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공동체, '페리코레시스'의 신비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이 날은 우리 신앙의 가장 근원적이고도 신비로운 진리, 즉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성부, 성자, 성령 세 위격으로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우리가 매일 습관처럼 드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라는 기도는 우리의 신앙생활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하는 가장 기본적인 고백이지요. 하지만 이 익숙함 속에서 우리는 종종 이 깊은 신비를 잊어버리곤 합니다. 오늘은 이 삼위일체 하느님의 현존 방식과 친교 방식에 대해 좀 더 깊이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지만, 예술 작품을 통해서도 그 신비를 묵상할 수 있습니다. 15세기 러시아의 위대한 이콘 화가인 **안드레이 루블료프(Andrey Rublyov)의 대표작 <삼위일체>(1411년 작)**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아름다운 친교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탁월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이콘은 구약성경 창세기 18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아래서 세 명의 천사를 대접하는 장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루블료프는 이 세 천사를 성부, 성자, 성령으로 해석하여 그려냈습니다.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세 천사가 식탁에 둘러앉아 고요하면서도 깊은 친교를 나누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색채 (Color)
루블료프는 이콘에서 색채의 상징성을 극대화했습니다. 전체적으로 밝고 조화로운 색조가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푸른색: 세 위격의 옷에서 공통적으로 푸른색이 발견됩니다. 푸른색은 천상, 신성, 초월, 신비를 상징합니다. 이는 세 위격 모두가 신성한 존재임을 드러냅니다.
붉은색: 가운데 성자(예수님)는 푸른 망토 안에 붉은 옷을 입고 있습니다. 붉은색은 인성, 희생, 사랑, 피를 상징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시어 희생하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셨음을 나타냅니다.
녹색: 오른쪽에 있는 성령의 옷에는 녹색이 두드러집니다. 녹색은 생명, 소생, 땅, 풍요로움을 상징하며, 성령께서 세상을 소생시키고 모든 것을 채우시는 분임을 암시합니다.
황금색/노란색: 배경과 천사들의 후광, 그리고 일부 옷의 색조에서 황금색과 노란색이 많이 사용됩니다. 이는 하느님의 영광, 신성한 빛, 영원함을 상징합니다. 특히 세 위격 간에 오가는 사랑과 일치를 밝고 따뜻한 느낌으로 표현합니다.
2. 구도와 모양 (Composition and Form)
루블료프의 <삼위일체>는 탁월한 기하학적 구도와 상징적인 형태로 심오한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원형 구도: 세 천사는 식탁을 중심으로 원형을 이루고 앉아 있습니다. 이 원형은 하느님의 단일성, 영원성, 완전함, 그리고 삼위일체 하느님 안의 무한한 사랑과 친교를 상징합니다. 모든 시선과 몸짓이 서로를 향하며 이 원 안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룹니다. 이 원형 구도는 안정감과 고요함을 주며, 복잡함 없이 세 위격의 친밀한 대화를 느끼게 합니다.
역삼각형과 성배 형상: 세 천사의 무릎과 팔이 이루는 선을 연결하면 커다란 잔(성배)의 형상을 띠고 있습니다. 이 잔은 희생의 잔, 즉 그리스도의 수난과 성찬례를 암시합니다. 이는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기꺼이 희생을 선택하시고, 그 희생이 친교의 중심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성자가 이 잔의 한가운데에 위치하여 당신의 사명을 암시하고, 성부는 축복하는 손짓으로 성자를 격려하며, 성령은 식탁 아래 열린 사각형(세상을 상징)을 가리키며 이 거룩한 희생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상징적 배경: 각 천사의 머리 위에는 특정 상징물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성부(왼쪽) 위에는 집: 이는 하느님 아버지의 집, 곧 우리의 영원한 고향이자 모든 존재의 근원이신 성부의 창조 사역을 나타냅니다. 성자(가운데) 위에는 나무: 이는 생명나무, 십자가, 그리고 갈보리 언덕을 상징합니다. 성자께서 십자가 희생을 통해 생명을 주셨음을 보여줍니다. 성령(오른쪽) 위에는 산: 이는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 영적인 등정, 그리고 영적인 생활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이끄심으로 우리가 하느님께 나아감을 상징합니다.
열린 식탁: 이 그림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식탁의 한쪽이 비어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그림 속 공간을 넘어, 우리를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의 친교 안으로 초대하는 열린 자리입니다. 이 비어있는 공간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식탁에 함께 앉아 그분들의 사랑을 나누고, 그분들의 구원 계획에 동참하도록 부름 받았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루블료프의 <삼위일체>는 단순한 종교화를 넘어, 삼위일체 하느님의 본질과 그분들의 역동적인 사랑의 친교, 그리고 그 친교 안으로 초대받은 인류의 모습을 깊이 있게 담아낸 걸작입니다. 이 그림은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온전하고 아름다운지, 그리고 우리가 그 사랑 안에서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는지를 '소리 없는 외침'으로 전해줍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결코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완벽한 사랑의 공동체이십니다. 초기 교부들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서로 '상호-침투(浸透)', '상호-훈습(熏習)', 즉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 하시는 분이라 설명했습니다. 이 심오한 말씀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서로 **'한-마음', '한-몸', '한-뜻'**의 관계로서, 그 어떤 것으로도 떼어낼 수 없는 **'사랑의 관계', "상호 불가분의 관계"**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서로 안에 온전히 존재하시며, 서로를 통해 사랑을 주고받으십니다. 이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하고 풍요로운 친교의 방식입니다.
물론,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를 인간의 언어로 온전히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때로는 이해를 돕기 위해 양태론적(1인격, 3모습)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부께서는 모든 것의 시작이며 근원이십니다. 마치 거대한 나무의 뿌리처럼,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시지요. 성자께서는 그 뿌리에서 자라난 줄기와 열매처럼, 인간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구세주이십니다. 그분은 성부의 뜻을 온전히 드러내시고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보이지 않지만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는 공기와 햇살처럼, '나와 우리' 안에서 살아계시며 우리를 진리로 이끌고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주시는 인격적 현존이십니다.
양태론이나 역할론으로만 한정 지어 설명할 수 없는 하느님의 알 수 없는 현존 방식을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흔히 물이나 불의 비유를 듭니다.
물의 비유를 들어볼까요? 하나의 물방울이 어떻게 여러 형태로 존재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물은 흐르는 액체로 존재하기도 하고, 단단한 얼음이라는 고체로 존재하기도 하며, 눈에 보이지 않지만 따뜻함을 주는 수증기라는 기체로 존재하기도 합니다. 이 세 가지는 분명히 다른 형태를 지니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그 본질은 모두 H₂O, 즉 '물'이라는 하나입니다. 하느님께서도 이와 같이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으로 우리에게 현존하시지만, 그 본질은 한 분이신 하느님이심을 이 비유는 깨닫게 해 줍니다. 흐르는 물처럼 생명을 주시고, 단단한 얼음처럼 변치 않는 진리를 보여주시며, 따뜻한 수증기처럼 우리를 위로하시고 감싸 안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는 체험할 수 있습니다.
불의 비유 또한 삼위일체의 신비를 설명하는 데 유용합니다. 하나의 불꽃에는 불꽃 자체,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빛, 그리고 우리가 느끼는 열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불꽃이 없으면 빛도 열도 있을 수 없고, 빛과 열은 불꽃에서 분리될 수 없습니다. 이 셋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모두 '불'이라는 하나의 실체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도 이처럼 각기 다른 위격이시지만,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한 분이신 하느님으로서 존재하시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삼위일체 하느님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현존이고 친교이고 만남입니다. 그분들 사이의 사랑은 너무나 깊고 완전하여, 때로는 이 세상의 삼자 관계에서 '암호'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언어로 된 암호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하느님의 사랑은 결코 우리에게 감추어진 암호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온전히 드러났고,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부어졌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그 사랑 안에 뛰어들어 체험하고, 그 사랑을 우리 삶 속에서 실천함으로써 삼위일체 하느님과 더욱 깊이 친교를 이룰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하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라는 기도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깊이 묵상해 봅시다. 이 기도는 단순한 문구가 아니라,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며, 우리 안에 늘 함께하시는 사랑의 하느님께 드리는 우리의 가장 진실된 고백입니다.
우리가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기쁨 속에서도 언제나 삼위일체 하느님을 기억하고, 그분들의 무한한 사랑 안에 머무르며, 그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합시다. 우리 모두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충만한 은총과 평화를 누리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