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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별들이 지나는 길

9. 바닷가 마을의 노래

by 진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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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햇살이 바닷가 마을 골목마다 깊숙이 스며들어 있었다.
어부들은 부두에 늘어선 작업대에서 방금 잡아 온 생선을 손질하는데,
칼이 생선 살을 스치는 소리와 짭짤한 바닷바람이 어우러져
어디선가 전해져 오는 갈매기 울음과 함께 이색적인 풍경을 자아냈다.


언덕 아래 해변으로 통하는 길목에선,
마을 아주머니들이 널어놓은 빨래를 걷으며 서로 안부를 물었다.
“오늘따라 해가 세니 빨래가 금방 마르네요.”
“그러게요, 곧 저녁 장 볼 시간 되겠어요.”
분주함 속에서도 살갑게 엮여 있는 일상의 소리는,
바로 이 마을이 가진 여유이자 따뜻함이었다.


한편 아이들은 부두 옆 모래사장에서 뛰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갈매기가 낮게 날아오르면 “잡았다!” 하고 깔깔 웃으며 쫓아다니고,
온몸에 모래가 묻은 채로도 신나게 뛰어다니는 모습이
마을에 절로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 사이로, 은별이와 도윤이는 작은 광장 한구석 돌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뺨을 살짝 시원하게 식혀 주었고,
둘은 여유를 만끽하듯 서로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은별아, 오늘은 어때? 엄마 노래가 조금씩 더 떠오르니?”
도윤이가 조용히 속삭이듯 물었다.
마침 지나가던 할머니가 “어이, 도윤아!” 하고 반갑게 불러 인사하자,
도윤이는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 웃음에 은별이도 덩달아 미소가 번졌다.


은별이는 잠시 마을 주변을 둘러보았다.
낮의 분주한 기운이 살짝 가라앉기 시작하는 시간이었고,
상점들은 오후 장사를 준비하느라 바빠 보였다.
한편에선 장난감을 팔러 온 트럭이 도착했는지,
아이들이 “이거 사 주세요!” 하며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곁눈질로 부두를 바라보니, 고깃배들이 삼삼오오 항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음… 확실하진 않은데, 자장가 몇 소절이 머릿속에서 맴도는 느낌이야.”
은별이가 눈을 깜빡이며 말하자, 갈매기 몇 마리가 부둣가에서 푸드덕 날아오르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온전한 노래라고 하기엔 아직 부족하지만… 뭔가 조금씩 살아나는 기분이 들어.”


도윤이는 은별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빙긋 웃었다.
“괜찮아. 조각이 맞춰지는 과정이겠지.
오늘도 바닷바람 소리를 들어 보자. 어쩌면 또 다른 멜로디가 떠오를 수도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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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손수레를 끌고 지나가던 아주머니들이 반가운 목소리로 두 아이를 불렀다.
“도윤아, 은별아! 이따가 '수국 길'에 산책 가면 같이 가자꾸나.”
아이들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매번 느끼는 일이지만, 온 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살뜰히 챙겨 주는 이 분위기는
맑은 날씨만큼이나 은별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한창 북적이던 거리의 소음이 서서히 잦아들 즈음,
두 아이는 다시 해변가로 나와 해 질 녘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분홍빛과 주황빛이 뒤섞인 노을로 물들어 있었고,
해변 가까이선 기름진 물안개가 부드럽게 깔리기 시작했다.
조금씩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초승달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은별이는 도윤이의 손을 살짝 잡았다.
달빛이 아직 작고 가느다란 곡선을 그리며,
어둑해지는 바닷물 위를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낮의 분주함을 뒤로하고,
“또 다른 이야기가 이제 막 시작되려나 보다” 하는 예감이,
모래사장 위에서 파도처럼 조용히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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