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포도와 여우
우리가 때때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해 부정적인 판단을 하게 되는 경향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진정한 용기는 성공을 위해 도전하고, 실패를 인정하는 데서 발생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솔직하게 자기의 한계를 인정하고 목표를 다시 세우는 것입니다.
여름의 끝자락,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 포도원에는 털이 윤기 나는 여우 한 마리가 서성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팍스. 한때 무성한 꼬리와 날렵한 몸놀림으로 숲을 누비던 그는 이제 발걸음이 무겁고 꼬리도 초라해졌습니다. 팍스는 그동안 수많은 포도원을 지나쳤지만, 이곳만큼은 쉽게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가지마다 탐스럽게 매달린 보랏빛 포도송이들은 그의 메마른 목구멍을 더욱더 간질였습니다.
팍스는 몇 번이고 다리에 힘을 주어 뛰어올랐지만, 이제는 높이 솟아오르지 못했습니다. 허공만 가르며 떨어질 때마다, 자존심에는 깊은 상처가 새겨졌습니다. 마침내 그는 숨을 고르며 포도송이를 노려보다가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흥, 저런 시큼한 포도를 누가 먹으려나.”
그의 중얼거림에는 갈증만큼이나 깊은 후회가 묻어 있었습니다. 닿을 수 없었기에, 그는 그것이 처음부터 별것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자존심이 덜 상했기 때문입니다.
팍스는 등을 돌려 포도원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습니다. 마음속에는 포기하지 못한 열망이 잔잔한 파문처럼 일렁였고, 그의 시선은 자꾸만 포도 넝쿨로 돌아갔습니다.
굴로 돌아온 밤, 팍스는 젊은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야심찼던 그때 그는 늘 새로운 기회를 망설였습니다. 도전은 두려웠고 실패는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별 볼 일 없을 거야.”
그 말은 언제나 자신의 용기 없음의 핑계였습니다. 팍스는 차가운 굴벽에 등을 기대며 깨달았습니다. 닿지 못할 것 같아 두려운 순간마다, 그는 닿을 수 없는 것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는 사실을.
이튿날 아침, 팍스는 다시 포도원으로 향했습니다. 높이 달린 포도송이는 여전히 그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포도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팍스는 오랫동안 포도송이를 올려다보며 마음속 깊은 곳의 질문과 마주했습니다.
“저 포도가 정말 시큼하기만 했을까?”
그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솔직해졌습니다. 어쩌면 포도는 달콤했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진짜 시큼했던 것은 자신의 용기 없던 마음이었을지 모릅니다.
팍스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는 포도 한 송이 얻지 못했지만, 대신 오래 묵혀두었던 상처를 조금 덜어냈습니다. 그는 이제 포도를 욕하지 않아도 되었고, 더 이상 스스로를 속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포도원을 떠나는 팍스의 발걸음은 전날보다 훨씬 가벼웠습니다. 닿을 수 없는 것들을 향한 후회 대신, 솔직하게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품었기 때문입니다.
가끔 우리는 닿을 수 없는 것 앞에서 마음을 다치지 않기 위해 ‘별것 아니야’라며 돌아섭니다. 하지만 진정한 용기는, 상처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솔직히 마주하고 인정하는 데서 자라납니다. 팍스처럼, 우리도 언젠가 멀게만 보이던 포도송이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닿지 않았더라도 괜찮아. 그때의 나는 부족했지만, 지금의 나는 조금 더 솔직해졌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