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아버지!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이 기쁜 날, 우리는 우리 안에 살아 숨 쉬며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신비를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우리에게 성령께서 어떤 분이시고,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시는지 분명히 보여줍니다.
1. 다양한 은사 안의 일치 (사도행전, 코린토 1서 강조)
예화: 어느 오케스트라의 이야기입니다. 플루트는 맑고 청아한 소리를 내고, 트럼펫은 웅장하고 힘찬 소리를 내며, 바이올린은 섬세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합니다. 각 악기들은 저마다 다른 소리와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모든 악기가 똑같은 소리를 낸다면 그 오케스트라는 결코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낼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휘자가 이 모든 다른 악기들을 조화롭게 이끌어갈 때, 그들은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내고 청중에게 감동을 선사합니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다른 은사와 재능을 주시지만, 그 모든 다름 속에서 우리를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주시고, 하느님의 뜻이라는 아름다운 교향곡을 연주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차이가 결코 분열의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풍요로움을 더하는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2. 마음의 변화와 소통 (로마서, 요한복음 강조)
예화: 아주 차갑고 메마른 땅이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 땅은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고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따뜻한 봄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비가 내리자 땅은 촉촉하게 적셔지고, 그 안에서 잠자고 있던 씨앗들이 깨어나 싹을 틔웁니다. 이내 땅은 푸른 생명으로 가득 차고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납니다.
성령께서는 바로 이 '따뜻한 봄비'와 같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죄와 이기심으로 메마르고 차가워질 때,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임하시어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주시고, 우리의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변화시키십니다. 그 결과 우리는 다시금 하느님의 자녀로서 사랑과 용서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며, 다른 사람들과 진정으로 소통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생명력을 얻게 됩니다.
3. “Daddy...” – 사랑이 언어가 되는 순간
미국의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오래도록 아이를 기다리던 이 부부는 마침내 국제 입양을 통해 한 여아를 가족으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불안하고 어두운 눈빛을 지닌 채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던 그 아이는,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집에서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장난감을 줄 때도, 함께 놀자 해도… 아이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말뿐 아니라, 마음의 벽도 높고 단단했습니다. 부모는 속상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밤 아이의 침대 옆에 앉아 책을 읽어주고, 자장가를 불러주고, 아이의 작은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괜찮아. 너는 이제 우리 가족이야.” 그렇게 수많은 밤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비가 내리던 어두운 밤, 아이는 평소처럼 어머니 품에서 잠들었고, 아버지는 조용히 이불을 덮어주며 속삭였습니다.
“사랑해. 우리 딸.”
그때, 아주 작은 소리로, 아이가 중얼거렸습니다.
“Daddy…”
단 한 마디. 영어도 서툰 아이였지만, 그 한 마디에 그동안 마음속에 숨어 있던 불안과 두려움이 풀렸습니다.
아버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한 마디는 단순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 말은 언어가 아니라, 신뢰였고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 가정 안에서 한 생명이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아 주시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는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칩니다.” (로마 8,15)
그렇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하십니다. 입양된 아이가 ‘Daddy’라 부른 그 순간처럼, 우리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는 그 순간, 우리는 진정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 안의 언어를 바꾸시고, 관계를 바꾸시며,
두려움 속에 숨어 있는 우리 존재 전체를 하느님의 품 안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도 두려워하지 말고, 사랑으로 이렇게 기도합시다.
“오소서, 성령님. 제 마음을 열고, 아버지를 부르게 하소서. 그리고 내 이웃의 언어도 들을 수 있는 귀를 제게 주십시오.” 아멘.
성령, 온 세상과 우리 마음을 채우시는 분
<대영광송>은 “주님의 영은 온 세상을 채우시고 만물을 살리시며 온갖 말을 다 아시네”라고 노래합니다. 이는 성령께서 단순히 우리 개인에게만 임하시는 분이 아니라, 온 우주 만물에 생명을 불어넣고 모든 것을 포괄하시는 분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생명력과 아름다움, 그리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소통과 이해는 성령의 현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또한 로마서의 말씀처럼,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주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이 가득하다는 것은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 변화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 사랑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됩니다.
오순절, 성령의 놀라운 강림
사도행전은 오순절에 일어난 성령 강림 사건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제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을 때,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와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적적인 사건은 예루살렘에 모여 있던 각 나라의 사람들이 제자들의 말을 자기 지방 말로 알아듣게 하여, 언어의 장벽을 넘어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을 이해하게 했습니다.
이는 성령께서 분열된 인류를 하나로 모으시는 분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바벨탑 사건으로 인해 흩어졌던 인간의 언어와 소통의 단절이 성령 강림으로 인해 다시 연결되고, 모든 민족이 하느님 안에서 하나 될 수 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다양한 은사와 직분, 그러나 한 성령 안에서
코린토 1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다양한 은사와 직분, 그리고 활동이 있지만, 모두 같은 성령, 같은 주님, 같은 하느님에게서 비롯된다고 강조합니다. 교회 안에는 각기 다른 재능과 역할, 그리고 다양한 봉사가 있지만, 이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공동선을 위하여 주어지는 성령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지체로서 한 몸을 이룹니다. 마치 몸의 지체들이 각기 다른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한 몸을 이루듯이, 우리 모두는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이는 교회 공동체의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이루는 성령의 역할을 잘 보여줍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서로 다른 재능을 주시지만, 그 재능을 통해 우리가 서로를 섬기고 공동체를 세워나가도록 이끄십니다.
성령의 인도, 하느님의 자녀됨
로마서의 또 다른 말씀은 성령께서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는 영임을 밝힙니다. 우리는 성령의 힘으로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우리가 더 이상 종살이의 두려움에 갇혀 있지 않고,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몸소 증언해 주시며, 우리를 하느님의 상속자,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가 되게 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희망을 줍니다. 우리는 육적인 욕망에 따라 살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 우리를 보내시고 가르치시는 분
요한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시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라고 하십니다. 그러고 나서 숨을 불어넣으시며 “성령을 받아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로써 제자들은 죄를 용서하고 화해의 사도로 파견되는 권한을 부여받습니다.
또한 다른 요한복음 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라고 약속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치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시며,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깨달아 실천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십니다.
우리의 삶에 성령을 청하며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성령 강림 대축일을 지내면서 우리 안에 살아 숨 쉬는 성령의 현존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사랑을 부어주시고, 분열을 넘어 일치를 이루게 하시며,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부속가의 기도처럼, 우리도 간절히 성령을 청해야 합니다. “오소서 성령님. 주님의 빛 그 빛살을 하늘에서 내리소서.” 우리 마음 깊은 곳을 가득 채우시고, 우리의 허물을 씻어주시며, 메마른 땅에 물을 주고 병든 것을 고쳐주시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일으키시는 놀라운 변화를 기뻐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더욱 충실한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갈 것을 다짐합시다. 성령께서 우리 각자의 삶과 교회 공동체에 늘 함께하시어, 우리가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