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단지

흰 가운의 압박 vs. 깨어있음: 누구에게 복종할 것인가?

by 진동길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시편의 간절한 고백으로 주님 앞에 섰습니다. “하느님, 당신이 응답해 주시니 제가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주님,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 당신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 이 기도는 단순히 두려움에서 비롯된 외침이 아닙니다. 세상의 수많은 목소리와 압박 속에서도 오직 주님만이 나의 궁극적인 보호자이심을 선포하는 깊은 신뢰의 선언입니다.


오늘 미사의 본기도 역시 “언제나 성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정성껏 섬기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며, 우리의 삶이 누구를 향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려줍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의 핵심은 보호, 응답, 성실, 그리고 깨어있음입니다.


한 사람의 불순종 vs. 한 분의 순종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에서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거대한 두 힘의 대결을 보여줍니다. 바로 한 사람 아담의 불순종과 한 분 그리스도의 순종입니다. 아담의 불순종은 죄와 죽음이 우리를 지배하는 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순종은 의로움과 생명이 우리를 다스리는 새로운 길을 여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바오로 사도는 가장 결정적인 복음을 선포합니다.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 우리를 최종적으로 규정하는 힘은 죄의 관성이 아니라 은총의 주도권이라는 선언입니다. 우리를 사랑과 희망이신 하느님과 하나 되게 하는 것은 우리의 부끄러운 과거가 아니라, 모든 것을 압도하는 그분의 은총입니다.


복음 — “허리에 띠, 등불, 문고리”


오늘 루카 복음은 이 은총에 어떻게 응답하며 살아야 할지 세 가지 생생한 표지로 알려줍니다. 첫째, 허리에 띠를 매는 것입니다. 이는 영적 게으름을 끊고 언제든 주님의 뜻을 행할 준비가 된 기본 태세를 의미합니다. 둘째, 등불을 켜는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도록 말씀과 양심의 빛으로 끊임없이 분별하며 살아가는 자세입니다. 셋째, 문을 곧 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밤중이든 새벽이든, 어떤 방식으로 우리 삶의 문을 두드리시든 즉시 응답하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이러한 깨어있음에 뒤따르는 약속은 실로 놀랍습니다. “주인이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히고서는,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이는 섬김 받으셔야 할 주님께서 오히려 우리를 섬기시는 성체성사의 신비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깨어 있는 신자가 행복한 이유는 바로 이처럼 섬기시는 주님을 매일의 삶에서 만나기 때문입니다.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 (1961, 미국)


그런데 이 ‘깨어있음’을 방해하고, 우리를 불의한 길로 이끄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요?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악의 사슬에 얽혀 들어가는지를 보여준 한 유명한 심리 실험이 있습니다.


1961년 미국, “기억력에 관한 실험에서 ‘교사’ 역할을 할 분을 찾습니다”라는 신문 광고가 나갔습니다. 20대에서 50대까지의 평범한 시민 40명이 4.5달러의 보상을 받고 이 실험에 참여했습니다. 실험실에는 흰 가운을 입은 실험 주최자와, 문제를 푸는 ‘학생’, 그리고 학생이 틀릴 때마다 전기 충격 버튼을 눌러야 하는 ‘교사’가 있었습니다. 교사의 눈앞에는 15볼트에서 시작해 치명적인 수준인 450볼트까지, 30개의 버튼이 달린 전기충격기가 놓여 있었습니다.


실험이 시작되고, 학생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교사는 지시에 따라 15볼트씩 전압을 높여 버튼을 눌러야 했습니다. 전압이 150볼트에 이르자, 칸막이 너머 학생이 고통을 호소하며 “더 이상 못 하겠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많은 교사들이 이 지점에서 깊이 주저했습니다. 하지만 흰 가운을 입은 실험자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실험을 계속하십시오. 이 실험에 따를 책임은 제가 집니다.”


전압이 300볼트에 이르자, 벽을 발로 차던 학생의 소란마저 사라지고 섬뜩한 침묵만이 흘렀습니다. 겁에 질린 교사가 “저러다 죽으면 어쩝니까? 더는 못 하겠습니다.”라고 항의하자, 실험자는 흔들림 없이 말했습니다. “절대 죽지 않습니다. 모든 건 제가 책임집니다.”


실험 전, 주최 측은 450볼트까지 버튼을 누를 사람은 0.1%에 불과할 것이라 예측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무려 **65%**의 참가자가 마지막 450볼트 버튼까지 눌렀습니다. 실험이 끝난 뒤 그들은 “시켜서 했을 뿐입니다.”, “제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스스로 이해가 안 됩니다.”라며 괴로워했습니다. 반면, **35%**의 참가자는 300볼트 지점에서 실험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이와 비교되는 붉은 털원숭이 실험이 있습니다. 먹이를 얻기 위해 버튼을 누르면 다른 원숭이가 전기 충격을 받는 상황에서, 원숭이는 무려 15일간 굶주리면서도 끝내 버튼을 누르지 않았습니다. 인간과 원숭이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원숭이 곁에는 “계속하라”고 압박하는 흰 가운의 권위자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실험을 설계한 스탠리 밀그램은 이렇게 결론 내렸습니다. “불합리한 명령을 거부하는 유일한 길은, 그 명령을 내리는 권위자와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는 것이다.” 평범한 우리도 ‘권위’, ‘책임 면제’, 그리고 ‘점진적인 수위 상승’이라는 조건 앞에서는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가 이 실험을 통해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신학적·사목적 연결 — “우리는 누구에게 복종하는가”


형제자매 여러분, 이 실험은 우리 신자들에게 단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과연 ‘누구’에게 복종하며 살고 있는가?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보인 불순종은 사실 ‘하느님 아닌 다른 것’에 순응한 또 다른 형태의 복종이었습니다. 반면, 겟세마니에서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순종은 ‘성부 하느님께 대한 전인격적인 복종’이었습니다.


복음이 말하는 “깨어 있음”이란, 바로 내 삶에 다가오는 수많은 ‘흰 가운’의 압박을 식별하고, 그 모든 것에 앞서 선이시고 사랑이신 하느님께 우선적으로 순명하는 태도입니다. 심리적으로 인간은 두려움과 상황의 압력 속에서 눈에 보이는 권위에 기대려 합니다. 그러나 시편의 고백처럼,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날개 그늘” 아래 숨겨주시는 하느님과의 신뢰 체험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세상 권위에 대한 불안한 애착에서 하느님께 대한 신뢰의 애착으로 전환하게 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를 압박하는 “흰 가운”의 목소리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권위가 더 크고 분명하게 들리기 시작합니다.


지금-여기 구체적인 적용


이제 말을 돌리지 않겠습니다. 이번 한 주, 이 깨어있음을 구체적으로 살아봅시다.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고, 문을 곧 열기 위한 네 가지 실천입니다.



시간의 첫 열매 5분 (허리에 띠 매기): 아침에 눈을 뜨면 스마트폰을 보기 전에 먼저 십자성호를 긋고 주님의 기도를 바치십시오. 그리고 오늘 꼭 실천할 작은 선행 한 가지를 결심하십시오.


말씀으로 분별 10분/일 (등불 켜기): 오늘 복음인 루카 12장을 다시 읽고, 내 양심을 흔드는 문장 한 줄을 찾아 휴대폰 잠금화면이나 책상 앞에 붙여두십시오.


즉시 여는 사랑 1건/일 (문을 곧 열기):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게요”에서 멈추지 마십시오. 바로 전화 한 통, 격려 메시지 한 건, 혹은 작은 나눔 한 건을 실천하십시오.


정기적인 고해 (죄가 많은 자리에 은총 붓기): 한 달에 한 번, 날짜를 정해 고해성사를 보십시오. 죄가 많은 자리에 은총을 의도적으로, 그리고 과다하게 투입하십시오. 이것이 로마서의 공식을 우리 삶에서 실천하는 길입니다.


마침 — 깨어 응답합시다


정리하겠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죄의 지배보다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총의 지배가 더 큽니다. 깨어 있음이란, 하느님의 권위를 식별하고, 즉시 사랑으로 응답하며, 구체적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밀그램의 실험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세상 권위의 부당한 압박을 이기는 길은, 세상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우선적으로 복종하는 자유로운 신앙 안에 있습니다.


미사 안에서 주님은 실제로 우리를 당신의 식탁에 앉히시고, 당신의 몸과 피로 우리에게 시중드십니다. 이 거룩한 섬김의 은총으로 힘을 얻어, 세상의 ‘흰 가운’이 주는 압박보다 크신 하느님께 우리의 순종을 다시 서약합시다. 이 성당 문을 나서는 순간, 우리는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150볼트를 멈춰주고, 300볼트의 침묵을 깨뜨리는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오늘, 다시 허리에 띠를 매고, 마음의 등불을 밝히고, 사랑을 향해 문을 활짝 여는 주님의 제자가 됩시다. 주님께서 우리를 당신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날개 그늘로 덮으시며, 마침내 우리를 당신 식탁에 앉히시고 직접 시중들어 주실 것입니다.


아멘.


묵상과 나눔 (소공동체/가정 적용)



내 일상에서 ‘15V씩 스며드는’ 유혹이나 타협은 무엇입니까? 오늘 그 초기에 끊어낼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은 무엇일까요?


최근 내가 목격했거나 경험한 ‘300V의 침묵’(불편한 진실이나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모두가 침묵하는 상황)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때 나는 어떻게 등불을 켜려 노력했나요?


이번 주, 내가 즉시 문을 열어 사랑을 실천할 대상은 누구입니까? (구체적으로 전화할 사람 1명, 격려 메시지를 보낼 사람 1명, 작은 나눔을 실천할 대상 1명을 정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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