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이 나쁜 연인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마태 18,21.)
구약성경에서는 용서와 관련하여 세 개 단어가 쓰였습니다.
1. "나사(נָשָׂא)는 옮기다, 제거하다, 치우다",
2. "살라흐(סָלַח)는 대체로 하느님이 주어로 사용됐으며 용서하다"
3. "카파르(כָּפַר)라는 말은 "속죄하다", "덮다"
즉 구약성경에서 용서의 의미는 죄를 옆으로 치워놓거나, 덮어주거나, 혹은 가린다는 의미였습니다. 소극적이고 수동적 의미가 강했습니다.
반면, 신약에서 '용서'의 의미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입니다.
1. 아페시스(ἄφεσις): ‘사면’, ‘탕감’, ‘해방’
2. 파레시스(πάρεσις): ‘빠뜨림’ 또는 ‘넘어감‘, ’지움’
여기서 탕감의 뜻은 세금이나 부채 등을 남김없이 모조리 감(減) 해 주거나, 빚이나 요금, 세금 따위를 삭쳐주는 것 일컫는데요. 삭쳐주다는 의미는 장부에서 뭉개거나 지워서 없애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존재와 사랑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얼굴이나 용모가 어느 모로 보나 남 부러울 데가 없는 이 여자에게 하나의 단점이 있었습니다. 눈썹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항상 짙은 화장으로 눈썹을 그리고 다녔고, 눈썹이 지워질까 노심초사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에게도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습니다. 정말로 사랑하는 남자가. 남자도 그 여자에게 다정스럽게 대해 주었고 둘은 결국, 많은 이들의 축하 속에서 결혼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자신의 눈썹 때문에 항상 불안했습니다. 일 년이 지나고 이년이 지나도 여자는 자기만의 비밀을 간직하면서 남편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세수와 화장을 하고 눈썹을 그리고 남편이 잠이 들어야 비로소 자신도 잠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행여나 들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늘 앞섰습니다. 남편이 어쩌다 눈썹이 없는 자신을 보게 되어 자기를 싫어하게 되면 어쩌나 하고, 그리고 자신에게 따뜻한 남편이 이걸로 인해 사랑이 식어질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렇게 3년이란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이들 부부에게 예상치 않던 불행이 닥쳐왔습니다. 승승장구하던 남편의 사업이 일순간 망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결국 길거리로 내몰리고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들이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이 연탄 배달이었습니다. 연탄을 실은 손수레를 남편은 앞에서 끌고 여자는 뒤에서 밀며 열심히 연탄 배달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봄바람이 불어오던 오후였습니다. 언덕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손수레의 검은 연탄 가루가 날아와 땀이 난 여자의 얼굴에 온통 검은 연탄 가루가 뒤덮였습니다.
여자는 눈물이 나고 견딜 수 없이 답답했지만, 도저히 닦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나 자기의 비밀이 탄로가 날까 싶어서였습니다.
그때, 남편이 걸음을 멈추고 아내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수건을 꺼내어 정성스럽게 얼굴을 닦아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아내의 눈썹 부분만은 건드리지 않고 얼굴의 다른 부분을 모두 닦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흐르는 눈물까지 다 닦아준 후 다정하게 웃으며, 남편은 다시 수레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존재를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알면서도 모른 척, 넘어가 주고 덮어주고, 사랑을 지켜주는 것. 이해와 배려 그리고 헌신이 함께할 때, 사랑은 완성되는 것인가 봅니다.
사랑의 조건은 無조건이라고 합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이미 자기가 받은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함께 나눌수록 더 큰 사랑을 낳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겠지요.
최고의 연인
최고의 연인은 시력이 나쁜 연인이다. 흐릿해서 더 아름답고 잘 안 보여서 흥미를 잃지 않을 정도의 시력, 사랑하는 사람의 시력은 그래야 한다.
한 남자가 결혼을 하고도 아내가 어여뻐서 어쩔 줄을 모른다. 모두들 아내가 어디가 그렇게 예쁘냐고 묻는다.
남자는 대답한다.
“눈이 나빠서 세상이 좀 흐릿하게 보이는데,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이던 때보다 훨씬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 아내도 그렇다.”
그렇다. 최고의 연인은 시력이 나쁜 연인이다. 뾰루지 같은 건 알아보지도 못하고, 귤껍질 같은 피부도 도자기 피부로 봐주는 눈 나쁜 연인.
작은 실수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큰 실수도 잘못 봤으려니 넘기고, 허술한 마음 같은 건 알아도 모르는 척 넘어가는 눈 나쁜 연인. 잘 안 보이는 것들은 모두 다 좋은 것이려니 여기는 시력 나쁜 연인, 그런 사람이 최고의 연인이다. -김미라, 삶이 내게 무엇을 묻더라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