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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길 Jun 19. 2023

소금단지

에포케(εποχη) 판단중지(判斷中止)


세계적인 생태학자가 수도자들과 회의를 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 하필 생태학자의 찻잔에 파리가 한 마리 빠졌습니다. 생태학자는 그런 경험이 전에도 있었기에 "별일 아닙니다."라고 말하며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회의를 계속 이어갔습니다.


옆에 있던 수사님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생태학자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생태학자는 다시 "별일 아닙니다."라며 웃어넘겼습니다. 그러자 그 수사님은 생태학자가 눈치챌 수 없도록 조심스럽게 찻잔에 빠진 파리를 꺼내 주었습니다. 하지만 생태학자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수사님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생태학자에게 귓속말을 했습니다. "파리도 별일 없다는군요."


그 말을 들은 생태학자가 오히려 부끄러워했습니다. 자신은 생태학자로 자연과 환경과 생명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수사님은 생태학자는 아니었지만 찻잔 속에 빠진 파리를 먼저 생각할 정도로 자연과 환경과 생명을 먼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사랑으로 완성되는 법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마태 5,38-42.)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마태 5장~7장)에서 율법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고 선언하시면서(마태 5,17) 여섯가지 구약의 율법에 대하여 새로운 해석을 선언하시는데요.(마태 5,21-48) 그 여섯가지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살인하지 말라 - 성을 내지마라(마태 5,21-26)

2. 간음하지 말라 - 음욕을 품지 말라(마태 5.27-30)

3. 아내를 버리려면 이혼장을 써 주어라 - 아내를 버리지 말라(마태 5,31-32절)

4. 거짓 맹세를 하지 말고 맹세한대로 지켜라 - 맹세를 하지 말라(마태 5.33-37)

5.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마태 5.38-42)

6.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 - 원수를 사랑하여라(마태 5.43-48)


예수님 특유의 이 여섯가지 가르침은 '대당명제'로 일컬어지는데요. 그 형식을 살펴보면 '너희는 들었다.'는 기본명제와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라는 반명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반명제로 제시된 '완성된 계명'에 따라 행하는 것이 더  하느님 나라에 가까운 삶임을 예수님은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의 새로운 가르침이자 사랑으로 완성된 여섯가지 법의 취지와 근본정신은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라고 하신 황금률(마태 7,12; 루카 6,31)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여섯가지 가르침의 외형적인 특징은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마태 7,13-14)라는 말씀이 저절로 떠오를 정도로 실천하기 어렵게 생각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을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율법을 완성하고 싶으셨던 예수님의 마음은 당시 율법주의적 사고방식을 깨뜨리고 그것의 참된 정신을 밝히고 싶었습니다. 따라서 율법의 물리적 해석에 치중한 형식논리를 넘어서 그 법 속에 담긴 하느님의 마음과 그분의 뜻에 근거한 새로운 ‘의로움’을 요구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곧 예수님은 행위의 결과보다 행위를 촉발하는 마음속의 의도와 원인이 더 중요함을 일깨워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말씀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1,45)는 구약에서 요구한 하느님의 거룩함. 그리고 같은 의미인 하느님과 같은 완전함을 추구해야 한다.(마태 5,48)는 가르침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에포케(εποχη) 판단중지(判斷中止)


오늘도 예수님은 오래도록 유대인들의 삶을 지배해왔던 '동태복수법'을 폐기하십니다. 이 법이 낳을 비인간적이고 부정적인 열매들을 염려하신 때문이지요. 에포케(εποχη) 판단중지(判斷中止). 그리고 행위의 결과보다 행위를 촉발하는 마음속의 의도와 원인을 살펴보라고 예수님은 제동(制動)을 거십니다. 1차 사고보다 더 큰 2차 사고를 예방하시고자 하십니다.


또 악인에 대해서도 말씀하시는데요. 악인에 대해 교부들은 '선한 영'의 결핍을 말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세상에는 결핍이 인간의 정신과 욕구와 욕망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현대 정신의학에서도 사이코패스(Psychopathy) 증세에 가까운 정신병을 앓고 있는 이들이 우리와 함께 살고 있음을 부정하지 않지요.


하지만 모든 일을 선으로 이끄시는 하느님, 인간이 쌓아놓은 악에서도 선을 일구어내시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동태복수의 삶은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사랑의 법(원수를 사랑하라: 마태 5,38-48, 루가 6,27-30)에 맞지 않는 삶일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이 법은 더 많은 갈등과 부작용을 낳는 낡은 법이지요. 폐기되어야 함이 마땅한 법입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분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분명 아직도 많은 이들이 이 법을 폐지하지 않아서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종교분쟁도 문제이지만, 우리의 일상에서도 동태복수의 법이 여전히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면 오늘은 내 안의 이 낡은 법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불태워 버릴 수 있기를 함께 기도합니다.


교통사고는 이웃과 세상을 염두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자기와 자기의 길(삶)이 소중한만큼 타인의 길(삶)과 타인의 생각도 소중히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성령께 청할 수 있는 복된 날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영은 언제나 적극적이고 조건없는 사랑으로 불타고 있음을 잊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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