사전


일치를 위한 승천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8-20)


이 말씀으로 승천의 신비가 가르치는 것은 인간의 육신과 영혼 전체가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영광을 받고 있다는 것이며, 이 일치는 먼 장래의 일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예수가 오르신 하늘은 인간이 영생을 영위할 수 있는 곳이라면 그분을 믿고 세례로 다시 태어난 우리는 그분이 머무시는 ‘하늘’(콜로 3,3), 곧 지금-여기에서도 진정한 생명이 에 감추어져 있음을 알고 그 하늘은 우리에게서 멀리 있는 것도, 이 세상 밖에 있는 것도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 그의 하늘은 이 세상을 초월하여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신앙과 성사로써 이 세상을 접촉하는 것보다 더 가깝게 실재적으로 ‘하늘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성사로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십시오. 내 발을 씻으신 그분이 하늘 아빠의 사랑으로 인간의 유한한 사랑을 무한으로 이끌어 올립니다.


보십시오. 그분은 이제 여기에도 계시고 저기에도 계십니다. 언제 어디서나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이들에게 다가오시고 만나주시고 그 사랑을 내어주십니다. 하늘나라의 삶이 지금-여기서부터. 하늘님의 사랑이 온누리를 감싸고 있습니다.


빛의 이중성


빛을 대표하는 형제인 태양을 바라봅니다. 형제인 태양은 빛으로 다가와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명체를 살리는 에너지원이 되지요. 그 빛은 다시 세상 만물을 비추어주며 그들만의 색깔을 드러냅니다.


예전에는 빛은 빛으로 존재할 뿐이었습니다. 빛이 파동이자 동시에 입자로 존재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요. 파동과 입자 이 둘은 완전히 다른 성질을 지니지고 있으므로 빛뿐만 아니라 모든 물질은 두 가지 성질 중에 하나로 존재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빛의 이중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한걸은 더 나아가 인류는 이후 빛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물질도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지닌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인류는 아무도 이 사실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또 하나의 새로운 눈을 뜨게 된 것이지요. 창조주이시고 초원자이신 하느님 앞에 세상은 여전히 눈뜬장님과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당신은 누구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누구요?”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처음부터 내가 너희에게 말해 오지 않았느냐?...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요한 8, 23.25.28.29.)


예수의 신원에 대한 질문은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류에게 던져진 가장 큰 화두입니다. 어떤 이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요한 1,14.)라고 증언합니다.


또 어떤 이는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립 2,6-8.)라고 말하는가 하면.


또 다른 이들은 하느님과 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온전히 충만한 신성이 육신의 형태로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하느님은 한 분이시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도 한 분이시니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콜로 1,19; 2,9 1티모 2,5; 히브 1,3.)


요한이 보고 들은 사실


실존했던 역사적 예수님의 12제자 중에서 그분이 가장 사랑하셨던 제자로 알려진 요한은 말을 들읍시다.


그의 복음에서 우리는 그분께서 당신 자신을 누구라고 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데요. 그분은 일곱 번에 걸쳐 당신 스스로 이렇게 계시하셨지요.


“나는 생명의 빵이다.”(요한 6,35.48.)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 8,12.)

“나는 양들의 문이다.”(요한 10,7.)

“나는 착한 목자다.”(요한 10,11.14.)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한 11,2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

“나는 참 포도나무다.”(요한 15,1.)


요한은 궁극적으로 자신이 실제로 만난 하느님을 증언하고자 했습니다. 요한복음이 쓰인 이유입니다. 때문에 그는 끊임없이 예수에 대한 신원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누구인지 요한이 직접 보고 들은 것을 전하고 있지요.


하느님과 같은 사람


그 말씀은 이렇습니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릴 때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것이다.”(요한 8,28)


이 말씀은 이중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아주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우선 예수님은 이 말씀으로 당신 자신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내가 나’라고 말씀하셨던 분임을 상기시키고 있는데요.


‎           "הָיָה אֲשֶׁר הָיָה 하야 아셰르 하야"


                      "나는 나"(ἐγώ εἰμί)


"I AM WHO I AM"라는 말씀은 야훼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실 때, 모세에게 당신을 계시하시면서 하신 말씀인데요.”(탈출 3,14)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듣는 이들에게 당신 자신이 '하느님과 같은 분'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두 번째로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것이라는 말씀 속에는 앞으로 일어날 하느님의 구원 의지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예수님은 하느님의 구원 의지에 따라 십자가 위에 들어 올려져서 계시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에 비로소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요한 19,30) 광야에서 죽어가던 이스라엘 백성이 구리 뱀을 보고 살아났던 사건을 예수님은 깨닫게 하십니다.(민수 21, 4-9)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리 뱀이 구원의 표징이 되었듯이 이제 그분은 당신이 달린 십자가를 바라보고 기도하는 모든 이들에게 구원을 주실 것입니다.


영원한 구원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루카 10,21; 마태 11,25.)


빛이 세상에 입자와 파동으로 자신을 내어주듯이 신이면서 동시에 인간으로 오신 메시아는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 배척당하셨습니다.


그럼에도 하느님의 구원 의지는 변함이 없습니다. 새로운 계약은 그분에 의해 완성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들을 죄와 죽음에서 이끌어내실 것입니다.


“나를 보내신 분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요한 8,29.)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



작가의 이전글 소금단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