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단지

지금 이 순간, 우리 영혼의 '잔'을 넓히는 사랑

by 진동길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제1독서에서 요한 사도는 우리에게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속에 머무릅니다."(1요한 2,10) 이 짧은 한 구절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신앙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깊이 일깨워줍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천국은 단순히 심판이 무서워 지옥을 면하기 위해 찾아가는 '대피소'가 아닙니다. 그곳은 빛이신 하느님과 영원히 일치하며,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누리는 '사랑의 잔치'입니다. 오늘 독서의 말씀처럼, "그분 안에 머무른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도 그리스도께서 살아가신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1요한 2,6). 즉, 천국은 죽어서야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이미 우리 안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신비로운 천국의 행복을 소화 데레사 성녀는 어린 시절의 한 일화를 통해 우리에게 아주 명쾌하게 설명해 줍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의 일화]


소화 데레사의 어린 시절,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리지외에서 살던 시기의 이야기입니다. 어린 데레사가 자신의 언니 폴린(훗날 아녜스 수녀)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천국에 있는 모든 선택된 이들에게 동등한 양의 영광을 주시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천국의 성인들이 모두 완전히 행복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 폴린은 골무(thimble)와 큰 유리잔(large glass)을 가져와서 두 개 모두에 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데레사에게 물었습니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가득 차 있니?" 데레사는 "둘 다 똑같이 가득 차 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폴린은 설명했습니다. "천국의 성인들도 마찬가지란다. 천국의 모든 성인은 은총으로 가득 차 있어서, 각자가 완전히 행복하단다. 천국에서 가장 작은 성인도 가장 위대한 성인을 부러워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각 성인이 자신의 영혼이 담을 수 있는 만큼 하느님의 충만함을 누리기 때문이지."


데레사는 이 가르침을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모든 성인이 완전한 기쁨을 누리지만, 지상에서의 삶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공로를 쌓고 ‘천국의 보상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이들은 지상에서의 삶으로 인해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더 크게 빛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참조: 『영혼의 이야기(Story of a Soul)』


이 비유는 다음을 가르칩니다:

1. 천국의 평등성: 모든 성인이 완전한 행복을 누림

2. 천국의 다양성: 각자의 능력(capacity)에 따라 다른 영광의 정도

3. 현세의 중요성: 지금 우리의 삶이 천국에서의 능력을 결정함

4. 성덕의 추구: 위대한 성인이 되기를 열망해야 함


교우 여러분, 이 비유가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은 명확합니다. 천국은 모두가 행복한 곳이지만, 그 행복을 담아낼 우리 영혼의 '그릇(capacity)'은 우리가 이 지상에서 어떻게 사랑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에 겨우 회개한 영혼은 '골무'만큼의 행복을 누리겠지만, 평생을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형제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빛 속에 머물렀던 영혼은 대양과 같은 거대한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둘 다 가득 차서 행복하겠지만, 그 행복의 깊이와 넓이는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계십니까?

혹시 형벌이 무서워 억지로 계명을 지키는 **'종의 마음'**입니까? 아니면 상급만을 바라보는 **'용병의 마음'**입니까? 오늘 독서가 경고하듯, "빛 속에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둠 속에 있는 자"(1요한 2,9)입니다. 어둠 속에 머무는 영혼은 하느님의 그 큰 사랑을 담아낼 그릇을 키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서 기쁘게 기도하고 희생하는 이유는, 죽음 직전에 겨우 턱걸이로 천국에 가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빛이신 하느님을 온전히 느끼고, 형제 사랑 안에서 그분의 사랑이 완성되는 것을 체험하기 위해서입니다. (1요한 2,5 참조)


교황 프란치스코께서는 교황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Gaudete et Exsultate)』를 통해 이 '그릇'을 키우는 법이 거창한 것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룩함을 위해 주교, 사제, 수도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삶을 살아가고 우리가 있는 모든 곳에서 증거함으로써 거룩하게 되도록 모두 부름받았습니다... 주님이 여러분에게 부르시는 이 거룩함은 작은 몸짓들을 통해 자라날 것입니다."(제14, 16항)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어둠이 지나가고 이미 참빛이 비치고 있습니다."(1요한 2,8)


오늘 하루, 곁에 있는 형제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작은 배려 하나가 여러분 영혼의 '골무'를 '유리잔'으로, 나아가 '커다란 대양'으로 넓혀줄 것입니다.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갈 때, 우리는 죽어서가 아니라 이미 지금 이 자리에서 천국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그 큰 기쁨을 가득 담아내는 넉넉한 사랑의 그릇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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