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새로운 삶과 사랑의 계명
그리스도인의 ‘새 삶’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세례로 시작되는 새로운 존재의 의미를 깨닫는다.
예수님의 새 계명과 복음의 법이 지닌 정신을 파악하여, 구약 율법과의 연속성과 완성을 인식한다.
성령의 은총으로 가능해진 자유로운 순종과 양심의 역할을 깨닫고, 이를 도덕생활에 적용한다.
사랑을 핵심으로 하는 복음적 가치관을 일상생활의 규범으로 받아들인다.
예비 신자나 신자 재교육에서 핵심적으로 다루어지는 주제 중 하나는 바로 “옛 삶을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삶을 사는 것”입니다. 새로운 삶에는 새로운 규범, 곧 복음이 제시하는 법칙과 가치관이 뒤따릅니다.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세속적 욕망이나 옛 율법의 겉모습에 지배되지 않고, 성령 안에서 자유롭게 선을 행하는 길로 부름받았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의 도덕 생활을 이끄는 핵심 원리들과 규범을 살펴봅니다. 특히 예수님의 산상설교와 “새 계명”을 통해 드러난 사랑의 법을 중심으로, 교회 전통이 가르쳐 온 도덕적 토대를 함께 정리해 봅니다. 나아가 ‘정화’의 단계에서 옛 죄의 습관을 벗고, ‘조명’의 단계에서 진리의 빛 안에 양심을 따르며, 궁극적으로 ‘일치’에 이르는 성화의 길을 함께 제시하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모두를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십니다. 세례성사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함으로써 옛 인간은 죽고 새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체험을 합니다(로마 6,4 참조). 바오로 사도도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2코린 5,17)라며, 이것이 단순한 도덕적 개선이 아니라 근본 신분의 변화라고 선언합니다. 곧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하느님의 자녀로 부름받았다는 뜻이지요.
정화의 과정
이러한 새 삶으로의 부르심은 단숨에 이뤄지지 않습니다. 오랜 죄의 습관과 자아중심적 성향을 벗어나는 정화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끊임없는 회개와 기도, 그리고 성령의 도움을 구하는 태도입니다. 인간적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목적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세상 한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는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는 전적으로 성령의 도우심에 달려 있으므로, 우리 역시 날마다 그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13,34)
이는 본래 구약 율법의 핵심인 ‘이웃 사랑’(레위 19,18 참조)과 닿아 있지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이라는 구절에서 새로운 깊이가 더해집니다. 곧, 예수님이 보여 주신 자기희생적 사랑(아가페)을 본받으라는 뜻이지요.
이렇게 새 계명에서 요구되는 사랑의 법이야말로 복음 윤리의 정수이며, 그리스도인의 모든 규범은 여기서 출발합니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도, 구약 율법을 폐지하지 않고 더 높은 차원으로 완성하셨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옛 계명을 넘어 원수를 사랑하라고 요구하셨고,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넘어 마음의 정결까지 바라셨습니다(마태 5장 참조).
교회는 이를 “복음의 율법”(새 법)이라 부르며, 이는 우리 마음에 성령께서 직접 새겨 주시는 사랑의 법이라고 이해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겉으로 규율만 지키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내적 동기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 선행을 지향하게 됩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사랑은 율법의 완성”(로마 13,10)이라고 선언합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규범은 사랑이며,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의 골자가 바로 그것입니다.
옛 율법(10계명)이 ‘돌판에 기록’된 것이라면, 새 법은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판에 기록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믿음과 사랑을 불어넣으시고, 자유롭게 선을 택하도록 이끄십니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양심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양심은 인간의 가장 은밀한 중심이며, 그곳에서 하느님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고 가르칩니다[Gaudium et Spes, 16].
양심은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내면의 나침반이지만,
잘못 형성되거나 무시당할 수도 있기에, 교회 가르침과 말씀, 기도와 성사로 지속적으로 양심을 ‘조명’해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 바로 세워진 양심은 그리스도인이 구체적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식별하도록 도와줍니다.
새 계명과 복음의 율법은 성령의 은총으로 우리 마음속에서 작동하며, 그 지향은 철저히 ‘사랑’에 기반을 둡니다. 이는 인간적인 강제나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의 동기에서 우러나오는 자유롭고 기쁜 순종이라는 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산상설교 묵상: 마태복음 5~7장에 담긴 예수님의 산상설교를 조용히 읽어 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 등에 대해, 실제로 내게 불가능하게 느껴지더라도 성령의 은총을 청해 봅시다. 그분의 힘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시도’를 구체적으로 적어봅니다.
새 계명 실천하기: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이라는 부분에 주목하면서, 예수님이 직접 보여 주신 구체적 사랑(발 씻김, 죄인과 식사, 십자가 희생 등)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일상에서 한 가지라도 실행 가능한 사랑의 행동을 결심해 봅시다.
양심 성찰: 하루를 마감하면서, 내 마음속 ‘양심의 소리’를 잘 들었는지, 혹은 무시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교회 가르침과 나의 행동 사이에 괴리가 있었다면, 서둘러 고쳐 갈 수 있도록 성령의 도움을 다시 간청해 봅니다.
세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존재가 되어, 옛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유롭게 살아갈 부르심을 받는다.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서로 사랑하라)은 복음 윤리의 정점이며, 산상설교로 대표되는 복음의 율법은 옛 율법을 사랑으로 완성한다.
성령은 우리 마음에 사랑의 법을 기록하시고, 양심을 통해 구체적 상황에서 옳은 것을 택하도록 이끄신다. 덕분에 그리스도인은 자발적이고 기쁨에 찬 순종으로 선을 행하게 된다.
결국 새로운 삶의 규범은 사랑의 규범이며, 이 사랑이 정화와 조명의 여정을 거쳐 우리를 하느님과의 일치로 이끈다.
새 계명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서로 사랑하라”(요한 13,34) 명령. 특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이라는 구절에서, 예수님의 자기희생과 자비의 사랑이 본보기가 된다.
복음의 율법(새 법)
옛 모세 율법을 폐지한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완성한 율법. 성령의 힘으로 우리의 마음 안에 새겨지는 법이며, 외적인 규칙보다 내적 동기에 근거한 자유로운 선행을 지향한다.
성령의 은총
그리스도인이 선행과 거룩함을 실천하게 해 주는 하느님의 내적 도움. 성령은 우리의 지성과 의지를 밝히고 움직여 진리와 사랑을 실천하도록 이끌어 주신다.
양심
인간 내면에 새겨진 도덕법으로, 선과 악을 분별하는 내적 소리. 성령의 조명과 교회의 가르침으로 잘 형성될 때, 더욱 진리의 길로 우리를 안내해 준다.
문1. ‘새로운 삶’이라는 개념은 보편적 인간 본성과 어떻게 연결될까요?
답: 많은 학문적 전통은 인간을 ‘변화 가능성’을 지닌 존재로 봅니다. 그리스도교의 새 삶은 그 변화 가능성을 ‘하느님 은총에 힘입은 근본적 갱신’으로 해석합니다.
문2. 복음의 ‘사랑의 법’을 윤리적 절대 명령으로 볼 수 있을까요?
답: 칸트의 정언명령처럼 보편 윤리를 찾으려는 시도가 있지만, 신학은 이를 ‘성령 안에서 실현되는 인격적 관계’로 이해합니다. 곧 단순한 보편 규범 이상으로, 초월적 차원을 가진 사랑의 명령입니다.
문3. 인간의 자유와 ‘새 계명’이 충돌할 가능성은 없나요?
답: 자유를 “원하는 대로 하는 것”으로만 본다면 충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안에서 자유는 ‘선으로 열리는 자유’이기에, 사랑의 법에 순종할 때 오히려 더 참된 자유를 맛본다고 봅니다.
문4. ‘옛 율법’과 ‘새 율법’의 관계를 철학적으로 해석하면?
답: ‘옛 율법’은 외적 규범이라면 ‘새 율법’은 내적 동기와 사랑에 초점이 있습니다. 윤리학적으로는 의무 윤리에서 덕 윤리(virtue ethics)로 진전되는 흐름에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문5. ‘정화-조명-일치’ 단계를 철학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나요?
답: 플라톤주의 전통은 영혼이 감각계(정화)에서 이데아(진리) 인식(조명)으로 나아간 뒤 궁극적 선(일치)과 만나게 된다고 봅니다. 신학은 이를 인격적 은총 개념으로 더욱 심화해 적용합니다.
문6. 사랑이 규범의 근본이라면, 법이나 제도는 왜 필요할까요?
답: 인간의 약함과 오류 가능성 때문에 최소한의 외적 질서로서 법·제도가 여전히 필요합니다. 다만 그리스도교 윤리는 이 모든 제도를 ‘사랑의 가치’로 완성할 것을 요구합니다.
문7. ‘성령의 은총’ 없이는 도덕적 선행이 불가능한가요?
답: 자연적 차원에서도 어느 정도 선행은 가능하지만, 신앙은 ‘하느님 은총이 있어야 보다 온전히 완성된 선행에 도달한다’고 봅니다. 철학적 시각으로는 초월적 도움(은총)이 선을 더 깊고 지속적으로 수행하게 만든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8. ‘새 계명’을 보편적 윤리로 설명할 수 있나요?
답: 사랑의 계명은 문화권을 초월해 공감대를 지니는 도덕 원리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리스도교 신앙은 예수님의 희생과 부활이라는 역사적·종교적 사건과 결합해, 그 의미가 더욱 확장됩니다.
문9. 양심을 절대화하면 주관적 혼란이 생기지 않을까요?
답: 맞습니다. 개인 양심만 강조하면 상대주의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교회는 ‘계시와 전통’ 안에서 올바른 양심 형성을 강조해, 주관과 객관을 조화시키도록 가르칩니다.
문10. 결국 ‘새로운 삶의 규범들’은 어떤 의의를 지니나요?
답: 인간 존엄과 자유, 보편적 사랑을 중시하는 고귀한 윤리 이상을 제시합니다. 이는 모든 이가 선과 행복을 함께 추구하는 길을 열어 주며, 인류 보편 윤리와도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11. “새 삶”을 살기 위해 과거 습관을 버리는 것은 심리적으로 얼마나 어려울까요?
답: 습관은 반복된 행동패턴이므로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적 동기’(의지)와 ‘영적 동력’(은총)이 결합되면,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회심 체험’이 그런 예입니다.
문12. 복음의 ‘사랑의 법’을 실천하기 어려운 이유는 뭘까요?
답: 사람 안에 자기중심적 욕구, 상처, 불신 등이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적으로도 ‘무조건적 사랑’은 쉽지 않지만, 긍정적 관계 경험과 영적 기반이 더해지면 점차 확장될 수 있습니다.
문13. “새 계명을 지키면 기쁨이 충만하다”는 말이 심리학적으로는 어떤 의미일까요?
답: 사랑을 주고받는 행동이 뇌의 보상회로를 활성화하고, 삶의 만족도와 의미감을 고취시킵니다. 여러 사회심리학 연구도 ‘이타적 행동’이 개인 행복에 크게 기여함을 보여 줍니다.
문14. 세례로 시작되는 정체성 변화가 실제 성격 변화에도 작용할까요?
답: 장기 연구에서 ‘종교적∙영적 회심’을 체험한 경우 이전과 다른 성격적∙행동적 변화를 보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새 정체성의식이 자존감과 도덕적 책임감을 높여 주기 때문입니다.
문15. “양심이 말한다”는 내적 음성을 정확히 분별하는 심리학적 방법은?
답: 자기성찰, 일기쓰기, 묵상, 상담 등이 도움이 됩니다. 감정적 충동이 아니라 차분한 성찰 속에서 내면 소리를 분석하고, 종교∙도덕적 기준과 대조해 보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문16. 사랑을 실천하려다 ‘자기희생’만 커지고 소진될 때, 어떻게 균형 잡을까요?
답: 심리학은 ‘건강한 자기 돌봄’도 강조합니다. 자신에 대한 긍정적 배려가 있어야 지치지 않고 사랑을 지속할 수 있지요. 그리스도교에서도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처럼, 자기 자신도 소중함을 인정합니다.
문17. 복음의 법을 따르려는 과정에서 드는 ‘내적 갈등’은 정상인가요?
답: 당연합니다. 완전히 새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심리적 저항이 따릅니다. 이를 잘 극복하는 과정이 곧 ‘성장’이며, 영적 성숙도 함께 이뤄집니다.
문18. 성령의 은총을 체험했어도, 심리적으로 옛 습관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나요?
답: 가능합니다. 인간은 연약하기에 회심 뒤에도 유혹이나 슬럼프를 겪곤 합니다. 그래서 꾸준한 기도, 공동체 지지, 자기 관찰이 요구됩니다. 은총을 상실했다고 단정하기보다, 재도약할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문19.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데도 우울∙불안을 겪는 건 왜일까요?
답: 신앙이 심리적 어려움을 줄여 주는 자원이 되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정신적 고통이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복합적 존재이므로, 전문 상담이나 치료가 병행되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문20. ‘새로운 삶의 규범들’을 심리적으로 잘 정착시키려면 어떤 태도가 중요할까요?
답: 첫째, 성령에 대한 열린 마음(영적 차원). 둘째,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성찰하고 수용하는 태도(심리학적 차원). 셋째, 주변 공동체의 지지와 연대(사회적 차원)가 균형 있게 작용할 때 규범의 내면화가 원활해집니다.
복음의 법과 새 계명, 그리고 성령의 은총과 양심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 우리의 삶에서 더욱 구체적이고 풍성한 열매를 맺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