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멀 곡선(Normal Curve)
통계학에는 노멀 곡선(Normal Curve), 즉 ‘정규분포 곡선’이라는 게 있습니다.
**정규분포(Normal Distribution)**는 통계학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확률분포입니다.
그래프로 나타내면 ‘종 모양 곡선 (Bell-shaped curve)’을 이루는 가운데가 가장 높고, 양쪽으로 갈수록 낮아집니다.
어떤 집단을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눌 때 사용되는 비율입니다.
• 상위 그룹: 약 30%
• 중간 그룹: 약 40%
• 하위 그룹: 약 30%
흔히 사회 현상, 직무 성과, 여론, 행동 양식을 설명할 때 쓰입니다.
• 예: 회사 직원의 성과, 학생들의 참여도, 소비자 성향 등.
“열심히 하는 사람 30%, 보통 40%, 소극적이거나 미온적인 사람 30%” 이런 식입니다.
문제는 “소극적인 30%”입니다.
이스라엘의 반복된 불순종, 젊은이의 주저함,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 비유할 수 있겠지요. 오늘 우리 공동체 안에서도 반복됩니다.
리더십을 맡은 이들은 언제나 **“소극적인 30%”**와 마주합니다.
이들은 게으르거나 무능해서가 아니라, 심리적·사회적·역사적 맥락 속에서 그렇게 자리 잡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리더는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끌어야 할까요?
1) 신학적 관점
예수님도 제자들 안에서 적극적인 이(베드로, 요한), 중도적인 이들, 그리고 끝내 떠난 이들(유다)을 모두 품으셨습니다.
리더는 “소극적인 이들 안에도 은총의 가능성이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동시에 공동체를 해치지 않도록 공정한 질서를 지키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2) 심리학적 관점
소극성은 두려움, 자신감 부족, 관계적 상처에서 비롯됩니다. 무조건 강요하면 더 움츠러듭니다.
해결책은 **“안전한 참여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작은 역할부터 맡기고, 과정 자체를 칭찬하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역사·사회학적 관점
역사 속의 개혁과 신앙 운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언제나 **적극적 30%**가 길을 열고, **중간 40%**가 따라가며, 소극적 30%는 천천히 합류했습니다.
따라서 모든 이를 한 번에 바꾸려는 것은 비현실적입니다. 먼저 중간층을 붙잡고, 소극적인 이들은 떠밀지 않고 옆에서 기다려 주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4) 물리학·수학적 은유
노멀 곡선에서도 꼬리 부분(소극적 30%)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그러나 중심부(40%)가 단단하면 전체가 안정됩니다.
리더십이란 꼬리를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조정하여 천천히 평균 쪽으로 이동하게 돕는 것입니다.
5) 실제 리더십 실천 전략
1. 경청 – 목소리를 들어주는 것 자체가 신뢰를 줍니다.
2. 작은 성공 경험 제공 – 큰 일보다 작은 성취로 자신감을 심어줍니다.
3. 중간 리더 활용 – 소극적 30%는 리더보다 또래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4. 포용과 선 긋기 – 공동체를 해칠 경우에는 선을 긋되, 배제하지 않고 대안을 열어둡니다.
5. 오늘의 적용 ― 반복되는 유혹과 참된 자유
이스라엘처럼 하느님을 잊고, 젊은이처럼 집착에 얽매이는 모습이 바로 우리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 안의 소극성마저 은총의 가능성으로 바라보십니다.
리더십이란 강요가 아니라 기다림입니다.
안전한 환경을 만들고, 핵심 70%와 함께 분위기를 이끌어가며, 소극적 30%가 조금씩 합류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 신학적으로: 하느님 없는 삶은 무질서이지만, 은총은 연약한 이들마저 변화시킵니다.
• 심리학적으로: 집착과 두려움은 자유를 앗아가지만, 안전한 환경은 참여를 이끕니다.
• 역사적으로: 언제나 소수의 용기에서 길이 열렸습니다.
• 영성적으로: 내려놓음 속에서 참된 자유가 옵니다.
기억하시는 하느님, 기다리시는 리더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세 가지를 초대합니다.
1. 하느님을 기억하라.
2. 예수님을 따르라.
3. 공동체 안에서 소극적인 이들을 기다리라.
주님은 우리의 완악함에도 우리를 기억하시고, 기다려 주시며, 자비로 끌어올리십니다.
그 자비를 닮아 **“기다려주는 리더십”**을 사는 것이 바로 온전함의 길입니다.
“주님, 저희의 연약함을 기억하시고 자비로 구원해 주심을 찬미합니다.
저희도 공동체 안에서 소극적인 이들을 기다려 주며, 함께 온전함으로 이끌어 가는 리더십을 살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