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세상, 그레치오의 빈 구유에 오신 온기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한 주간 주님의 평화 안에 머무셨습니까?
오늘 교회는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림 제2주일을 지냅니다. 우리는 제대 앞에 놓인 두 번째 초에 불을 밝혔습니다. 하나였을 때보다 두 개가 되니 빛이 조금 더 밝아졌고, 온기도 조금 더 더해진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거친 광야에서 목청을 높입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메우고 산과 언덕은 낮추어라.”
이 말씀은 얼핏 듣기에 우리에게 무거운 숙제를 주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안 그래도 먹고살기 바쁜 세상에서, 마음의 길까지 닦고 공사를 하라니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내 코가 석 자인데, 주님 오시는 길을 닦을 여력이 어디 있나’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가장 춥고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자신의 마음’을 주님의 길로 내어드렸던 한 사람,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프란치스코 성인은 새들에게 설교하고 자연을 노래하는 낭만적이고 활기찬 청년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가 처음으로 구유를 만들었던 1223년 12월의 그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때 프란치스코의 나이는 마흔을 갓 넘긴 40대 초반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육신은 이미 70대 노인처럼 쇠약해져 있었습니다. 이집트 선교 중에 얻은 심각한 눈병으로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아 늘 눈물을 흘려야 했고, 위장병과 각종 질환으로 음식을 넘기기도 힘들었습니다.
육체만 아픈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더 시렸습니다.
그는 십자군 전쟁터에서 인간이 서로를 잔혹하게 죽이는 지옥을 목격하고 돌아왔습니다. 평생을 바쳐 일군 수도회 형제들은, 초기의 가난함을 버리고 “우리도 건물을 짓자, 우리도 학식을 쌓자”며 그를 따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한 달 전, 교황청으로부터 수도회 회칙을 승인받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이상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무너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1223년 겨울, 프란치스코는 철저히 혼자였습니다. 몸은 병들었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소외당했으며, 세상은 전쟁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그는 그 지독한 ‘영혼의 겨울’을 안고 로마의 화려한 성당이 아닌, 이탈리아 리에티 계곡의 험준한 산비탈, ‘그레치오(Greccio)’로 향합니다.
그곳은 찬바람이 쌩쌩 부는 바위산이었습니다. 그는 그 춥고 거친 동굴에서 친구에게 이렇게 부탁합니다.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고자 합니다. 필요한 것 하나 갖추지 못한 그 갓난아기가 겪은 불편함을 최대한 생생하게 제 두 눈으로 보고 싶습니다. 아기가 어떻게 구유에 누워 있었는지, 그리고 황소와 나귀 옆에서 그 갓난아기가 어떻게 건초더미 위에 누워 있었는지를 그대로 보고 싶습니다.”( 첼라노의 토마스,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 제1권』(Vita Prima), 제1부 30장, 84항.)
그는 왜 그토록 ‘가난한 모습’을 보고 싶어 했을까요?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된 아기 예수님 상이나, 웅장한 신학적 설명은 병들고 지친 그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등을 돌려도, 가장 낮고 비천한 구유에 누워계신 예수님만은 “프란치스코야, 나도 너처럼 춥구나. 나도 너처럼 아프구나. 그래서 내가 너와 함께 있다.”라고 말씀해 주실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날 밤 그레치오의 미사 때, 프란치스코는 아기 예수님을 팔에 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집니다. 그것은 단순한 연극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무너진 마음, 그 텅 빈 골짜기에 하느님의 따뜻한 사랑을 채우는 치유의 순간이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이 외친 “골짜기를 메우고 산을 낮추라”는 말씀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프란치스코처럼 1223년의 겨울을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사업이 실패해서 벼랑 끝에 몰릴 때,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해 가슴에 멍이 들 때, 혹은 건강이 무너져 내일이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 마음은 험한 산처럼 거칠어지고, 깊은 골짜기처럼 패여 나갑니다.
하지만 바로 그때가 ‘그레치오의 기적’이 일어날 시간입니다.
우리가 낮아질 대로 낮아져서,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그 바닥이 바로 아기 예수님이 누우실 ‘구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대림 2주일을 보내는 이번 한 주간, 억지로 훌륭한 신앙인이 되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대신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자신의 가난함과 아픔을 있는 그대로 주님께 보여드리십시오.
“주님, 제 마음이 그레치오의 동굴처럼 춥고 어둡습니다. 제 안에 당신이 누우실 자리를 마련하니, 오셔서 이 빈 마음을 채워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할 때, 높았던 우리의 교만은 깎여나가고, 상처로 패인 마음의 골짜기는 주님의 위로로 평평하게 메워질 것입니다.
오늘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 마음속 가장 낮은 자리에 오시는 예수님을 모십시다. 1223년 그레치오의 밤, 병든 프란치스코를 안아주셨던 그 따스한 빛이, 오늘 이 미사에 참례한 여러분 모두의 지친 어깨 위에 가득 내리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