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누구와 함께 일하시는가?
같은 세상에 참 다른 삶의 두 남자가 살고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였던 '지안루카 바키'(1967년생). 온몸에 문신을 한 그는 각종 SNS와 매거진을 통해 자신의 부와 화려한 패션과 일상을 공유하고 있는데요. 고급 오토바이와 거대 저택 그리고 대형 요트와 개인 비행기가 그의 일상에 등장합니다.
또 한 남자가 있습니다. "돈은 내 것이 아니고, 내가 잠시 보관하고 있는 것일 뿐...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것은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평화롭고 평온한 태도로 사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전 재산인 56억 홍콩 달러(약 8100억 원)를 기부하겠다"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남자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주윤발'(1955년생)인데요.
주윤발은 인터뷰에서 한 달 용돈으로 800 홍콩 달러(약 11만 원)를 쓰고 교통수단으로는 버스를 이용한다고 합니다. 과거 노키아 휴대전화를 17년 동안(고장이 날 때까지) 썼던 경험도 공개했는데요. 저렴한 식사를 하고 싸구려 시계와 옷을 입는 그는 건전하고 겸손한 생활의 대명사라고 하지요.
신들의 이야기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σπλαγχνίζομαι: 애간장을 태우다)이 드셨습니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입니다.(마태 9,36)
마침내 제자들에게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이르시고는(마태 9,37-38)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는데,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십니다.(루카 6,12-13)
밤을 새워 기도하신 예수님. 신들의 기도. 하느님의 기도. 그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그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시간. 그들만의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요?
신들의 이야기. 그들의 대화에는 분명 인류와 피조물들,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그 만남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할 것 같습니다. 세상을 향한 걱정과 사랑으로 밤을 지새우시겠지요. 지금 이 시간에도.
길고 긴 밤, 아주 오랜 기도 끝에. 신들의 이야기 끝에 새날이 밝아왔고, 예수님은 심중에 두셨던 열두 명의 제자들을 부르시겠지요.
제자들은 이미 다 모여있습니다. 다양한 모습의 출신들이었습니다. 그중에 주윤발과 지안루카 바키의 성품을 가진 인물도 있겠지요? 여러분은 성품이 다른 두 사람 중에 누구를 사도로 뽑으시겠습니까? 과연 누구를 부르실까요? 좀 변호사? 정치인? 의사? 누가 신의 이름으로 곧 하느님의 이름으로 일할 일꾼이 될까요? 아무튼 긴장되는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마태 10,1.)
열두 명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이들은 당신께서 하실 일의 대리자입니다. 성무(聖務)를 할 사람들이었지요. 하느님과 함께 하는 일말입니다. 신의 일이지요.
참으로 이상한 점은 예수님께서 부르신 이름 속에서 정치인이나 똑똑하다는 사람들, 부유하거나 지체 높은 사람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부르신 이들은 어부들, 죄인 세리, 열혈 당원이었습니다. 심지어 당신을 배신할 이의 이름도 거기에 있습니다.
사도들은 누구인가?
“베드로는 마음이 약하고 성격이 급했습니다. 용기가 없는 충실치 못한 제자였지요. 야고보와 요한은 야심이 있었으며, 필립보는 맹목적이었습니다. 필립보는 지성과 통찰력이 부족하여 자신이 직접 빠져보지 않고서는 영적 진리를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유다는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느님 나라보다 돈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마태오 역시 사기꾼인 데다 과거가 깨끗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토마스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못하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고요.
안드레아는 냉소적이었고, 열혈 당원 시몬은 싸움을 좋아하는 기질이 있었고, 사회 정의를 부르짖기는 했지만, 감성이 섬세하지 않았습니다.
바르톨로메오와 작은 야고보는 재능이 없었고, 세상에 기여할 바가 없었습니다. 수줍고 내성적이었습니다. 카리스마가 없었습니다.”<조안 치테스터, 변화의 바람>
어리석은 이들을 뽑아 세운 지혜로운 선택
이 모두가 하느님의 결정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어리석은 선택처럼 보입니다. 모두 쓸만한 사람은 없어 보입니다. 앞으로 이들에게 맡겨질 일들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이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하느님은 당신을 부르십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희망을 줍니다.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느님의 영으로 깨끗이 씻겼습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되었고 또 의롭게 되었습니다.”(1코린 6, 11)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1코린 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