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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장: 거대한 동맹, 새로운 불씨

by 진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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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 앤젤레스 하층부는 늘 그랬듯, 억지로 꿰맨 도시의 상흔 위에 스모그와 삭은 비가 내려앉아 있었다. 거의 쓰러질 듯 버티고 있는 철골과 갈라진 콘크리트 틈새로, 바람 한 점 없이 무거운 공기가 스며들었다. 평소라면 지하 은신처들도 잠잠했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구식 단말기가 또 애를 먹이고 있다. 제이드(Jade)가 헐겁게 연결된 구식 단말기와 사투를 벌이는 동안, 스파크가 튀고 탁한 매연 냄새가 퍼져, 잔뜩 예민해진 분위기가 은신처 전체를 뒤덮었다.


노바 앤젤레스 하층의 단말기 복구

감전 직전까지 몰아치던 불꽃이 가라앉자, 단말기 화면 위에 희미한 붉은 불빛이 다시 들어왔다. 잔해 같은 패널을 고쳐 가며 애먹던 제이드의 미간이 살짝 풀렸다. 옆에서 숨죽이고 지켜보던 피터(Peter)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눈빛에는 여전히 긴장감이 떠나지 않았다.


“연결… 된 거겠지?”
피터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물으며,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FAWN(Faint Aurora World Net)이 전송한 메시지들이 조악한 해상도로 다시 깜박이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누구도 멀쩡한 통신 채널을 얻기 어려운 처지였기에, FAWN 단말기 하나 복구하는 것만으로도 천신만고가 필요했다.


“아라곤(Aragon) 함대…”


화면을 스크롤하던 제이드가 그 이름을 읽어 내려가는 순간,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과거 전투의 악몽이 생생하게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머릿속엔 살벌한 함대가 도시 상공을 뒤덮고, 불길 같은 포화를 쏟아붓던 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재생되었다. 피터도 말없이 굳은 표정을 지었다. 함부로 입을 열면, 그 지옥 같은 기억에 휘말릴 것만 같았다. FAWN 단말기에서 쏟아지는 보고서 몇 줄을 훑어본 뒤, 두 사람은 자연스레 시선을 마주쳤다.


“그렇다면 이제 ‘사도단(Apostles)’이 뭉쳐 봐야,” 제이드가 우물쭈물 말을 뱉었다.

“사이먼 벨이 가진 전력이나 아라곤 함대를 상대로는…” 피터가 이미 결론을 직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 정면충돌은 무리겠지.”


둘은 동시에 고개를 떨구었다. 거의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블루 펜타곤의 잔혹 소식에, 전 세계의 레지스탕스와 해커 조직들이 연대에 나섰지만, 일개 지하 세력들이 아무리 뭉쳐도 ‘한 나라의 정규군’을 상대로 싸우기엔 역부족이었다. 피터는 목에 낀 답답함을 억지로 삼키듯,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거대 동맹국, 혹은 국가 단위의 지원을 끌어들이지 않으면, 우린 또다시 허무하게 쓰러질 거야. 아라곤 함대만 상대해도 죽을 지경인데, 사이먼 벨이 블루 펜타곤까지 총동원하면… 이 도시는 끝장이거든.”


제이드가 대꾸 없이 단말기 속 마지막 메시지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그 메시지에는 X국(X-Nation)과의 협상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 적혀 있었다. 그것도 “오래전부터 사이먼 벨에게 국토를 빼앗기거나 경제 봉쇄로 고통받아 온 대규모 독립국”이라는 풍문까지 곁들여서. 어떤 이들은 그 국가를 “아틀라스 동맹(Atlas Alliance)” 혹은 “하이페리온(Hyperion)”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X국이 방어만으로는 한계라 판단, 반격을 도모한다는 말이었다.


“X국이라…”


제이드는 허름한 외투에 가려진 인공 팔목을 쓰다듬었다. 낡은 합성피부 틈새에서 비릿한 냄새가 아릿하게 퍼져 나왔다. 레플리칸트로 태어나 줄곧 ‘인간 이하’ 취급을 받으며 추적과 폭력에 시달려 온 그에게, ‘국가’나 ‘정부’ 같은 단어는 늘 낯설었다. 하지만 이런 절망적 상황을 뒤집으려면, 그 정도 규모의 ‘거대한 동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에데이 샤하르(Edei Shachar) 쪽 아이들도 그렇게 얘길 하더라. 직접 X국에 교섭단을 보내자고.”


피터가 넌지시 말을 꺼냈다. 에데이 샤하르—노바 앤젤레스 하층부에 남은 유일무이한 은신처이자, ‘마지막 희망의 씨앗’을 지키려는 혁명가들과 해커들이 모인 곳. 그곳에서도 “X국과 동맹해야만 한다”는 의견이 이미 힘을 얻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사도단이 아무리 커 봐야 ‘거대한 군사력’ 앞에 서 있긴 벅찰 테니까.


“X국도 우릴 의심하겠지. 어떤 전력이나 기술을 갖고 있는지 보여 주지 못하면, 말을 들어주지 않을 테고.”

제이드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깨진 금속판에 비친 자신의 몰골은 상처투성이였다. 전장과 도주를 반복하는 삶 속에서, 이제 와 ‘국가와 동맹’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게 스스로도 우스워 보였다. 그럼에도 별달리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그녀의 심장을 계속 두드렸다.


“결국 우린 레플리칸트 병력과 해킹 기술을 제안해야 할 거야. 프레이저 소장이 교정시설에서 키운 ‘전투형 레플리칸트’들이 어느 정도인지, 실전에서 증명해 보인다면, X국도 관심을 보이겠지.”


피터가 말을 잇자, 제이드는 문득 생각에 잠겼다. 그 음험한 배스토니 교정시설에서 무엇이 벌어지고 있을까. 왜인지 모르게, 그 중심엔 소장 프레이저(Frasier)와 미리암이 서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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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스토니 교정시설 — 소장 프레이저의 지휘 체계

늘 잿빛 구름이 내려앉은 하늘 아래, 배스토니 교정시설(Bastoni Penitentiary)은 철저한 감시와 막대한 예산으로 구축된 무거운 요새 같았다. 쇠사슬처럼 뻗은 철조망과 자동화 감시탑, 교도관들의 전자 충격 병기는, 이곳을 단순한 ‘감옥’이라 부르기엔 부족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이곳엔 또 다른 심오한 목적이 숨어 있었다.


소장 프레이저(Frasier)의 집무실

정문의 삼중 보안 구역과 감시 구역을 지나, 시설 중심부로 향하면 소장 프레이저의 집무실이 나온다. 겉보기에는 콘크리트 벽과 강화유리 책상만 덩그러니 놓인 간소한 공간이지만, 실은 기밀 장비첨단 기술로 꽉 차 있었다.


프레이저는 의자에 기댄 채로, 커다란 홀로그램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 화면엔 레플리칸트들의 신체 구조와 지능지표가 일일이 기록된 상태 보고서들이 줄지어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재소자 실험 기록”이지만, 사실상 이들 대부분이 프레이저가 직접 육성하는 ‘12 사도단’에 속할 정예 레플리칸트들이었다.


탁자 가장자리에는 몇 벌의 검푸른 전투복이 접혀 있었다. 각각 섬유·장갑·헬멧이 세트로 구성된 이 장비들은, 실험실에서 심혈을 기울여 증강한 최첨단 스펙을 자랑했다. 프레이저가 손끝으로 살짝 스치자, 전투복 일부가 반응하듯 섬광을 내뿜고, 곧 조용히 숨을 고르는 듯 진동을 멈췄다.


“Zero.”

그가 중저음으로 부르자, 인접한 보안문이 열리며 제로(Zero)가 들어섰다. 언뜻 봐선 스무 살 안팎의 앳된 청년처럼 보이지만, 뇌에는 고도의 해킹 모듈이 이식되어 있었다. 소장의 지시에 따라, 이 시설에서 유일하게 FAWN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인물이 바로 그였다.


“FAWN 단말기 보고서는?”
프레이저가 물었다. 그러자 제로는 왼쪽 눈에 장착된 반투명 디스플레이를 툭 건드렸다. 순간, 호면(護面) 위로 세계정세와 각종 동향 데이터가 빼곡히 펼쳐졌다.

제로가 낮은 톤으로 답변했다.

“노바 앤젤레스 하층부 사도단 조직이 X국(X-Nation)과 교섭을 모색 중이라고 합니다. 조만간 결실이 있을지도…”


프레이저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모니터 속 세계 지도를 응시했다. 거기에 하늘색 점으로 표시된 X국의 위치가 깜빡였다.


“좋군. 그들이 제대로 동맹을 맺으면, 우리가 기다려 온 12 사도단을 세상에 드러낼 기회가 생기겠지.”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눈동자 깊은 곳엔 커다란 혁신에 대한 예감이 어른거렸다. 사이먼 벨의 독재, 그리고 아라곤 함대에 맞설 새로운 변수가 탄생하려는 순간이 가까워졌다는 뜻이었을지도 모른다.




통솔하는 지휘관

사람들은 프레이저를 “군 통제와 교정시설 운영을 겸하는 행정가” 정도로 알았지만, 실상 그는 그 이상의 존재였다. 내부적으로 ‘12 사도단’이라 불리는 유령 부대와 소속 정예 레플리칸트 부대, 그리고 AI 해킹 전력을 편성·훈련시켰으며, 이들의 정신·육체·전투 기술 전반을 세세히 지도했다.


교정시설 중범죄자 구역과 철저히 차단된 밀실—그게 바로 소장 프레이저가 직접 만든 전투훈련장이었다. 이곳에서 마리안(Marian), 오리온(Orion), 그리고 소질 있는 레플리칸트들이 특수 전투복을 착용한 채 반복 훈련에 매진했다. 감정 통제, AI 인터페이스 접속, 실제 교전 시뮬레이션까지, 모든 커리큘럼은 프레이저가 직접 구상했다.


“무조건 강해지는 데만 집중하면 안 된다.”
그가 대원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다. “스스로를 제어하고, 주변 상황을 냉철히 읽고, 필요할 때만 정확히 전투력을 발휘해야 한다.” 프레이저는 레플리칸트 부대원들이 인간적인 마음과 고도의 능력을 함께 통제할 줄 알기를 바랐다.


모든 작업은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사이먼 벨과 블루 펜타곤 쪽도 이 시설의 상세 진행을 전부 파악하지 못했고, 교도관들도 그저 “상부 지시에 따른 재소자 교정 프로그램” 정도로 받아들였다. 프레이저는 언제나 신중한 미소와 함께 부하 직원들에게 그래야만 한다고 일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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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암(Miriam)의 잔잔한 파급

이런 거대한 밑그림 속에서, 또 한 명의 중요 인물이 있었다. 미리암(Miriam)—교정시설 ‘상담 및 교화 보조원’이라는 공적 신분을 가진 그녀는, 겉보기에 매우 조용하고 다정한 이였다.


‘심리 교화실’이라는 공간

배스토니 교정시설 곳곳에는 레플리칸트 재소자나 극심한 트라우마를 지닌 범죄자를 위한 ‘교화실’이 존재했다. 그곳은 형광등마저 고장 직전이라 뿌연 빛을 내고, 벽엔 오래된 물때가 스며 을씨년스러웠지만, 미리암이 머무르는 동안만큼은 묘하게 안온한 기운이 감돌았다.

• “교정시설이 원래 이렇게 잔혹한가요?”

• “레플리칸트라면 감정이 없다고 들었는데, 정말인가요?”

수많은 재소자와 교도관들이 찾은 질문에, 미리암은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서로 인간적으로 이해하도록 끌어갔다. 교화실을 나설 때쯤이면, 대개는 마음의 짐을 조금 덜어낸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건 소장 프레이저가 미리암에게 “사람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려라”라고 일종의 ‘특수 임무’를 부여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서서히 스며드는 영향력

며칠 뒤, 미리암의 교화실을 찾는 발걸음이 배가되었다. 특히 자신을 ‘인간 이하’라 여기며 분노에 시달리던 레플리칸트들이 큰 위안을 얻었고, 그들과 자주 충돌하던 교도관들조차 “이제 좀 더 이성을 유지해야겠다”라는 생각을 조금씩 갖게 됐다.


가령, 교도관 중에서도 악명이 높던 한 인물은 심리 교화 명목으로 미리암과 면담하다가, 그가 자행하던 가혹행위가 실은 자신을 더 망가뜨리는 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로 그 교도관은 레플리칸트 앞에서 큰소리를 치지 않았고, 동료들에게도 “이대로 폭력을 쓴다면 우리도 언젠가 망할 거야”라며 신중을 당부했다.


말하자면 “수면 아래서의 변화”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미리암은 물속에 돌을 던져 잔물결을 만들어 내듯, 이 시설의 편견과 폭력적인 공기를 조금씩 흔들어 놓았다.




소장과 미리암의 비공식 대화

가끔 소장 프레이저가 미리암을 불러 면담이라는 형식으로 내부 상황을 보고받기도 했다. 서류와 보고서를 끼고 있지만, 사실 그 자리는 비밀스러운 정보와 신뢰가 교환되는 장이었다.


“요즘 재소자들의 동향은 어떻소? 폭력 사태는 진정됐나?”
프레이저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묻자, 미리암이 차분히 대답했다.

“네. 서로 경계하는 눈빛은 여전하지만,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문에 더 관심이 가는 듯합니다. 사이먼 벨이 아라곤 함대를 움직인다는 얘기, 사도단이 X국과 동맹할지도 모른다는 얘기 등…. 덕분에 시설 내부의 폭주 같은 건 좀 줄었어요. 불안정하긴 해도, 겉으로는 조용하네요.”


프레이저는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미리암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 미세하게 이마 주름을 잡더니, 나직한 톤으로 말했다.

“좋군. 계속해 주시게. 설령 이곳이 언젠가 폭발하더라도, 그때까지는 안전하게 유지되어야 하니까.”


‘폭발’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미리암은 잠시 흔들리는 눈빛을 보였다. 하지만 곧 이해했다. 소장이 말하는 ‘폭발’은 단순히 시설 파괴가 아닌, 거대한 변혁의 은유일 수 있었다. 머잖아 이곳에서 벌어질 ‘새로운 질서’의 탄생을 예감하는 것이리라. 미리암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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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플리칸트들의 ‘특수 전투복’

사실 소장 프레이저는 이미 ‘12 사도단’을 위한 준비를 끝낸 상황이었다. 그는 이 부대를 통해 차세대 전투기술정신적 각성을 융합할 심산이었다.


전투복은 첨단 섬유로, 착용자의 근력을 크게 높이고 방어력을 증강한다.

• 헬멧에는 AI 인터페이스가 내장되어, 제로(Zero)의 해킹을 통해 전장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송받을 수 있다.

오리온(Orion)등 대원들은 이미 시험 착용을 마쳤고, 마리안(Marian)도 곧 “파일럿 슈트”를 입고 전투 훈련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 그리고 소장이 직접 고안한 특수 시뮬레이션(Aether Kinesis 기술 기반)을 통해, 이들은 가상 전투를 경험하며 정신적·육체적 한계를 시험받았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폭주나 혼수 사태가 잦다는 점이었다. 분노, 트라우마, 통제 불능 상태가 레플리칸트들의 약점으로 드러나기 쉬웠다. 그래서 훈련 후엔 반드시 미리암이 그들의 감정을 다독여 주어야 했다. 소장은 이런 이중 구조가 장기적으로 안정된 부대를 만든다고 믿었다. 그가 말하길, “자신의 힘을 제어하는 동시에 인간적인 마음까지 지켜내야 진짜 전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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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Zero)와 FAWN, 그리고 외부 소식

배스토니 교정시설 외부—이른바 사도단이 X국과 손을 잡으려 한다는 움직임을 소장 프레이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세부 사항을 가장 발 빠르게 파악하는 건, 다름 아닌 제로였다.


제로는 매일같이 보안 허점을 노려 FAWN 망에 접속하고, 전 세계 반체제 세력이나 교섭 관련 소식을 업데이트했다. 때론 소장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유럽·아시아 레지스탕스 동향은 어때? X국 대사와 만났다는 쪽은?”
프레이저가 은은하게 묻자, 제로는 스크린에 떠오른 보고서를 요약했다.
“결정된 건 없습니다. X국 측은 신중해서, ‘레플리칸트 전력’이 진짜로 쓸 만한지 증명하라는 반응이죠.”


“증명이라…”
소장이 낮은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시선을 12 사도단 전투복 쪽으로 옮겼다. 마치 시간을 재는 듯한 표정이었다.

‘만약 이들이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세상은 어떤 충격을 받을까.’


이미 머릿속에서는 아라곤 함대X국이든 상관없이, 12 사도단들과 작전이 공유되면 배스토니 레플리칸트들이 실전 투입되는 장면이 생생히 그려지는 듯했다. 프레이저는 곧 “어쩌면 조만간 실험적 출격이 필요하겠군” 하는 생각을 굳혔다. X국이든 노바 앤젤레스 하층 사도단이든, 이 시설이 만들어 낸 ‘힘’을 직접 봐야만 움직일 테니까.




이후를 향한 거대하고 느린 예감

그렇듯 교정시설 안팎에선 크고 작은 파동이 꿈틀거렸으나, 겉보기엔 묘하게 고요했다.

소장 프레이저는 마치 모든 흐름을 지켜보는 지휘자처럼, 스스로 구상한 ‘거대 계획’을 착실히 완성해 가고 있었다.

미리암은 잔잔한 숨결로 재소자와 교도관들의 마음밭을 일깨우고, 이 폐쇄적 공간에 ‘서로를 이해하려는’ 분위기를 서서히 깔고 있었다.

제로는 FAWN망을 통해 외부 상황을 실시간 공유하며, 12 사도단에게 필요한 모든 정보를 공급해 줬다.

그리고 한 사람, 마리안(Marian)은 전투복 착용을 목전에 두고 배스토니 지하 밀실에서 Aether Kinesis 훈련을 계속했다. 언제, 어떤 식으로 그녀가 각성의 문턱에 도달할지는 아무도 장담 못했다.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배스토니 교정시설이라는 무대 위에서 소장 프레이저가 모두를 이끌 ‘컨덕터(지휘자)’로 굳게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때때로 “폭발”과 “관용”을 함께 얘기했다. 이는 단순 교정시설 운영을 넘어 ‘새로운 질서’가 태어날 모태임을 스스로 확신한다는 의미였다.


어느덧 폭풍전야 같은 적막이 감돌았다. 레플리칸트들은 마음을 가라앉히며 다음 훈련을 준비하고, 미리암은 교화실에서 누군가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희미한 위로를 건넨다. 제로는 지하 통신실에서 파도처럼 밀려드는 메시지 흐름을 분석한다. 그리고 프레이저는 모든 것이 맞아떨어질 ‘그날’을 기다린다.


수많은 퍼즐 조각이 맞춰진 뒤, “12 사도단”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나설 때쯤이면, 배스토니 교정시설은 이미 ‘감옥’이 아니라 태풍의 눈이 되고 전투의 ‘기점’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떤 시작을 의미하는지, 현재론 알 길이 없다. 그러나 프레이저는 발 밑의 철근과 콘크리트가 나지막이 울릴 때마다 작게 미소 지었다.


‘언젠가 전투복을 두른 레플리칸트 부대가 이 지축을 울릴 순간이 오리라….’

그것은 마치 무대 뒤에서 막이 오르길 기다리는 예술가의 마음 같았다. 세상이 몰락하든, 새로운 시대가 열리든—이미 배스토니는 뚜렷한 숙명을 향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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