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악명 높은 교정시설, 배스토니
노바 앤젤레스 상층부근교.
사방이 죽은 듯 정적에 잠긴 높은 담장이 사뭇 위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너머에는 “감옥”이라 칭하기엔 지나치게 광활한 부지를 갖추고 있고, “군사기지”라 부르기엔 음습한 감옥 특유의 기운이 감돈다.
바로 이곳 — 배스토니 교정시설(Bastoni Penitentiary)— 은 노바 앤젤레스에서 가장 악명이 자자한 특수 교도소다.
감옥인가 요새인가
사방을 감싸는 철조망과 자동화 감시포탑, 공중을 순찰하는 연방 보안 드론들이 탑재한 레이저 조준점은, 외벽을 따라 끊임없이 움직인다. 이 장비들만 봐도, 교도소라기보다는 거대한 요새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내부로 발을 들이면, 겉보기엔 20세기 중반 교도소를 연상시키는 낡은 건물 외관이 보이지만, 사실 그 내부는 최첨단 감시기술과 생체 실험 시설들로 빼곡하다. 머리 위 하늘에는 고도를 낮춘 제트들이 분주히 오가고, 그 엔진 소음은 단단한 담벼락을 타고 섬뜩하게 울려 퍼진다.
소장 프레이저(Frasier)
배스토니를 통솔하는 인물은 소장 프레이저(Frasier)— 전직 군 장성이자, ‘크리에이터 전쟁’ 당시 베테랑으로 참전했던 자다. 전쟁 중 AI 폭주로 가족을 잃었다는 비극이 그의 내면에 깊은 증오를 심었다.
“레플리칸트는 도구일 뿐이야. 인간과 동등하게 대할 이유가 없어. 영혼도 없잖아.”
프레이저가 새로 부임한 뒤, 배스토니 교정시설은 단순한 “수용소”가 아니라 “실험실”이 되었다고들 한다. 전쟁 때 마련된 군사연구 노하우와, 일부 불법 AI 기술이 이곳으로 흘러 들어왔으며, “인간-AI 혼종 병기”를 만드는 계획을 비밀리에 진행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일부 인권단체는 이를 “반인륜 범죄”라며 거세게 반발했지만, 상층부권력자들은 대개 “레플리칸트는 재산일 뿐”이라는 비웃음으로 대응한다. 권력자들에게, 이곳은 단지 국방을 위한 연구 시설에 지나지 않는다.
교정시설 내부의 풍경
배스토니 내부 복도를 걷다 보면, 마치 군부대를 연상케 하는 우락부락한 AI 교도관들이 어깨를 겨누고 서 있다. 이들은 구형이든 신형이든, 전쟁 때 쓰였던 개인 전술장비를 여전히 착용하고, 필요하면 전기 충격봉이나 체포 드론을 휘두른다.
재소자들이 작은 소동이라도 일으키면 즉각 전기 충격이 날아들고, 천장 곳곳에 달린 감시 카메라는 일거수일투족을 샅샅이 스캔한다. 비상등이 묘하게 깜빡이는 복도마다 옅은 소독약 냄새가 배어 있고, 그 속을 부유하는 긴장감이 싸늘하게 스며든다.
시설은 크게 세 개 구역으로 구분된다.
“중범죄자 구역”: 마약 카르텔이나 갱단 보스, 심지어 정치적 반체제 인사까지. 이 도시에서 위험하다고 분류된 이들이 뒤섞여 있다.
“AI 전범 구역”: 크리에이터 전쟁 당시 생포된 AI 로봇이나, 그들과 협력한 과학자들이 수감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외부인에겐 비공개라 소문만 무성하다.
“레플리칸트 특별 감시 구역”: 여기서는 레플리칸트를 “인간 이하”로 대하며, 감정·행동 패턴 연구를 명목으로 별도의 실험실로 끌고 간다. 이곳은 감옥이라기보단 실험대에 더 가깝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복도 한쪽에서 재소자들이 운반하는 짐수레에는 종종 인체와 다름없는 레플리칸트 신체 부위가 실려가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한다. 그럴 때 교도관들은 “하등 생물이니 상관없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혐오와 경멸이 뒤섞인 조롱에, 재소자들은 공포 속에서 입을 다물 뿐이다.
소장 프레이저의 집무실
시설 중심부, 견고한 철문 뒤에는 소장 프레이저의 집무실이 자리해 있다. 이상할 만큼 화려하게 장식된 이 방은, 전쟁 전 수집품인 골동품들이 줄지어 진열돼 있고, 대리석 바닥에 화려한 식물로 꾸며져 있다. 교도소의 음침함과는 정반대로 “품격”을 과시하는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오가는 재소자 명부와 실험 결과들은 섬뜩하기 짝이 없다.
프레이저는 항상 차분한 말투로 부하들을 지시하고, 때로는 외교관처럼 점잖아 보이는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그의 눈빛에는 AI와 레플리칸트를 향한 극도의 적의와 집착이 번뜩이고 있다.
“AI란 결국 인간을 배신했지. 레플리칸트라 해봐야, 기계와 다를 게 뭐야. 이 감옥이 내 손아귀 안에 있는 이상, 너희에게 자유란 없을 테니까.”
그를 따르는 교도관들도 대부분 같은 가치관을 지닌다. 누군가 레플리칸트나 AI에 연민을 보이는 순간, 프레이저의 차디찬 응징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실험 실장(實驗 實場)’의 소문
그렇다면 이 시설은 정말단순한 교정이 목적인 걸까? 전쟁 이후로 배스토니를 둘러싼 소문은 끊이지 않는다. 레플리칸트를 감정적으로 조종해 ‘인간-AI 혼종 병기’를 만들려는 연구가 진행 중이라느니, AI 로봇을 역으로 해킹해 군사 목적으로 재활용하려는 계획이 있다는 둥의 풍문이 돌고 있다.
특히 재소자들 중에선 갑자기 ‘연구동’으로 이송된 뒤, 다시 돌아오지 못한 사례가 꾸준히 보고된다. 재판 없이 사라졌다는 거다. 그러나 상층부 정부나 권력층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인권? 레플리칸트는 인간이 아니라 재산이지 않나? 국방 연구를 위해 어느 정도 실험은 불가피한 일.”
이런 발언이 공공연하게 나오면, 노바 앤젤레스의 하층민들은 분노에 찬 목소리를 내지만, 경찰 특수부대가 곧 내려와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한다. 그 결과, 배스토니 교정시설은 점점 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처럼 배스토니 교정시설은, 노바 앤젤레스에서 가장 음침하고 비극적인 구역 중 하나다. 규모가 엄청나고, 감시와 무장 시스템이 극도로 발전된 탓에, 여길 탈출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소문난다. 수많은 재소자들은 “단 한 번도 성공한 탈옥이 없다”며 공포에 질려 입을 다문다.
그러나 세상사가 늘 그렇듯, 아무리 견고해 보이는 구조물에도 틈이 존재한다. 모든 교도관이 프레이저에게 절대 충성하는 건 아닐 수도 있고, 인간적 양심을 품은 이가 내부 어딘가에 숨어 있을 가능성도 있다.
노바 앤젤레스라는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 배스토니 교정시설 역시 언젠간 뒤집힐 계기를 맞이하게 될지 모른다.
“이 교도소가, 곧 ‘새로운 지배자’를 낳을지도 몰라.”
누군가는 교묘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속삭였다.
프레이저가 꿈꾸는 AI+인간 혼종 병기의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난다면, 이곳은 다시 한번 전쟁의 불씨가 될지도 모른다.
AI 전쟁이 끝났다고들 장담하지만, 사실 아무도 완전히 끝냈다고 단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불씨가 배스토니에서 다시 타오르려는, 섬뜩한 예감이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