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아니라 존재로 드리는 기도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의 본질을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암송하는 ‘주님의 기도’는, 단순한 문장의 나열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을 뒤흔드는 새로운 길, 존재 전체를 하느님께 향하게 하는 방향 전환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하느님은 말의 양이 아니라 마음의 진실함을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일치되어 가는 여정을 걷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기도의 시작은 ‘관계’입니다
기도는 요청이 아니라 관계의 고백으로 시작됩니다.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라는 첫마디는, 우리 존재의 근원이자 목적이신 하느님을 향한 신뢰의 선언입니다.
이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고아가 아닙니다. 우리가 함께 “저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하느님 안에서 형제자매로 연결된 존재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내 문제를 하소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 전체를 하느님과의 친교 안에 두는 일입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 기도는 세상의 방향을 묻는 질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먼저 하느님 나라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청하는 이 기도는, 단지 내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청원이 아니라, 나 자신이 하느님의 뜻 안에 순응하고자 하는 선택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임하길 원한다면, 나는 그 나라의 시민으로서 살아야 합니다. 내 말, 내 행동, 내 용서가 그 나라의 문화를 드러내야 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결국 하느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겠다는 고백입니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 하루하루의 은총을 구하는 믿음
이 구절은 단지 ‘먹을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일용할 양식’이란 하루를 살아갈 힘, 곧 말씀과 성체, 은총, 공동체, 평화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몸은 너희의 양식이다” 하셨을 때, 우리는 이 기도를 성체성사 안에서 완성하게 됩니다.
복잡한 걱정을 미리 당겨오지 말고, 오늘 하루에 집중합시다. 하루하루를 하느님께 의탁하는 믿음, 그것이 이 기도 안에 담긴 깊은 신앙입니다.
“용서하소서…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 기도는 사랑의 훈련입니다
가장 도전적인 구절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면서, 동시에 나도 이웃을 용서하겠다고 고백하는 것.
여기서 기도는 더 이상 독백이 아니라 결단입니다.
예수님은 덧붙이십니다.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용서의 은총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은총은 내 안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흘러가야 합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막힌 통로를 통해 흐르지 않습니다. 내가 이웃을 용서할 때, 내 마음의 문도 열리고, 하느님의 용서가 나에게로 흘러옵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 기도는 싸움이자 피난처입니다
기도는 고요하지만, 동시에 영적 전쟁터이기도 합니다. 유혹과 악은 늘 내 마음을 흔들지만, 기도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빛을 바라보고 그분의 힘을 청합니다.
이 기도는 나를 ‘의로운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약한 내가 하느님의 힘에 붙들려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외침입니다.
기도는 말이 아니라 삶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암송하는 기도가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올릴 때마다, 우리는
다시 하느님 앞에 자신을 봉헌합니다.
다시 하느님의 나라를 향해 방향을 잡습니다.
다시 오늘 하루를 은총으로 받아들이며,
다시 이웃을 용서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다시 악에서 우리를 건져주실 하느님을 붙잡습니다.
그러니 이 기도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하루하루 우리 존재를 하느님 안에 놓는 행위입니다.
오늘도 이 기도를 마음 깊이 드립시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 길 위에, 우리는 다시 서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