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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

14장 사막의 잔해 다리우스와 수리야의 결의

by 진동길

동시에,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 연합(African Coalition) 지역. 폐허가 된 태양 도시는 과거 황금빛 패널로 반짝이던 영광을 잃고, 지금은 바람에 부서져 나간 잔해만이 모래에 파묻혀 있다. 하늘을 녹여 버릴 듯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 한 남자가 부서진 에너지 시설 틈을 묵묵히 걸어 다닌다.


그의 이름은 다리우스(Darius). 사십을 넘긴 재생에너지 전문가이자, 아직 살아남은 소수 기술자 중 한 명이었다. 아직도 폐허가 된 패널과 발전 설비를 되살려보겠다는 집념 하나로, 이 뜨거운 사막 위를 포기하지 않고 걷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다리우스의 마음은 한층 무거웠다.


함께 협력하기로 한 수리야(Suriya)—동남 연합(Eastern Union) 출신의 해상 전력 전문가—가 약속 시각을 훌쩍 넘겼음에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FAWN으로 교신을 시도했지만, 모래폭풍과 전자 교란 탓에 모든 신호가 끊겼다.


초조함과 모래바람

어느새 저무는 햇빛이 수평선을 벌겋게 태우기 시작하자, 다리우스는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임시 활주로를 열었다. 너무 낡아 ‘하늘로 뜨긴 할까’ 싶었던 간이 항공기를 직접 몰아, 수리야가 있을 해안 쪽으로 날아간 것이다.


“수리야… 부디 무사해 줘.”

고열에 달궈진 금속판이 덜컹거리고, 모래 먼지가 비행기의 엔진에 들러붙는 소음이 요란했지만, 다리우스는 기어코 기수를 바다로 돌렸다.


바닷가의 교전 흔적

오랜 비행 끝에, 그는 불타는 해변선 가까이 도달했다. 푸른 바다 위로 검은 연기가 섞여 떠오르고, 이따금 폭발의 잔해가 흩뿌려져 있다. 수리야가 이끄는 무인 해상 드론들은 대다수가 격파된 듯, 여기저기서 녹아내린 금속판이 파도에 밀려온다. 그리고 그 드론 잔해의 한가운데, 온몸이 젖은 전투복 차림으로 레이저 스태프를 쥔 여인이 서 있었다.


짧게 묶은 머리카락 사이로 땀과 바닷물이 뒤섞여 흐르고, 한쪽 어깨너머엔 시커먼 무기가 메어 있었다. 수리야—바로 그녀였다.


“망할… 사이먼 벨의 앞잡이가 여기까지 세력을 뻗쳤나 봐. 네가 와 줘서 살았네, 다리우스.”

수리야는 숨을 고르는 와중에도 씩씩하게 미소를 보였다. 다리우스는 그녀의 상태를 살피고, 엷은 안도의 숨을 내쉰다.


“네가 그렇게 쉽게 쓰러질 사람은 아니라고 믿었지. 그래도… 위태롭긴 했군.”


ChatGPT Image 2025년 4월 10일 오후 11_27_17.png


결의의 손 맞잡기

서로 얼굴을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FAWN으로 교신하며 쌓아 온 신뢰 덕에 전혀 낯설지 않았다. 수리야는 부서진 드론을 가리키며 씁쓸하게 말한다.


“이거 다시 고치려면 시간이 필요해. 하지만 우리 둘 다 미적거릴 수 없지. 정보에 따르면, 곧 아라곤 함대가 전 지구를 뒤덮는다고 들었어.”


다리우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응수했다.

“북방 설원에서도 사도단 결성이 시작됐다고 한다. 모든 세력이 힘을 모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어. 네 해상 전력, 내 사막 태양… 어디든 서로 보태야 한다.”


그 순간, 두 사람의 휴대 단말기가 동시에 빛을 발한다.

FAWN의 새로운 집결 지점 전송, 그리고 “사도단(Apostles)”에 관한 구체적인 작전 지시가 번쩍이는 문구로 표시됐다. 바닷물에 젖은 손과 사막 먼지에 뒤덮인 손이 마주 잡힌다. 온도와 환경은 다르지만, 그 안에 담긴 각오와 열망은 똑같이 뜨거웠다.


“내가 잠수함 쪽 전력을 재정비할게. 넌 사막의 태양 설비를 최대치로 끌어와 줘.”

“좋아. 태양은 아직 살아 있고,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 빛을 남길 거야.”


설원의 칼바람 속에서, 카시스와 로사가 두 손을 맞잡았고,

사막의 불길 아래에선, 다리우스와 수리야가 뜨거운 결의를 다졌다.

그들은 서로를 본 적 없고, 말조차 나눈 적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FAWN이라는 이름의 희미한 별빛이 그들을 하나의 궤도로 이끌고 있었다.


그때였다.
FAWN 네트워크 상의 전 세계 노드에 동일한 메시지가 암호화된 음성 파일로 전송되었다. 오래전부터 반체제 연합을 이끌어온 한 인물—누구도 정체를 정확히 모르는, 그러나 모두가 신뢰하는 그 혹은 그녀—의 목소리였다.




"함께 나아가는 이들에게."

"앞으로를 염두에 두며, 설령 지금은 각각의 전선이 녹록지 않고, 폭풍과 교전으로 뒤덮여 있어도, 그 어떤 시련도 끝이 아닌 과정임을 잊지 말자.


수많은 지역이 서로 격려하고 지지하며, 하나씩 불씨를 이어 붙여 나간다면, 기적 같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지지와 격려를 보낸다. 사막에서도, 설원에서도, ‘희망’이라는 이름의 빛을 잃지 않는 모든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위험이 눈앞을 가로막아도 그대를 주저앉힐 수는 없다. 이는 비단 용기나 의지만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손을 맞잡고 함께 걷는 ‘연대’라는 가장 큰 힘 덕분이니까.


있는 그대로, 현실은 엄혹하고, 감춰진 위험은 늘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나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서로의 지식과 기술, 열정과 결의를 모은다면, 억압도, 독재도 결국 무너진다.


앞으로 이들의 여정은 더 복잡해지고, 더 거친 풍랑과 폭풍이 몰아닥칠 것이다. 그러나 설원에서 시작된 작은 불씨는 사막을 거쳐 대양까지 번져 가며, 전 지구를 연결하는 “사도단”의 봉화를 더 밝고 선명하게 비출 것이다.

그 불씨가 완전한 혁명의 불꽃으로 피어오를지, 아니면 또 다른 시련에 부딪혀 흔들릴지—이제 그들의 손에, 그리고 FAWN이 만든 네트워크 위에 달려 있다."


메시지는 밤하늘을 덮은 드론 감시망 사이로, 조용히 흘러들었다.
그 어떤 강철도, 어떤 위성도 그것을 막지 못했다.
전 세계의 분열된 전선은 그 짧은 순간, 숨결 하나로 이어진 듯 조용해졌다.
그리고 곧, 또 다른 지역에서 그 불씨를 받아 든 자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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