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별을 부수려는 그림자
별을 줍는 아이는,
누군가의 어둠을 밝힐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닫고 난 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머니 속 별 조각들은 조용해졌다.
언제나 들리던 맑은 음색도,
포근한 진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숨을 죽인 듯,
어딘가 조심스러워 보였다.
그날, 하늘은 낮게 내려앉아 있었고
짙은 구름 뒤로 햇살은 조금도 나오질 않았다.
길의 끝에서,
아이의 시야에 또 하나의 ‘아이’가 들어왔다.
그 아이는 어둠 속에 서 있었으며,
손에는 검게 물든 별 조각을 움켜쥐고 있었다.
“너, 왜 아직도 빛을 들고 다녀?”
낯선 아이의 목소리는
별을 줍는 아이와 비슷한 연령대로 들렸지만,
그 표정은 훨씬 차가웠고
눈빛은 날카롭기까지 했다.
“왜 아직도 별을 줍고 다녀?
그거 다 아무 의미 없다는 거, 모르겠어?”
별을 줍는 아이의 가슴이 뻐근해졌다.
그동안 별 조각들을 모으는 일이
스스로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여정이었기에,
그 말은 마치 자기 존재를 부정당하는 듯
아프게 들려왔다.
“나는… 잃어버린 이름을 찾기 위해,
별을 모으고 있어.”
그러나 검은 별의 아이는 비웃음처럼 입술을 비틀었다.
“이름?
그런 게 무슨 소용이겠어.
있더라도 언젠간 지워질 이름일 테고.
난 이미 별을 모았었지.
그러다 전부 부숴버렸어.
그러고 나서야 깨달았어.
모든 빛은 결국 어둠에게 삼켜진다는 걸.”
짙은 긴장감이 두 아이 사이에 감돌았다.
별을 줍는 아이는 가만히 주머니에 손을 넣어,
부드러운 빛을 머금은 별 조각 하나를 꺼내 보였다.
“이 조각은…
내가 누군가의 어둠 속에 놓아주었던 빛이야.
사라지지 않았어.
오히려 다시 살아났지.”
검은 별의 아이는 그 조각을 힐끗 바라보더니
낮게 속삭였다.
“그게… 가장 위험한 거야.
누군가가 다시 희망을 품는 순간,
고통도 깨어나.
차라리 잊고 묻고, 부숴버리는 게 나아.”
그러고는 손에 들린 검은 별 조각을 높이 치켜들었다.
“이건 내가 부쉈던 수많은 별의 파편이야.
다른 이들이 건넨 빛,
난 전부 어둠으로 되돌렸어.”
그 말에, 별을 줍는 아이는
고개를 떨구며 깊은 고민에 잠겼다.
문득 마음 한구석에서 의문이 피어올랐다.
‘정말로 빛이 모두에게 필요한 걸까?
혹시 어떤 사람에겐,
어둠이 더 편안한 안식처가 아닐까…?’
하지만 곧,
가슴 깊숙한 곳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둠을 선택한 존재라 해도
단 한순간이라도 빛을 그리워한 적이 있을 거야.
그건 누구도 완전히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이니까.”
별을 줍는 아이는
검은 별의 아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난 네게 빛을 강요할 생각 없어.
하지만 이건 남겨둘게.
만일 네가 언젠가
어둠 속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만큼 춥고 외롭다면…
이 조각이 작은 등불 하나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 말과 함께,
아이의 손에서 가장 따뜻하던 별 조각 하나가
검은 별의 아이 곁에 조용히 놓였다.
검은 별의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조각을 내려다보았다.
거부하는 것도,
선뜻 받아들이는 것도 아닌
오묘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그러나 별을 줍는 아이는 알 수 있었다.
그 침묵은 사라짐이나 무관심이 아닌,
아직 결론에 이르지 못한 ‘고민’의 표현이라는 것을.
그날 밤,
별을 줍는 아이는 다시 길을 떠났다.
하늘은 여전히 짙은 구름에 뒤덮여 있었고,
등불도 희미하게 흔들렸지만,
아이의 가슴속에는 새로운 결심이 돋아났다.
“빛이 모든 어둠을 이기지 못할지도 몰라.
그렇지만 내 역할은
그 어둠 곁에 작은 등불 하나를 놓고 가는 것일지도 모르지.
그걸로도, 분명 의미가 있을 거야.”
그리고 주머니 속 별 조각들은,
작게나마 고개를 끄덕이듯 진동하며
그 결심에 화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